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광야 1
이스라엘을 주 무대로 하는 성경에는 광야와 관련된 이야기가 꽤 자주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예루살렘을 조금만 벗어나면 모래로 뒤덮여 호활히 펼쳐져 있는 황무한 광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원한 차 안에서 드라이브하며 바라보는 유대 광야는 황금빛 모래와 돌로 이루어진 장엄하고 드넓은 협곡이 장관을 이루는 진풍경이었다. 드라이브 내내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절경에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광야에서 살아갔던,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광야는 낭만이 아니라 살인적인 뙤약볕 그 자체일 것이다. 광야의 척박하고 험난한 환경 때문에 광야라는 단어는 삶의 고난이나 역경에 빗대어 사용된다.
유목민이나 목동이 아닌 여행객의 정체성을 가진 나에게 광야는 한없이 멋지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국립공원 가는 길이 장관이라 차를 몇 번이나 세우고 내려서 사진을 찍어 댔다. 도로가 무척 깔끔하게 정비돼 있고 주변 풍광이 모두 비현실적이라 영화 세트장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의 할 일을 다 하고 유유히 떼 지어 걷고 있는 양 무리를 보고 있자니 여기가 이스라엘이 정말 맞나 보다 느껴졌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신기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엄청나게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가 첫 이스라엘 여행이었고 도착한 다음 날 갔던 첫 여행지라 더 그랬을 거다. 광야에 살며 양을 치는 사람들. 옛날이야기에서나 들어봤던 상상 속의 장면이 눈앞에 현실로 재생되고 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었겠는가.
양들을 보며 애들보다 내가 더 신났었다. 그리고 이날 햇살이 유독 좋고 하늘도 예뻐 내가 만화 속 이야기에 들어와 있는 거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스라엘 국립공원은 생태계와 자연 보존에 철저하다. 아이들이 계곡에서 장난삼아 물고기 잡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공원 관계자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고기를 잡으면 꼭 다시 놓아 달라고 부탁하고 갔다. 사실 저 때는 저런 어린애들이 물고기를 잡으면 얼마나 잡는다고 저렇게까지 경고할까 싶었는데 이스라엘은 어딜 가나 원칙을 중요시하는 거 같았다.
공항에서도 여행 가방 무게가 좀 오버됐을 때 가차 없이 거부당한 기억이 난다. 비행기 티켓은 4개고 가방은 단 2개뿐이니 한 가방당 몇 킬로그램 오버된 게 뭐가 그리 대수냐며 항변했더니 그럼 가방을 더 사 와서 다시 담거나 추가 비용을 내라며 그 유대인 승무원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공항 한복판에서 캐리어 두 개를 열고 비닐봉지 몇 개를 구해 거기다가 짐을 일부 빼서 넣은 후 겨우 무게를 맞춰서 짐을 부치며 생쇼를 했다. 어느 나라 공항이나 항공사에서도 이 정도로 말이 안 통하고 꽉 막힌 경우는 없었다.
관공서 같은 기관에서도 더욱 철저히 규칙과 규율을 따르는 모습을 봤다. 이게 유대인들의 관습인지, 문화적 특성인지, 내가 본 일부 유대인만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일관성 있게 원칙을 지키는 꼼꼼함이 사회 문화라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유익한 문화 같다. 비록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말이다.
행정적인 면에서도 모든 게 예측 가능할 테고 융통성 없는 깐깐함은 부정부패 확률이 덜 하단 말 아니겠는가.
원칙적으로 유지 보존되고 있어서인지 국립공원은 정말 청정했고 덕분에 기분 좋은 피크닉을 즐길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하이킹 중 냅다 계곡에 들어가는 바람에 결국 다 젖은 채로 차에 타야 했지만 맑은 물에서 한참을 웃으며 놀았던 경험은 분명 아이들 정서에 행복했던 감정으로 남았을 테다. 이렇게 이스라엘에서 처음 찾은 여행지는 성공적이었고 출발이 좋았다.
유대 광야 2
1년 3개월 만에 또다시 이스라엘로 자유여행을 왔다. 지난번에는 2주 동안 있었지만, 이번에는 한 달을 계획했다. 겨울은 비수기라 파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표도 저렴하다.
숙소가 있던 예루살렘에서 출발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베들레헴 동부에 위치한 마르사바 수도원을 찾았다.
아랍지역인 베들레헴에 오면 [가버나움] 같은 영화에서 으레 보던 중동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모든 아랍지역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유독 이쪽 지역은 더 삭막해 보였다. 거리에는 먼지가 풀풀 날리고 도로는 어수선하고 사람들의 눈빛에는 경계와 절망이 가득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가난하고 황폐해 보였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사진으로만 접했던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의 가난했던 옛 풍경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이스라엘에는 위험한 아랍지역도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지역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여기저기 나뉘어 있는데 내비게이션(GPS)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갑자기 끊겨버린다.
언제는 갑자기 먹통 된 GPS 때문에 협소한 골목으로 이뤄진 미로 같은 주택가에 잘못 진입한 적도 있었다. 밤이라 앞이 잘 보이지도 않고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아 뺑뺑 돌며 헤매고 있었다. GPS를 계속 재검색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어느 무장한 팔레스타인 남자들이 이스라엘 국기가 새겨진 우리 차를 난데없이 멈춰 세웠다.
그때의 공포와 당황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남자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는 총구로 운전석 창문을 치며 내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잔뜩 긴장한 짝지가 창문을 조금 내리고는 최대한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는 한국에서 온 여행객인데 GPS가 끊겨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빨리 나가겠다고 애써 유쾌한 톤으로 말하니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보내줬던 아찔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애들이 뒷좌석에서 곤히 자고 있었는데 참 겁도 없었다. 그 일이 있기 3주 전, 같은 지역에서 한 한국인 선교사가 차에 타 있는 상태에서 무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돌에 맞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더 식은땀이 났던 순간이었다.
수도원은 기드론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요새처럼 세워져 있다. 동방 정교회 수도원인 이곳은 고대 전통에 따라 여성의 입장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수도원은 바깥에서만 구경했다.
두 번째 여행에서는 유대 광야 한복판에서 이스라엘 바베큐인 망갈(Mangal)을 직접 구워 먹는 경험을 했다. 정말이지 여태까지 먹어본 양고기 중 잊지 못할 맛이었다.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한 베두인을 우연히 만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망갈 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던 우리 일행에게 먼저 다가와 좋은 장소를 안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러고선 우리를 자기가 사는 광야 한가운데까지 데려가 주었다. 가는 길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하늘과 광야가 맞닿은 풍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때 동행했던 한국인 지인도 이스라엘에서 학교도 졸업하고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망갈을 먹을 기회는 많지만 이렇게 광야 한복판까지 들어와 야생에서 베두인들처럼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건 흔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그 베두인에게 고마움을 잔뜩 표현하며 사례하고 신나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수도원 근처 주차장에서 구워야 하나 어디서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이런 횡재라니. 배부르게 먹은 아이들은 광야를 뛰놀며 전갈도 발견하고 성경 만화에서 보던 선지자의 모습을 흉내 내 보기도 하며 좋아했다. 유대 광야에서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기분도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었다. 저돌적인 성향의 지인은 일반 승용차로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불규칙한 광야의 오프로드를 덜컹대며 질주했다. 멀리서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같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날 광야에서 우리는 성경에서만 보던 유대 광야의 일부를 몸소 겪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광야에서 하는 캠핑도 그렇게 황홀하다는데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우리는 그 체험은 다음으로 미뤘다.
사방에 불빛 하나 없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
소리 하나 없고
수천만 개의 별이 현란하게 반짝이고
텐트 하나만 의지해서 보내는
하룻밤은 평생 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일 거 같긴 하다.
이거까지 겪어야 그래도 유대 광야를 좀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간 꼭 경험해 보리라.
그럼에도 유대 광야 안에서 망갈을 구워 먹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니 이 정도면 여행객으로서 이스라엘을 제대로 누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