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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직장인 Apr 19. 2022

나를 찾아가는 100가지 질문_열 번째

오늘, 어떤 음식을 먹으면 행복할 것 같나요?

  '당신의 인생에 마지막 하루가 남아 있습니다. 단 한번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나요?'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고 얘기할 것인가? 나도 고민을 많이 했다. 많은 음식이 있고 먹어 본 음식보다 못 먹어 본 음식이 더 많기 때문에 단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 고민 끝에 나는 단 하나의 인생의 소울푸드(Soul Food)를 정했다. 나에게 이 음식은 매일 먹고 싶고 먹으면 힘이 나고 먹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 먹으면 추억에 잠기는 음식이다. 나의 소울푸드(Soul Food)는 바로 어머니가 해 주신 신김치를 하얀 쌀밥 위에 얹어먹는 것이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김밥처럼 한 단어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 음식을 나의 소울푸드로 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간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고3 수험생이었다. 전국이 붉은 악마로 물들어 있을 때 나는 불쌍하게도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학교에서는 전 학년들에게 축구 경기를 볼 수 있게 학교에서 틀어주거나 늦은 저녁 경기이면 일찍 하교를 시켜줬다. 당시 내가 다니던 지역의 학교는 12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아침 8시에 등교해서 그날 12시까지 무려 16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학교 식당에서 점심, 저녁을 먹고 하교를 하고 집에 오면 항상 배가 고팠다. 아버지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항상 주무시지 않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깨어 있으셨다. 그리고는 항상 나에게 "배고프지?"를 물어보셨다. 피곤할 때는 그냥 씻고 잤지만 배가 너무 고플 경우에는 어머니에게 야식을 달라고 했다.

 국수, 두부구이, 김밥, 빵, 고구마 등 내가 좋아하는 야식을 많이 만들어 주셨지만 나의 기억 속에 가장 좋았던 야식은 하얀 쌀밥에 신김치였다. 내가 갓 지은 쌀밥을 숟가락으로 푸면 어머니는 손으로 신김치를 쭉 찢어서 나의 숟가락 위에 얹어주셨다. 어머니와 도란도란 그날에 있었던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머니의 큰 손으로 신김치를 찢어서 올려주실 때마다 너무 행복했다. 16시간 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받았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하얀 쌀밥에 신 김치 하나로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맛은 이 세상 어떤 요리사가 요리를 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음식 아니 요리였다.

 지금도 가끔씩 어머니 집에 가면 그때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정말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어떻게든 자식 하나 믿고 살아가시는 어머니와 삐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으로 보답하겠다는 고등학교 3학년 아들 사이에 흰쌀밥과 신 김치는 그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메뉴가 되어 있었다.


[ 음식의 , 영혼을 달래준다 ]


 아내와 나는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백종원 씨가 했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는 방송을 즐겨본다. 백종원 씨가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먹었던 음식들을 현지에서 직접 소개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방법도 설명해주면서 그 음식의 역사적인 유례까지 알려주는 일석 3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 방송을 볼 때마다 백종원 씨를 보면서 '나도 먹고 싶다', 어쩜 저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지?' 등 여러 번 감탄을 하고 나중에 그 도시에 간다면 꼭 백종원 씨가 추천해 준 식당들을 무조건 가겠다는 다짐을 수시로 했다.

 사람들은 음식의 힘을 알고 있다. 음식 하나가 나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힘들게 일 한 뒤에 집에 와서 시원한 캔맥주 한 개 마시는 것, 언제 어디서 누구와 먹더라도 맛있는 치킨과 맥주의 조합, 짜장면에 탕수육이라는 환상의 궁합 등 음식 하나로 울고 웃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안다. 그래서 현실에 지치고 도망가고 싶을 때나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지만 아무도 없을 때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생각난다.

 나에게 어머니의 흰쌀밥과 신김치는 그런 존재다. 지금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내가 그리워지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공부와 대학만을 목표로 잠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공부했던 내가 생각이 나면 어머니 집으로 가서 밥을 달라고 한다. 출가하여 곧 마흔이 다 돼가는 아들이 밥 달라고 하면 어머니는 귀찮다고 하시지만 금세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한상을 차려주신다. 밥을 먹으면서 그때의 추억을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그 당시 느꼈던 생각들을 공유하다 보면 지금의 내가 느끼고 있는 현실의 힘든 일들, 걱정하고 있는 골치 아픈 일들도 모두 싹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음식의 힘이다.

 2018년 김태리와 류준열이 나온 리플 포레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답답한 도시 생활을 잠시 멈추고 옛날 어머니와 살던 고향집으로 내려와 고향 친구들과 지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얻는 내용의 영화였다. 당시에 시골이라는 도시와는 단절된 환경과 소소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일상 그리고 주인공 김태리가 친구들과 자신을 위해 했던 다양한 음식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 저런 게 진정한 삶인데, 나는 지금 여기서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중에서 생각나는 대사가 하나 있다.


겨울이 와야 정말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가 있는 거야

 김태리의 엄마 역할로 나온 문소리 씨가 한 대사인데 곶감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더 이해가 빠르고 더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는 항상 빨리빨리를 외치고 남들보다 먼저, 다른 사람보다 잘 살기 위해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면서 달리는 경주마처럼 산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지는 것 같았고 무능력해 보였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여유를 즐기면 불안했고 나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고 완벽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만의 인생을 한 걸음씩 차근차근 걸어보면 될 텐데 조급한 나머지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사는 모습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나무에 열린 감이 곶감이 되기까지에도 시간이 꽤 걸린다. 조급해하지 않고 감나무에 감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감이 달리면 그 감을 따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지붕 한편에 매달아 놓고 또다시 기다리다 보면 정말 맛있고 쫄깃쫄깃한 감을 맛볼 수 있다. 곶감이 잘 됐는지 미리 먹었다가는 떫은맛이 나고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감말랭이처럼 얇아진다. 이처럼 기다림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겪는 시간의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보다 앞서가거나 내가 쫓아가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매 순간 현실에 최선을 다 하다 보면 나의 인생 여정도 맛 좋은 곶감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이것 또한 음식의 힘이다.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먹기 전부터 기대가 되고 먹고 나면 힘을 얻는 음식. 그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방법 중의 하나이며, 기다리던 음식이 나의 입과 만나는 순간은 현실을 잘 참고 견디고 살아온 나에 대한 작은 선물이자 위로고 내일을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지금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혼자 또는 둘이서 나의 소울푸드를 한번 즐겨보길 바란다. 그 잠깐의 여유가 지금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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