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와 컴플라이언스의 사이
접대 (接待) - 손님을 맞아서 시중을 듬.
국어사전에서 접대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이렇게 짧게 설명되어 있다. 짧지만 중요한 말이 들어있다. "시중을 듬" 즉,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고 원하는 것을 해준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회사에서 접대를 하는 것은 보통 영업 관련된 직종에서 일어난다. 우리 회사의 물건 혹은 서비스를 사주는 "고객"을 접대한다. 접대라 해서 무조건 영화 "내부자"에 나오는 그런 극단적이고 퇴폐적인 자리를 연상하진 마시길. --;; 같이 식사를 하거나 적당히 술을 먹거나 골프 정도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돈은 "을"이 지불한다.
이런 접대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도 고객과 같이 식사를 하거나 골프를 친다. 다만, 우리와 같이 이렇게 일상적이고 흔하게 일어나지 않을 뿐. 특히 같이 취하도록 술을 먹는 경우는 아주 친밀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럼 한국만 특별한가? 아니,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쪽에서는 대부분 유사한 형태의 접대가 존재한다. 아무래도 상하 관계, 갑을 관계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시아 특유의 정서가 영향을 준 듯.
그럼 한국에서 한국 기업/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외국계 글로벌 회사들은 접대를 한국식으로 할까, 서양식으로 할까?
과거에 다녔던 한 미국계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경비, 특히 접대비 등에 매우 민감했다. 술을 겸한 저녁식사는 아주 영업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금지였다. 심지어 고객과 함께 한 점심도 경비로 처리해주지 않아서 개인 돈을 지출해야 했다.
다른 회사에서 이직해온 영업 임원들은 처음에는 암것도 모르고 하던 대로 영업을 했다. 한우집에서 맛있는 한우를 먹고 2차로 양주를 먹으러 가고. 당연히 회사에서 경비 처리되겠지 믿고 질러댔다. 옆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도 아니 회사의 영업을 위해서 하는 건데 이것도 안해줘? 내가 본사랑 싸워서 얻어낼 거야! 하고 뿌리쳤다. 1-2달 후 경비를 정산하려고 영수증을 올리고 나서야 현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하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몇백만원의 경비를 자신이 감당해야 했으니까.
재미있는 것은 접대에 대한 것은 그렇게 엄격했지만 일 관련된 경비는 짜게 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일로 다닐 때는 택시를 타고 다니게 했고 일을 하기 위한 핸드폰 해외통화는 얼마가 나와도 다 처리해줬다. 고도로 성장하던 회사였기에 스톡옵션까지 직원들에게 너그럽게 기회를 제공했다.
외국계 회사라고 다 경비와 접대에 엄격한 것은 아니다. 역시 경험했던 다른 외국계 회사에서는 영업을 위한 접대비를 인정해줬다. 점심은 물론이거니와 저녁과 술도 모두 영업을 위한 활동이라고 하면 모두 경비를 처리해줬다. 외부 고객에 대한 접대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일 얘기를 하며 같이 밥을 먹고 술 한잔 하는 것에도 관대했다. (이 때 술 많이 먹었다. --;;)
물론 기본적인 규제에 대한 시스템이 갖춰줘 있기 때문에 Compliance에 대한 것은 엄격히 처리했다. 사회 통념에 맞지 않는 장소나 너무 과다한 접대가 있는 것은 소명을 받고 때에 따라서는 인사적인 처분을 받는 경우까지 있었다.
특정 업종에 대한 (어디라고 밝히긴 곤란하지만) 영업이 회사의 대부분 매출을 차지하는 곳은 접대를 어마어마하게 하는 곳들도 있다고 전해들었다. 전해들은 한 외국계 회사는 1명의 영업사원이 월 천만원의 예산을 가지고 접대하는 곳도 있다고... (살짝 카더라다.)
김영란법이 합헌 판결을 받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정치권과 특히 언론계에서는 연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소비경제가 위축될 것이다, 제대로 된 취재를 할 수 없다 등등 별 소리를 다 한다. 이 소리만 들으면 마치 엄청난 규제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은 사실 간단하다. 3-5-10의 법칙.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지키면 된다. 그런데 국회위원들과 기자들이 난리를 친다. 1인당 식사비 3만원으로는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없다, 선물 5만원으로는 한우 선물을 할 수가 없다. 엉엉 징징.
사실 솔직히 얘기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여태까지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과 술을 융숭히 접대 받아왔고 명절이면 좋은 한우 선물세트를 집에 떡하니 안겨줬는데 갑자기 그게 다 없어진다면 얼마나 슬프고 허전할지. 다 짐작이 간다. 이해한다, 이해해.
개인 돈으로 먹을 때는 최대한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맛집을 찾고, 저렴하면서도 맛있게 먹는 집을 찾는 사람들도 남이 사줄때는 비싼 곳을 가게 된다. 사주는 사람도 자기 돈이 아니다보니 느슨해진다. 1인당 7-8만원짜리도 흔쾌히 간다. 이해한다, 이해해.
지금 김영란법을 반대하며 소비경기 침체, 취재 곤란 등을 얘기하며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보며 측은지심에 잠긴다. 스스로도 얘기하며 얼마나 뻘쭘할까.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직원들/주니어 기자들을 들들 볶고 자신도 고민하고 있을까. 본질은 그냥 허접하게 밥 얻어먹기 싫은 거니까. 얼마나 고생하는 우린데 품위 유지는 해야 하잖아, 왜 우리만 가지고 그래 사기업들 보면 다 영업들한테 좋은 거 얻어먹는데! 이게 심정일테니까.
내가 경험했던 접대를 엄격히 제한했던 외국계 회사의 영업들은 그럼 고객들이 다 멀리했을까? 좋은 밥과 술도 안 사준다고? 아니, 오히려 고객들이 이해해줬다.
"니네 회사에서 경비 처리도 안된다며~ 그냥 점심이나 저녁때 오지 말고 오후 한 2시나 3시쯤 와서 일얘기 하면서 커피나 한잔 하자."
"같이 점심이나 합시다. 그 회사는 경비처리 안된다면서요. 간단히 국밥이나 한 그릇 해요. 내가 살께요."
영업에는 대부분의 경우 별 지장 없었다. 뒤도 안 보고 접대만 바라는 미친 X가 의사결정권자로 있는 곳을 제외하면.
국회위원님, 공직자, 기자님들. 조금 참고 1인당 3만원 안에서 밥먹고 해보세요.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닙니다. 그동안 받았던 게 비정상적인 거에요. 그리고 1인당 3만원도 적은 돈이 아닙니다. 좋은 맛집들 다니면서 자영업 경기 활성화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