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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Part 4 여행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 여행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나는 무얼 하면 가슴이 뛰는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언지 모르고 살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적이 별로 없었다. 엄마의 취향에 따라 옷을 입었고, 무엇을 먹고 싶다 느끼기 전에 음식상이 차려졌다. 

 ‘엄마, 난 저 분홍색 옷이 좋아.’라고 말하면, ‘참, 넌 어쩜 네 아빠랑 그리 똑같니. 금방 질릴 화려한 옷만 좋아하고,’라며 핀잔을 들었다. 결국 레이스가 수놓아진 진분홍 원피스 대신 감색, 검은색, 흰색 같은 모노톤의 장식 없는 깔끔함 원피스를 입었다. 지금은 그런 색감의 옷이 내 얼굴 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웬만하면 입지 않는다. 원하는 옷을 마음껏 입어보지 못한 어린 시절이 투사됐는지 현재 내 옷장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한 옷들이 수두룩하다. 어깨 뽕이 하늘을 찌를 듯한 퍼프소매의 원피스나 보석이나 프릴이 잔뜩 달린 블라우스가 파스텔 계열로 걸려있다. 


달짝지근하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엄마의 입맛은 정통 한국식이다. 엄마는 맵고 걸쭉한 한식으로만 밥상을 채웠고, 매콤한 음식이 너무나도 싫은 나는 편식이 심하고, 입도 짧았다. 먹성 좋은 짝지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음식을 진정으로 즐기는 법을 배웠다. 데이트할 때마다 식당에 가면 꼭 4인분씩 시키고선 반찬 하나 남김없이 먹었고, 함께 누리는 포만감이 언제나 즐거웠다. 일식과 이탈리안 음식을 좋아하는 내 입맛의 취향도 알게 되면서 먹는 걸 더 좋아하게 됐다. 

일 년에 몇 번씩 김치를 직접 담그고 고추장, 된장, 간장을 직접 만들 정도로 한식에 진심인 엄마와 달리 난 몇 달에 한 번 김치를 소량으로 사 먹는다. 한식파인 첫째 아들을 위해 청양고추를 듬뿍 넣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고기를 재지만 내가 즐겨 먹진 않는다. 


법륜스님이 말했다. 성년이란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라고. 돌이켜 보면 나는 성년이 되고 나서도 자립에 필요한 능력을 단 한 개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모든 걸 엄마가 다 알아서 해결해 주니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하고, 실패하고, 책임지며, 배우는 기회와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세상 앞에 나 홀로 남겨질 때 불안이 높고 두려움이 유독 심했다. 스스로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헤쳐 나가는 법은 모르고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법만 알았다. 


엄마와 나는 둘 다 독립하지 못한 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의존하는 공의존(codependency) 상태였다. 

“공의존자는 자기애·자존심이 낮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에서 무의식 중에 자기의 존재가치를 찾아내고, 상대를 통제하여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취하게 하는 것을 통하여 마음의 평온을 지키려고 한다.”(출처: 위키백과 ‘공의존’)

엄마는 나를 통해 못다 한 꿈을 이루며 엄마의 불만족스러운 인생을 만회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기생해 엄마의 노동과 재정을 착취해 사는 게 편리하고 익숙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는 나에게 더 희생하며 한 개라도 더 해주려고 애썼고, 나는 엄마의 인정과 칭찬만을 위해 노력했다. 


정신분석가이자 소아정신과 의사인 한성희 저자가 쓴 책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메이븐]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딸의 성장 과정에서 유독 강렬한 정서적 일체감을 경험한 엄마들일수록 딸의 독립은 엄청난 심리적 도전으로 다가온다. 엄마가 한 성인으로서 단단할 때만 견뎌낼 수 있는 시련이다. 그렇지 못한 엄마들의 경우 딸을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들은 딸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고, 딸의 일과를 관리 대상으로 삼는다. 친구 관계가 어떤지, 남자 친구와 데이트는 어떤지, 회사 생활엔 특별히 문제가 없는지 모든 걸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딸은 과도한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서운해할 엄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착한 딸 노릇을 하게 된다. 심한 경우에 엄마는 나르시시즘의 연장선에서 자기가 못 이룬 꿈을 딸에게 강요하거나 실패한 인생에 대한 책임을 딸에게 덮어씌우면서 들쭉날쭉한 사랑을 보여 준다. 때론 무의식적으로 딸들의 죄책감을 이용한다. 아직 어리고 혼자 살아갈 힘이 없는 딸은 그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 여기고,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딸들은 안타깝게도 쉽게 자신을 자책하고 비하하게 된다.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불쌍한 딸은 남들에게는 모두 칭찬을 받지만 정작 스스로는 칭찬하는 법이 없다. 그들에게 인생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기대를 채워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거기에 자기를 끼워 맞추며, 그들이 칭찬해 줄 때만 자신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나와 엄마의 관계가 그대로 묘사돼 있어 깜짝 놀랐다.

출근하는 딸에게 자신이 직접 골라 사 온 정장을 입히고, 고데기로 머리를 말아주면서, 동시에 아침밥을 안 먹고 가겠다고 늦었다고 재촉하는 딸의 입에 어떻게든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을 욱여넣어 주었다. 

그런 나는 20대 중반이 돼서도 은행에 가서 통장 하나 만들 줄 몰라 두려워서 몸이 굳어버리는 ‘생활 바보’이자 ‘마마걸’로 살았다. 대학생이 돼서도 엄마에게 검도 칼로도, 기타로도 맞았다. 엄마는 분노하면 이성을 잃었고, 주변에 잡히는 게 바로 매가 됐다. 하, 그땐.. 그랬다.


이런 내가 단연코 좋아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여행’이다. 

집으로부터 아주 멀리 훌쩍 떠나는 설렘 자체도 좋지만, 낯선 곳에 다다랐을 때 발끝에서부터 떨려오는 갖가지 감정이 융합된 진동이 심장까지 전해질 때는 무한한 힘을 느낀다. 익숙한 곳에서는 속박받고 갇혀있는 기분이라면 낯선 곳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되고 싶은 모습으로 살며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자유를 얻은 기분이라고 할까. 며칠의 여행 동안 그 어떤 바보 같은 실수도, 그 어떤 황당한 도전도 다 용서되고 용납되는 인생의 보너스 같은 시간. 


대학생의 클리셰인 유럽 배낭여행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엄마는 여자 혼자 무슨 배낭여행이냐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 말에 반기를 들 힘도 원체 없었지만, 사실 나도 무서웠다. 엄마 말마따나 세상은 위험 천지고 여자이기 때문에 사고를 당할 위험도는 더 높았다. 이때만 해도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일지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홀로 떠나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22살에 짝지를 남자친구로 만나면서 내 DNA에 깊게 새겨져 있는 여행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짝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연애 시절 뉴질랜드로 함께 떠났던 적이 있다. 내가 대학 4학년 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해외무역관에 인턴으로 합격해 7개월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 남자친구였던 짝지도 졸업반이었는데 무작정 어학연수를 한다며 나를 따라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당시 영어도 못하는 짝지는 대견하게도 3개월 안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냈다. 우린 결혼도 하기 전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뉴질랜드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남태평양 섬인 바누아투라는 미지의 땅에 가서 여행할 기회까지 있었다. 

청년으로서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훗날 가장이 된 짝지는 아무리 공기업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과감히 육아휴직을 내고 가족을 이끌고 프랑스로 떠나는 결정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었을 게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 살며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지중해, 사해, 홍해를 가르며 북쪽에서 남쪽까지 전국을 로드트립 했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이탈리아 바베노, 밀라노, 베니스, 스페인 메노르카 섬 등 유럽과 중동 국가를 여행했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p207)

[여행의 이유, 김영하,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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