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여자 풋살 동호회 '팀카카오'의 골 때리는 에세이
풋살을 잘하려면 흔히들 운동 신경이나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보다 더 요구되는 덕목이 있었으니, 바로 적극성과 친화력이다.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하는 팀 스포츠이다 보니 같이하는 사람들과 친해져야 확실히 합이 잘 맞는다.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어도 필드 위에서는 ‘헤이!’, ‘들어가!’, ‘몇 번 수비 비었어’ 등 최대한 큰 목소리로 외쳐 주는 콜 플레이도 필수다. 심지어 우리 팀끼리만 친해진다고 되는 게 또 아니다. 친선 경기를 잡을 때, 구장은 있는데 인원은 안 모여 용병을 모집할 때, 구장도 없고 인원도 없는데 공은 차고 싶어 ‘플랩'과 같은 소셜 매치에 나갈 때 등등…언제나 풋살엔 사람이 필요하다. 다른 팀 사람들, 그리고 인근 지역 풋살장에서 수상할 정도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도 한두 명씩 알아 가며 내적 친밀감도 쌓고 인스타 팔로잉 목록도 쌓아야 한다. 이렇게 풋살은 필연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할 수밖에 없는, 아주 지독히 외향적인 운동이다.
나는 INFJ다. 이미 한철 지난 떡밥인 MBTI를 대뜸 밝히는 이유는 MBTI 테스트 피셜 무려 96%의 내향성을 자랑(?)하는 대문자 ‘I’라는 특수성을 굳이 설명하고 싶어서다. 팀 스포츠 같은 건 엄두도 못 냈고, 3명 이상의 사람들과 한자리에 있기만 해도 기가 쪽쪽 빨려서 피해 다니기 바빴다. 뭐든 혼자 하는 게 제일 스트레스도 없고 편했다. 이런 내가 살면서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하는, 가장 힘든 일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 가는 일이었다.
코로나라는 역병이 돌아 집에서 원격 근무를 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갈 수 없고, 한두 명 만나는 약속을 잡기에도 조심스러웠던 시기가 나 같은 극내향인에게는 비교적 편한 환경일 거라 예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고 힘든 시기였다. ‘혼자’라는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나날들이 길어지다 보니 멘탈 건강에 적신호가 생겼다. 터널을 빠져나오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평소 나라면 절대 안 하는 ‘미친 짓’을 한번 해 보면 출구를 찾을 수도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로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모험을 결심했다. 당시 여자 연예인들이 축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파일럿 방영 중이었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마침 우리 지역에 창단하는 여자 풋살팀이 있어 마음먹은 타이밍에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다양한 연령대의 초보 여성들과 함께 매주 일요일마다 공을 찼다. 안 그래도 낯가림이 심한데 마스크로 말 그대로 얼굴 낯까지 가려 버리니 더더욱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매주 훈련이 끝나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고생하셨습니다….’ 하고 누가 말 걸까 봐 도망치듯 집에 갔다.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팀원들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머리부터 눈까지의 얼굴, 그리고 유니폼에 영어로 적힌 이름 두 글자가 전부였다. 그 당시 풋살은 나에게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자유, 체력을 기르는 운동, 골을 넣었을 때의 쾌감 정도의 의미였다. 팀워크, 팀 플레이 같은 건 잘 모르겠고 그냥 내가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한다는 게 중요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어서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도 또 하고 싶어질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의 인기에 힘입어 우리 회사에도 여자 풋살 동호회가 생긴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가입하기까지 몇 달 동안이나 망설였던 이유는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처음부터 알아 가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 이번에는 심지어 같은 회사 사람들이라는 장벽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동호회에는 협업했던 부서의 크루도 있었고, 서로 이름만 아는 사이였던 애매한 관계들도 있었다. 워라밸이나 통장 잔고는 못 지켜도 퍼스널 스페이스만큼은 죽었다 깨어나도 지켜야 하는 극내향인에게는 세상 중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결국 풋살을 주 2회 하고 싶은 마음이 이겨 버렸다.
큰 용기 내어 나간 팀카카오 첫 훈련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색했고 재미도 없었다. 당시에는 다른 팀원들도 서로 겨우 이름만 아는 사이라 서먹했다고 하고, 시작한 지 2~3개월 밖에 안 되어 기본 드리블과 패스 연습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그땐 매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으로 훈련을 나갔다. 갑자기 회사 일이 바빠져서, 목요일에 다른 일정이 생겨서, 운동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서… 온갖 핑곗거리를 생각해 갔다가 낯가리는 성격 탓에 팀 주장한테 먼저 말을 걸지도 못해 그만 두지도 못했다.
여전히 주장에게 은밀하게 말 걸기를 시도하던 한 달 차였던 2022년 5월 무렵, 단톡방에서는 첫 대회 출전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다수의 팀원들보다 1년 먼저 풋살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참가 제안을 받았다. ‘사실 저는 탈퇴할 생각인데요…’라는 말을 꺼내지 못해 물론 거절도 못 했다. 그렇게 정신 차려 보니 팀카카오 이름을 달고 초보 여성 직장인 동호회 리그 출전 선수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합을 맞춰 보기는커녕 같이 뛰는 팀원들의 이름을 겨우 외웠고, 대회 당일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었다.
풋살공도 팀원조차도 어색해하는 왕초보 팀이 대회날 갑자기 뛰어난 합을 보여 줬을 리는 없다. 마지막 경기만을 앞둔 시점까지 한 골도 터지지 않았다. 당일 주전 공격수로 뛰었던 나는 번번이 골 찬스를 놓친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고, 상대적으로 출전 시간이 짧았던 초보 팀원들에게, 또 묵묵히 수비를 맡아 준 베테랑 팀원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원래도 소극적인데 부담감에 소심해지기까지 한 극내향인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마지막 경기를 뛰었다.
그러다 한번 원기옥을 모아 골문 앞에서 야심 차게 슈팅을 했는데 상대팀 골키퍼가 발로 걷어내 선방을 했다. 순간 나는 보기 드문 침착함을 발휘해 키퍼 발을 맞고 내 왼쪽으로 굴러온 공을 왼발로 한 번 더 찼다. 근데 어? 됐다… 골!! 공이 확실히 그물망 안에 꽂힌 걸 두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괴성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팀원들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달려와 나를 일으키며 안아 주는데, 하루종일 찐하게 같은 감정을 나눈 이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보였다. 분명 낯설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그 얼굴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라고 느껴졌다. 그 순간 어떤 거대한 물결이 내 안에 깊게 밀려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왠지 이 얼굴들과 아주 지독하게 엮이게 될 것 같다는 느낌.
그 경기에서 팀카카오는 브린의 골, 그리고 나의 추가골(사실 이 골이 더 멋있게 들어갔다)로 3:1을 기록하며 첫 승리를 맛봤다. 득점이 없었던 이전 경기에서는 다행히 실점도 없었으므로, 예상 못 한 대상을 받은 어느 배우처럼 첫 출전 대회에서 얼떨결에 준우승을 해 버렸다. 우리가 더 지독하게 엮일 수밖에 없는 명분마저 생겨 버렸다. 사실상 처음 보는 사람들과 그렇게 밤늦도록 먹고 마시며 떠들며, 짧은 시간 안에 서로에 대해 아주 많은 걸 알아 간 그날의 뒤풀이는 극내향인의 인생에 기록할 만한 대형 사건이었다.
그날이 과몰입의 시작이었다. 집에만 있던 내가 매주 밖에 나와 경기를 뛰고 맥주와 수다로 마무리하는 루틴이 일상이 된 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으려면 최소 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내가 만난 지 불과 몇 주 안 된 사람들 앞에서 무장 해제되어 버리는 게. 마음 편히 혼자 있는 게 제일 소중했던 내 삶에서 팀카카오가 우선순위가 된 게. 팀카카오의 역사적인 첫 골과 함께 제2의 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반농담으로 ‘팀카카오를 만나고 다시 태어난 것 같다’라고 소감을 말했다가 첫 대회날이었던 매년 5월 15일에 ‘제이시의 두 번째 생일’ 축하를 받고 있다. 사실 나의 골보다도 우리들의 풋살 열정의 불씨를 지폈던 그날을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뻔뻔하게 1년에 생일 축하를 두 번씩 받고 있다. 후훗-
그해 가을, 팀카카오와 엔씨소프트, 포스코의 여자 풋살 동호회가 모여 3파전 경기를 하는 ‘판교 리그’가 시작되었다. 외부 경기까지 와서 우리를 지도해 줄 코치가 없었기 때문에 팀카카오는 3개 조로 나눠서 조별로 자체 훈련을 하고 리그 출전 라인업을 짜기로 했다. 나는 팀카카오 첫 골 주인공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B조 조장을 맡게 됐다.
당시 나를 제외한 조원들은 풋살을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된 왕초보였는데 한창 열정이 넘칠 때였다. B조 조원들은 항상 훈련 출석률도 제일 높았고, 심지어 하루에 훈련 두 탕을 잡아도 지친 기색 없이 웃으며 열심히 해 줬다. 조원들의 열정에 더 책임감이 생겨 열심히 준비했다. 쉬는 시간에는 조용하다가도 훈련 중에는 적극적으로 ‘나이스!’를 외치며 최선을 다해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퇴근 후 밤새 풋살 유튜브를 찾아보며 다음 전술 훈련 커리큘럼을 짜고, 지난 연습 영상을 돌려 보며 개인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포지션과 매치 라인업을 엑셀로 수십 개씩 그려 가며 고민했다. 혹시 내가 풋살 코치로 전향했나? 싶을 정도로 과몰입하던 때였다. 특히 공격 상황에서 반대쪽 골대로 뛰어 들어가는 움직임을 약속하는 ‘파포스트 전술’은 연습을 거듭할수록 제법 합이 잘 맞아 가능성이 보였다. 이렇게 맞춰 본 게 실전에도 나온다면, 그래서 모두 성취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정도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침내 리그 당일. 풋살 햇병아리였던 B조 6명은 비장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연습한 만큼만 하자고 결의를 다진 후 엔씨소프트와 맞붙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제법 경기가 잘 풀렸다. 내가 공을 찔러 주면 반대쪽에 있는 팀원이 골대로 뛰어 들어갈 거란 확신이 있었고, 내 쪽에서 수비가 뚫리면 뒤에서 보고 있던 팀원이 움직여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특히 파포스트 전술이 얼추 비슷하게 나왔을 땐, 비록 간발의 차로 골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미 이긴 것처럼 세상 뿌듯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팀워크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열심히 합을 맞춰 보며 노력했을 때 실전에서 패스도 잘 맞고, 같이 플레이를 만들어 가는 보람도 있다는 걸. 그 노력의 결과를 증명하듯이 제인이 아주 시원하게 골을 넣었고 1:0으로 경기가 마무리됐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울부짖으며 달려가 서로를 얼싸안았던 그 순간의 짜릿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 혼자 아득바득 넣었던 첫 골보다도 훨씬 값진, 6명의 노력과 시간들이 쌓여 함께 만든 우리의 첫 골. 이게 되네!
진정한 팀워크의 맛을 알게 된 후로 더 이상 ‘내가 넣은 골’은 중요하지 않아졌다. 대신 그다음 포스코와의 경기에서 나에게 기가 막힌 2대1 패스를 두 번이나 찔러 준 지젤의 어시스트를, 그다음 리그전에서 나의 어시스트로 데뷔골이자 멀티골을 기록한 지젤의 골을, 왼쪽 파포스트에서 강력한 무기였던 왼발잡이 그린의 골을, 드리블로 뚫고 들어가 침착하게 마무리해 내는 카야의 골을 더 선명히 기억한다. B조뿐만 아니라 모든 팀카카오 팀원들의 얼굴을 보면 경기 중에 도와줘서, 해내 줘서, 함께해 줘서 고마웠던 순간들이 하나하나 다 떠오른다.
거의 3년째 징하게 어울리다 보니 이제는 경기장 밖에서도 자연스레 팀워크가 나오는 사이가 됐다. 내가 패스하면 이 사람이 어디로 뛸지 눈빛만 봐도 아는 것처럼, 때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미리 알 것도 같다. 그만큼 마음이 잘 통한다는 거겠지. 이제는 좋은 팀원을 넘어 인생에서 소중한 친구들이 생겼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며 고독을 자처했던 지난 날들은 거의 전생 같다. 풋살을 혼자 할 수 없듯이 인생도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함께하면 더 재미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 준 풋살과 팀카카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고독한 방구석 내향인들이여, 가끔 사람의 온기가 그리울 땐 팀 스포츠 한번 ‘츄라이’ 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