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잔잔 Jul 30. 2020

여섯 번째 인터뷰 : 선비 (2)

선비와 나의 이야기

(본 인터뷰는 화요일에 올린 1편과 이어지는 2편입니다.)


Q11.

'우리의 힘은 우리의 약점에서 자라난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은 언제나 자진해서 낮은 자리에 서려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자기 신뢰>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요. 스스로 생각하는 약점이 있다면?     

-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남을 대할 때 종종 자신 없어 하는 것.          


Q12.

오랫동안 이어져 온 버릇이 있나요?     

-

얼마 전에 룸메이트와 얘기하다가 깨달은 건데, 그리고 약간 슬픈 버릇일 수도 있는데, 어딘가에 가면 그 장소의 CCTV 위치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어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가 안전한 위치가 어디고 사각지대가 어디인지 확인하려는 버릇인데요, 이 버릇을 가진 사람으로서 새삼 느끼는 건 한국에는 CCTV가 정말 많고 이곳에서는 찾기 정말로 힘들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여기에는 있어야 하지 않아?! 싶은 곳에도 좀처럼 없더라고요. 외국인들이 한국은 CCTV가 많다 많다 하도 그러기에 ‘뭐 그리 많다고-’ 코웃음을 쳤는데 새삼 이해가 되는 문화충격입니다.

이건 대외적인 버릇이고 내면적인 버릇으로는 뭐든지 뒤집어서 생각해보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덕분에 항상 현실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성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친구가 말해준 저의 말하기 방식 중 하나는 제가 굉장히 만화 주인공(?)처럼 말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를테면 “아아 정말 좋지 않은 일을 겪었어… 하지만 이런 교훈을 얻었으니 됐어!” 라고 말하는 식이라나.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가장 최악의 가능성을 상정하면서도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최선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저의 버릇같은 성격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13.

현재 어떤 디자인과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 궁금해요.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차림이 있나요?     

-

한국에 있을 때도 화려하게 입고 다녔다기보다는 언제나 단-정 반-듯한 옷차림으로 다녔던 느낌이었는데 (맨날 슬랙스 입고 다녀서 진심으로 슬랙스 몇 개냐고 질문 많이 받음) 이 곳에 와서는 자유롭고 편안함이 최우선에 있게 된 것 같네요. 물론 슬랙스도 불편하게 입었던 편은 아니었지만, 단정함보다는 캐주얼함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그래도 약간 청개구리 심보일수도 있겠지만 흔히 말하듯이 한국은 남의 이목을 더 신경 쓰고~ 유럽은 자유롭다~ 따위의 식으로 무엇이 더 좋다고는 하고 싶지 않네요. 둘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저 제 개인적인 옷입는 방식이 상황에 따라 변화한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곧 일을 시작하고 신분에도 상황에도 변화가 생기다면 또 바뀔 수도 있겠죠. 지금 당장은 전공답게 앞에는 I Hate Math라고 써있고 뒷면에는 포아송 분포 공식이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이 옷 입고 빨래하러 갔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학생들의 무수한 악수 요청도 받았어요.          


Q14.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가장 먼저 내세우고 싶은 공약은?     

-

음, 차별 금지법? 요즘엔 보면 볼수록 혐오 사회라는 말이 걸맞은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들이 서로를 너무 미워하는 것 같고 혐오 표현을 일삼으며 때로는 도가 지나친 것 같다고 느껴요. 성별 갈등, 세대 갈등, 빈부 갈등, 학력 갈등, 인종 갈등, 온갖 소수자 갈등… 또 어느 정도는 이러한 갈등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느 정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본성으로만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이겠죠. 다만 이런 공약으로 출마했다간 낙선하기 딱 좋을 수도….          


Q15.

내 인생의 BGM을 한 곡만 꼽자면? 그 이유와 주로 어떤 때 그 노래를 듣는지 궁금해요.     

-

자우림의 <있지>. 이 인터뷰를 하면서도 노동요 삼아 듣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자우림 특유의 음색과 악기의 개성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면서도 가사가 참 예뻐요. 뮤비도 상당히 아름답기에 유팬 작가님도 한 번쯤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 인생의 BGM으로 꼽았는데 재밌게도 뮤비를 볼 때 유팬 작가님이 상당히 많이 떠올랐습니다. 그 감성이 닮아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굳이 말하자면 이 노래는 슬픈 느낌의 곡이고 제가 유팬 작가님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는 사실 잔잔한 파스텔톤, 혹은 지브리에서 그릴 것 같은 진한 여름날의 녹음같은 이미지라 둘이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데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저 스스로도 설명을 못하겠지만, 뮤직비디오와 함께 꼭 함께 들어 보길 바라요. 애달픈 가사인 것 같으면서도 마냥 눈물을 쏟아내지는 않는 절제된 슬픔이 인상적인 노래예요. 특별히 어떤 때에 듣는다기보다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을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Q16. 특별 질문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욕심내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유롭게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해주세요.

-

진리를 찾는 것에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꼭 도덕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문제든지 대중적인 의견에 휩쓸려서가 아니라 나의 고민과 사고 끝에 ‘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 결론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든지 바뀌고 더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Q17.

마지막은 반대로 인터뷰어에게 보내는 질문입니다. 제게 묻고 싶은 질문 하나를 작성해주세요. 이번엔 제가 정성껏 답해볼게요.     

-

상당히 개인적인 질문일 수도 있어서, 혹시 게재할 때 생략하시고 싶으시다면 생략해주세요.     

‘자신의 인생을 살아라’라고들 이야기하곤 하지만 저는 오롯이 자신의 것만인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좋든 나쁘든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되니깐요. 소유권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영향력을 기준으로, 부모님, 가족, 유팬 작가님을 포함한 친구들, 그리고 또 내어주고 싶지는 않지만 껄끄러운 사람들마저도 어느 정도는 제 인생에 대해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영향을 받아들이며 그게 결국 한 사람의 개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유팬 작가님은 저로 인해 바뀐 점, 혹은 영향을 받은 점, 혹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사실 우리가 활발하게 교류하던 때가 꽤나 오래 전이네요. 2017 9 경이었으니 벌써  년이나 지났어요.  때는 일주일에   번씩은 만나다시피 했고, 만나지 않는 날에는 카톡으로  시간이고  시간이고 이야기를 죠.. 저는 당신의 합리적인 따뜻함이  좋았어요. "너무 투머치 아닐까?"라고 물으면 "이러한 시각에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라고 말해주곤 했죠. 그럼 ",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괜찮은  같네"라며 안도가 돼요.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곁에 두는  일종의 부적 같아요.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술자리에서  테이블만  노잼이 되는 아싸 법칙이 있거든요. 그런데 같은 테이블에 앉아  조곤조곤한 이야기를 눈을 빛내고 듣던 당신의 모습이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어요. 찰나의  모습에서도 그렇듯이, 남이 보는 시선보다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발견하려는  태도가 인생 전반에 자욱한  같아서 그것도 좋아요. 이런 점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확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분명  어딘가 저장되어있을 거예요.

앗 그리고 간단하게 한 질문을 더 해도 될까요? 16번 특별 질문에 관해 쓰다 떠오른 질문인데, 실제로 저도 받아본 적 있는 질문입니다. 만약에 죽어서 기억을 모두 잃을 사후 세계로 들어가기 직전, 단 한 가지를 물어볼 수 있다면 무엇을 물어보고 싶어요? 요점은 사후 세계에 들어가면 당연히 이 질문의 답에 대한 기억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가장 마지막 순간에, 그것도 답을 듣는다고 해도 곧 잊어버린다고 해도, 유팬 작가님이 가장 궁금한 건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 언니는 뭐 하고 있어요? 최대한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라고 묻고 싶네요. 아끼는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하고 싶어요. 언니 자리에는 어쩌면 배우자, 미래의 자녀, 반려견, 짝사랑, 절친의 이름이 들어갈 것 같아요. 분명한 건 그때의 저는 인류의 미스테리, 신의 존재 등에 대한 건 묻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


⟪ 인터뷰를 끝낸 시각 : 2020년. 07 월. 27 일. 오전  11시. 30 분. ⟫     

오늘은 제 생일이에요! 좋은 생일 인터뷰였습니다.

단번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걸 보니 정말 좋은 질문들이 많았다는 뜻인가 봐요. 저는 나름의 생각도 많고 상상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그런 상상의 범위가 대개는 지극히 현실적인 범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들이 많았거든요. (14번이라든지…) 확실히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면 상상도 좀처럼 하지 않는 유형이었기에 꽤 오래 고민한 문제들이 많았네요.

개인적인 문체가 호흡이 길고 장황한 만연체인 경우가 많아서, 이번 인터뷰는 자꾸 자르고 잘라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유팬 작가님의 꼼꼼한 교정을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 빽빽하게 답한 인터뷰 지를 돌려받으면, 감개무량하다. 따뜻한 시루떡 하나를 내밀었다가 두 손 넘치게 다른 선물을 받고 돌아온 기분처럼. 나의 질문과 선비의 답변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읽은 것만 같아 재밌었다. 몇 달 전 나를 칭찬해주며 중얼거려본다. 인터뷰집 시작하길 잘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여섯 번째 인터뷰 : 선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