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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루 Mar 26. 2024

54만 명 히키코모리 고립 · 은둔 청년에게

우리가 미안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2023 고립 · 은둔 청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사회와 단절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청년들이 전체 청년인구의 5%인 54만 명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13-18세 사이 고립·은둔 청소년도 14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스럽니다.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동사 "引きこもる"의 명사형에서 유래한 단어, '히키코모리'는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장기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1970년대부터 일본 사회에서 나타났고 일본의 경우 경기침체가 심해진 1990년대부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걱정스러운 사회 현상이며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빠르게 해결할수록 좋겠지만, 그렇다고 초조함과 성급함만으로 해결할 일이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세상으로 나오지 않기로 결심한 분들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히키코모리', '은둔형외톨이'라는 말로 이 글들 시작했던 것, 듣기 싫었을 것 같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안 나갔을 뿐인데, 심각한 사회 현상이네 어쩌네 하면서 법석을 떠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한 가지 강력한 가설을 뒷받침하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안전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집 안에만 있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집 안에서만, 어떤 분은 방 안에서만 지내고 싶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다 보면 "왜 그러고 있냐, 그렇게 마음이 약한 것이 문제다. 게을러 터졌다." 와 같은 말을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들어왔을 겁니다. 이런 말들은 여러분이 집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의 탓으로 돌리는 말로 들렸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집 안에만 머물고 싶어진 청년이 오십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정말 많은 수치이죠. 많은 청년이 세상으로 나오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세상 속에 그럴만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이유로 학교폭력, 집단괴롭힘, 경쟁적 교육환경, 대인관계 문제 등 여러가지를 꼽는데, 여러분들에게는 이 문제들이 현재는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이런 일들로부터 괴로울 일이 안 생기니까요. 아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도 더이상 괴롭고 싶지 않아서일겁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의식적 · 무의식적 결정이었을 겁니다.


여러분이 겪은 일들은 개인마다 다 다르겠지만 거기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을텐데, 아마 사람들과의 연결감이 끊어지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우리 마음은 원래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 좋은 쪽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주 소수의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선호합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을 뿐더러 관심이 아예 없어진 것을 나타냅니다. 원래는 잘 지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 사이에는 반복적인 관계 손상 경험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약하다고 하지만 또 견고한 구석이 있어서 관계가 한 번 틀어졌다고 마음을 닫지는 않습니다.


집 안에만 있겠다고 한 결정은 꽤 오랫동안 버티고 버티다 내린 결정일 겁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면 마음은 문을 습니다. 여러분 잘못아닙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버티고 있었는데 우리가, 엄마가, 아빠가, 가족이 친구가 또 사회가 몰랐습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혼자서 마음의 문을 닫게까지 만들면 안됐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그저 마음이 닫힌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라도 인정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열기만 하면 연결될 또 다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아쉽게도 여러분 가까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또 다른 마음을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언젠가 집 밖으로 나가 보는 가능성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 수 있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은 집 안에서 지내기에는 넘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습니다. 세상이 그다지 안전해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전해 보이는 곳을 찾아 자기 만의 고유성의 씨앗도 뿌리고 가꿀 수 있다면 참 좋지 않겠어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떤 마음은 세상의 어떤 작은 자극도 위협으로 느끼며 자기를 보호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충분히 자신에게 시간을 주세요.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상의 아름답고 즐거운 것들을 찾아 그것들과 교감해 보세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을 위해서 마음을 살피고 기다려주고 시간을 주세요. 마음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작동하는지 살펴보세요. 되면 되는 데에서부터 안되면 안되는 데에서부터 함께 살펴주고 기다려 줄 사람들을 찾는 것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응원합니다.



우울을 고치는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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