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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이스라엘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아이들이 2주 방학을 맞이했을 때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연고가 있어 첫 여행지로 이스라엘을 선택하긴 했지만, 사실 이스라엘에 선입견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파멸과 고통을 겪었으며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정서가 팽배해 갖은 차별과 혐오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이다. 하지만 동시에 막대한 자본과 군사력을 가지고 미국과 공조하며 이스라엘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몰아내려 하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이 택한 민족이며, 신이 인간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가고 동참하는 과정을 역사적 서사로 낱낱이 기록한 성경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또한,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유대인으로 이 땅에 태어난 예수님이 일생을 보낸 곳이고, 그의 제자들을 통해 복음 전파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곳곳이 성경의 말씀을 방증하는 장소이기에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꿈꾸는 성지순례지이다. 이렇게 나는 이스라엘에 대한 갖가지 정보와 억측과 사실과 편견으로 혼란스러운 머리를 붙잡고 여행길에 올랐다.


4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고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하니 중동 나라답게 확실히 파리보다는 후덥지근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모이는 관광의 나라이니만큼 공항은 수많은 인파로 복잡했고 보안도 철저했다. 예약한 자동차를 렌트하기 위하여 한 시간 반 동안 기나긴 지루함을 견디고서야 겨우 차를 구하여 공항을 빠져나왔다. 

이스라엘에 와서 놀랐던 점 중 하나가 현지 사람들의 운전 방식이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하나같이 시내 도로에서조차 카레이서처럼 운전하였다. 난데없이 휙휙 끼어들거나 천천히 간다고 뒤에서 빵빵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고속도로에서는 어떠했겠는가. 우리나라처럼 시속 제한을 감시하는 카메라마저 없으니 모두 빛의 속도로 달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는 아이들을 태우고 있고 길도 잘 모르는 데다 렌트한 차를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제한 속도를 지키며 느릿하게 운전하는 유일한 차였다. 이런 우리를 향해 얼마나 많은 차가 경적을 매섭게 울리며 우리 차를 위협하고서는 앞질러 갔는지 모른다. 트램을 탈 때는 새치기를 당하기도 하고 상점에 갈 때는 불친절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성격도 급하고 예절도 없는 이곳 사람들에 대한 불쾌한 인상을 현지에 사는 지인에게 털어놓았더니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자신도 그 부분이 참 힘들었는데 유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니 왜 이렇게 집단으로 급한 성향이 됐는지 이해가 되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 사람들은 행동을 빨리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걸 목격했다. 어디서든 빨리 도망가야 했고 숨어 살아야 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됐으니, 대부분 사람은 여러 나라에서 수모 속에 흩어져 살다가 모든 걸 잃거나 포기하고 이스라엘에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다. 그런 생존 방식이 자연스레 몸에 배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니 외려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 시절이나 외압으로 남북이 분단된 후 군부독재 시절에 겪었던 한과 비통함이 느껴져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한 사람의 주관적인 견해이기에 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의 성향과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그 인과나 상관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분의 이야기는 적어도 우리가 이스라엘에서 지내는 동안 경험한 자칫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비난이 아닌 이해할 힘을 주었다. 

우리 가족은 2주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며 예루살렘 성을 탐방하였고, 국립공원과 베들레헴을 다녀왔다. 첫째 주 중간 2박 3일 동안은 지중해를 따라 로마의 흔적이 있던 가이사랴와 항구 도시인 하이파와 예수님의 사역지였던 갈릴리 지역을 다녀왔고, 둘째 주 중 2박 3일은 남쪽을 향하여 사해와 홍해가 있는 에일랏을 다녀왔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한 달 넘게 예루살렘에서 지내며 예루살렘 구석구석을 탐방했고, 간 하쉴로샤와 하맛 가데르 온천을 다녀왔다.  


이스라엘 차량 표지판을 붙인 채 팔레스타인이 장악한 지역을 겁도 없이 운전해서 들어가 표적이 되거나 길을 잃기도 하였고 운전을 잘못해서 이스라엘 경찰에게 붙잡힌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두고두고 또 가고 싶을 정도로 신비롭고 매력이 넘치는 나라였다. 한 국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는 도시나 지역마다 특색이 뚜렷하고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마치 수십 개의 나라를 여행 다니는 듯하였다. 다소 거칠어도 친절하고 정 많은 유대인이나 아랍인을 여럿 만나며 이스라엘이 점점 더 좋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중동의 한 나라쯤으로 여기며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지리학적으로 왜 그렇게 의미가 있는지, 왜 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땅인지 조금이나마 더 알 수 있었고 알고 나니 마음이 갔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대한 광야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의 바다를 동시에 바라보며 그 이질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에 취해 행복감에 젖었던 시간이 엊그제 같다. 황홀했던 여행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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