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재 Feb 24. 2019

이른 봄바람이 불어오는
스톡홀름에서 다섯

고민은 그 자체로도 방향이다

1. 겨울이 천천히 물러가고 있다. 유럽 남부에서 불어오는 변덕스러운 바람 탓이라는 걸 알지만, 이렇게 잠시나마 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대로 봄이 오면 좋을 텐데, 아직은 이른 바람이다.


2. 인생 고민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내년에 돌아갈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조금 더 남아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샘솟고 있다. 따스한 햇살 탓이 팔 할이겠지만, 디자이너로서 내 가치의 일정 부분은 스톡홀름에서 일하는 것에서 온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도 있다. 금세 또 외롭다, 돌아가고 싶다, 징징댈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다. 나도 내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3. 지난 주말, 지인의 소개로 회사에 퇴사 선언(?)을 하고 스톡홀름에 쉬러 온 스타트업 대표님과 석사를 하고 계신 대표님의 친구 분과 피카를 했다. 두 분은 스톡홀름의 일과 삶은 어떤지 물었고, 나는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답을 했다. 나는 이어서 두 분께 어쩌다 이 춥고 어두운 북녘 땅까지 왔는지 물었다.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4. 대화는 이 가벼운 질문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흘러갔다. 나는 그 정도 나이, 그 정도 커리어라면 당연히 답을 찾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두 분 모두 여전히 고민하고 계셨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잘하는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머리가 띵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5. 대학에 가면, 회사에 다니면, 한국을 떠나면, 직업을 바꾸면 답이 보일 거라 생각했다. 물론 아니었다. 삶은 여전히 뿌옇고 막연하고 답답했다. 종종 답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반짝거렸지만, 답을 찾는 행운은 오지 않았다.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방황도 끝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산더미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야 할까. 춥고 어두운 계절도 좌절을 부추겼다.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해보니 고민은 그 자체로도 방향이었다. 나는 답을 찾아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 순간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고, 부단히 해내면서 여기로 왔다. 앞으로도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운 좋게 답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게 내가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겨울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전 22화 권태로운 시간들의 다섯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