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일기 _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싶었을까
나는 왜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을까.
한창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마치 육아일기처럼 아이들과 있었던 소소하고 웃겼던 일들이나 마음 아팠던 일들을 SNS에 일기처럼 적어놓곤 했었다. 그래서 가끔 그 글들과 사진을 볼 때마다 어떤 순간들이 생각나서 혼자 웃기도 하고 추억에 빠지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한 시절의 기록들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사실 진짜 많은 일이 있었고, 감정이 널뛰듯 힘겨웠던 순간들이 꽤 많았는데, 왜 그런 것들은 기록해 놓지 않았을까.
작년 봄에 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지게 된 어떤 분이 있었다. 딸이 내 아이와 같은 나이였고, 성격이 비슷해서 커피 마시며 몇 마디 나누다가 급속도로 동지애를 느끼게 된 분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도 할 수 없었던 내 얘기를 그날 처음 만났던 분에게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었다. 신기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가서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는 아이를 지켜보며 걱정이 많으셨고, 나는 힘겨운 사춘기 시절을 이제 막 통과하고 안정을 찾은 아이와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였다. 우리는 사춘기 딸아이를 키우는 일의 힘겨움과 서로의 속 터지는 어려움을 거의 98%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 방구석에서 오랫동안 썩어가고 있던 과일 배틀을 할 때는 배가 아프도록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에 대한 책임을 부모, 특히 거의 엄마에게만 떠맡기다시피 하는 한국 풍토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가진 외로움과 고군분투를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녀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2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온 신경이 아이에 가 있고, 마음은 그게 아닌데 자꾸 아이를 탓하게 되는 말이 튀어나와 괜히 사건만 더 키웠던 참 조급하고 불안했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 이렇게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까지 잔뜩 머금고 축 늘어진 짐을 혼자 짊어지고 무작정 뛰어다니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말주변이 없는 편이어서 웬만하면 조언 같은 건 거의 하지 않은 성격이지만, 엄마들을 보면 예전에 혼자 구렁텅이에서 헤매던 내가 생각나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난 정신과 의사도 상담가도 아니지만, 그 시절을 아무 준비 없이 온몸으로 통과하고 실패하며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그때는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결국 시간은 흐른다는 것. 특히 아이들의 삶과 생각은 유독 더 빨리 변한다는 것.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어떤 문제들도 예상치 않은 전개로 방향이 바뀌고, 추억처럼 이야기할 시간이 온다는 것. 그리고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엄마로서 나는 어떤 일이 생겨도 중심을 잡고 잘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것.
한 아이를 키우는 일, 특히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모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 정답이나 해설집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보려고 노력할 때, 작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실타래를 따라 아무 성과도 보이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작은 불빛을 발견하게 되고, 그게 아마도 관계의 시작일 것이다.
아마 이 이야기는 내가 온갖 불안감과 두려움을 꼭 끌어안고 걷다가 발견했던 관계의 실패와 또 다른 시작의 기록일 것이다. 이 바보 같은 이야기가 자신을 자책하며 숨 막히도록 답답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긴 한숨을 토해놓을 수 있는 작은 숨구멍이라도 될 수 있으면 참 다행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