댕그랑, 책방 문이 열렸다.
“올라, 초록.”
“오, 나의 가슴이 벅차-올라. 루비쿤도 선생님, 어서 오세요. 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별일 없었나요?”
“오, 있었어. 사람이 죽었어.”
“예? 무슨 사고라도 났나요? 선생님은 괜찮고요?”
“나야 뭐 충치나 뽑고 틀니 끼워주는데 위험할 게 있나.”
“누가 죽었다면서요?”
“백인 양아치 하나가 겁 없이 살쾡이 새끼들을 죽였다가 어미에게 죽었어.”
“맙소사.”
“시체를 봤는데 끔찍했어.” 루비쿤도는 그 시체를 다시 보는 것처럼 몸서리를 쳤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도 인간을 파괴할 거야.”
나는 할 말을 잃고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그나저나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걱정이야.”
“왜요?”
“보나마나 그 뚱보 읍장이 이번에도 어려운 일은 할아버지에게 맡길 텐데. 어떻게 하시려나.” 그러고는 내 손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 “그런데, 손가락은 왜 그래?”
“아, 이거요? 마당에서 새 풀 베다 그랬어요.”
“내가 치과의사라서 그건 못 고친다. 조심해.”
“예.”
루비쿤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설책 서가를 살피며 안토니오 할아버지에게 줄 책을 찾았다.
“자네가 지난번에 추천해준 견우와 직녀 하고 춘향전은 할아버지가 아주 잘 읽었대. 덕분에 내가 칭찬을 좀 들었지. 고마워. 이번에도 그런 책 좀 추천해줘. 어, 선녀와 나무꾼, 제목 좋네. 이건 어때?”
“그건 범죄소설입니다.”
“그래?” 루비쿤도는 선녀와 나무꾼을 서가에 도로 꽂았다.
“그럼, 이건 어때? 로미오와 줄리엣. 남녀 주인공들 이름 아니야?”
“열다섯, 열셋 아이들이 연애하는 얘긴데 할아버지 취향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리고 끝에 둘 다 죽어요.”
“저런, 이거 가지고 갔다간 나도 죽겠다.”
“거, 할아버지 책만 사지 말고 선생님도 책 좀 사세요. 선생님은 좋아하는 책 없어요?”
“나? 나는 당연히 이 상한 나라의 앨리스지.”
“치과의사들의 천국 같은 나라군요.”
“나는 돈을 모아서 다시 개업하면 병원 이름을 그걸로 할 거야. 이 상한 나라의 앨리스. 입구에는 시계를 든 토끼가 손님들을 안내하고 실내에는 멋진 모자들과 카드 병사들이 있지. 잘 참는 아이들에게는 모자를 하나 선물하는 거야. 그러면 아이들이 치과에 오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
“가끔씩 여왕이 나타서 ‘충치를 뽑아라!’ 하고 소리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치과라면 나도 가고 싶네요.”
“오, 굿 아이디어!” 루비쿤도는 웃으면서 나를 가만히 보더니 물었다. “자네 나랑 밀림에 한번 가지 않을래?”
“아이고, 나는 이미 밀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가족이 밀림이죠.”
“가족이 밀림이라니?”
“집안 분위기가 상쾌하다가도 누구 하나 우울하면 먹장구름이 덮으면서 폭우가 쏟아지고, 조용히 있다가 말벌에 쏘이듯 말에 쏘이고, 느닷없이 맹수처럼 달려들기도 하니까요.”
“그거 말 되네. 그러면 자네는 어떻게 해?” 루비쿤도는 웃으면서 물었다.
“자연을 받아들이듯이 태연히 지내죠. 단 대처는 빠르게 처신은 바르게. 그게 소신입니다.”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자네를 만나면 아주 좋아하겠는걸. 둘이 아주 잘 통할 거야.” 루비쿤도는 서가에 있는 책들을 보면서 말했다. “가족이 밀림이다? 아주 그럴듯해. 재밌어. 아, 우리 같이 술을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카운터에서 일어나 루비쿤도 옆으로 갔다.
“이 소설은 어때요? 3권이나 되니 오래 읽을 수 있어서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거예요.”
“가슴 아픈 사랑 얘기?”
“프랑스 외교관과 조선 궁녀의 러브 스토리에요. 그리고 이건 연애소설은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사냥을 잘하니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싸우는 포수 이야기거든요.”
“흠, 그 포수 이름이 뭔데?”
“산이요. 아마 할아버지를 만나면 ‘사냥에는 내가 프로 아니오?’라고 말할 걸요.”
“할아버지가 들으면 ‘아니야, 내가 프로아뇨’라고 말하겠다.”
“역시 프로끼리는 통하네요.”
“그래, 이렇게 다섯 권 계산해줘. 도장도 찍어주고.”
“예, 선생님. 또 조심해서 다녀오시고, 돌아오면 할아버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얘기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잘 지내.”
“예,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