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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안전하게 여행하는 법

Day15. 다시 만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by 이리터

여행의 절반이 지나고 후반부가 시작되는 15일째 아침, 비행기 타러 가는 길이니 다시 한번 짐을 점검했다. 아직 한여름인 남프랑스 니스를 떠나 가을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간다. 숙소 근처에 있는 베이글 가게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며 니스에서의 추억을 정리했다.

IMG_9208.jpg 벽지 환 공포증 주의

중앙역에서 버스로 15분만 가면 공항이다. 니스 공항은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활기찬 기운이 가득했다. 대부분 놀러 온 사람들과 놀고 돌아가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보다. 역시 유럽의 대표 휴양지답다.


니스 공항에서 놀란 점 두 가지. 하나, 셀프 체크인도 가능한 게 아니라 셀프 체크인 밖에 없다. 키오스크 사용이 어렵거나 도움이 필요해도 창구 직원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 나는 괜찮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힘드시지 않을까 걱정. 둘, 스타벅스가 텅 비어있는데 앉을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빈 잔이나 휴지를 테이블에 그대로 두고 가기 때문이다. 문화 차이겠지만 무거운 유리잔이나 접시도 아니고 다 쓰레기인데, 이 정도는 각자 나가면서 버리는 우리나라 문화가 낫다고 생각했다.

IMG_9215.jpg 강제 테이크아웃행

어쨌든 안녕 Nice, it was NICE meeting you.

IMG_9221.jpg 센스




2년 만에 다시 왔다. 베를린 다음으로 사랑하는 도시, 암스테르담. 그동안 다녀본 그 어느 도시 보다도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 부러워했고, 친절해서 감동했던 곳이라 꼭 다시 와보고 싶었다. 깔끔하고 친절해서 만족도 100% 였던 Schiphol 공항도 반갑다.

IMG_9256.jpg 베를린 다음 차애 도시, 인천공항 다음 차애 공항

호스텔 빈 방에 첫 타자로 체크인했을 때 기분이 짜릿하다. 말끔히 청소된 방에서 호텔 같은 쾌적함을 느낄 수 있고, 여러 개의 침대 중 내가 원하는 자리를 먼저 찜할 수 있다. 주로 나는 안쪽에 있는 1층 침대를 선호하는 편이다. 운 좋게 암스테르담에서는 나의 1순위 침대에서 두 밤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시작이 좋다.

IMG_9263.jpg 캐리어로 영역표시

날씨가 너무 좋아서 대충 짐만 놓고 서둘러 나왔다. 숙소가 Vondelpark 바로 옆인데 거의 공원 안에 있는 수준이라 밖으로 나오려면 공원을 통할 수밖에 없다. 걸어 다니는 사람보다 자전거가 많다. 역시 자전거의 도시에 왔음을 실감했다.

IMG_9267.jpg 차보다 무서운 자전거

암스테르담에 왔으면 가장 먼저 봐야 하는 필수코스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I amsterdam' 사인. 도시 이름에 'I' 하나 붙였을 뿐인데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 명소가 되고, 최고의 포토스팟이 된다. 어쩜 이렇게 도시 브랜딩을 기깔 나게 잘했을까. 정중앙에 서서 수면에 비치는 Rijksmuseum을 배경으로 보면 더 멋있다. 암스테르담에 왔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

IMG_9282 2.jpg 내가 바로 암스테르담이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펼쳐지는 광경. 꽤 넓은 공원에 Rijksmuseum, Stedelijk Museum, 반 고흐 미술관 등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있는 곳이라 'Museumplein'이라 불린다. 한 바퀴를 쭉 돌았는데 이 넓은 잔디밭에 자전거 세워두고 앉아서 책 보거나 누워서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미술관에 어떤 전시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지난번에 봤으니 이번에는 도시 구경을 좀 더 하는 걸로.

IMG_9288.jpg 행복지수 200%




트램 타고 못 가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암스테르담은 트램 시설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3일 동안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패스를 끊고, 이제 중앙역 쪽으로 가보자.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무슨 중세시대 성이나 궁전처럼 크고 화려하게 생겼다. 한 프레임에 다 담는 게 어려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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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테이크 먹으러 여기까지 왔다. 지난번에 먹고 너무 맛있어서 충격받았던 Loetje의 Centraal 지점이 목적지였다. 점심과 저녁 사이 애매한 시간대라 혹시나 운하가 보이는 야외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응 아니야. 사람이 너무 많아 제일 안쪽 자리에도 겨우 앉았다. 고기도 원래 이렇게 그냥 무난한 맛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여러모로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굶주렸기에 열심히 먹어뒀다.

IMG_9306 2.jpg beef tenderloin steak w/ Loetje's gravy

서빙에 계산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 다 먹고 나오니 벌써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다. 도시 전체에 '노을 필터'를 씌워놓은 듯, 한층 더 분위기 있어 보였다. 암스테르담 와서 아직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역시 비행기 타는 날은 하루가 참 짧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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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운하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곳곳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운하가 많다. 물이 흐르는 도시는 참 매력 있다. 삭막한 땅에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을 하고, 도시 내 서로 다른 지점들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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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 건물들이 비슷하게 생겨서 도시 고유의 느낌을 형성한다. 개성 강한 건물들이 중구난방 있는 도시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으나 (예를 들면 서울) 암스테르담은 어디서 봐도 '아, 여기는 암스테르담이구나' 싶은 통일감과 안정감이 느껴져 좋다. 집들이 귀엽게도 꼭 초콜릿 같이 생겨서 하나씩 오도독 뜯어먹어보고 싶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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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막 스테이크 썰고 왔지만, 이 거리를 지나는 이상 감튀를 안 먹을 수가 없다. 한 손에 Manneken Pis 감튀+마요 소스 정도 들어줘야 암스테르담 인싸. 혼자 먹기엔 투머치였지만 맛있긴 하다. 우리나라에도 감튀를 마요에 찍어먹는 취향이 보편화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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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암스테르담답다고 생각하는 풍경을 보러 갔다. 양 옆으로 암스테르담 특유의 건물들이 줄지어있고, 운하에는 유유자적 크루즈 배가 지나다니는 풍경. 예를 들면 딱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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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노을 지는 운하라니,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아까 마신 맥주의 취기가 뜬금없이 이제야 올라왔는지, 분위기에 취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감격했다. 그래, 내가 이런 풍경 보려고 암스테르담 또 왔지 막 이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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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평화롭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 골목에 사실 반전이 있다. 네덜란드에서 커피 마시려고 'coffeeshop' 간판을 보고 들어가면 큰일 난다. 커피를 파는 곳은 'cafe'. 그렇다면 'coffeeshop'은? 대마를 팔고 피우는 가게다. 그렇다. 이 운하 골목은 사실상 coffeeshop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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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하는 게 아니다. 술집처럼 일정 나이만 넘으면 들어갈 수 있고, 야외 테이블도 있어서 밖에 길거리에서 피우는 사람들도 있다. 큰 거리로 나가보면 대마나 대마가 함유된 초콜릿, 케이크 같은 걸 지역 특산물이나 기념품 파는 것처럼 파는 가게도 많다. 담배 냄새와 묘하게 다른 냄새가 코를 찌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엄연히 불법인 게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는 합법이고,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대놓고 팔고 하는 걸 보면 여전히 신기하다. 처음 봤을 땐 문화 충격이었는데 다들 너무 대수롭지 않게 하고 있으니, 이제 그냥 여기 문화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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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낯설긴 했는지 어둑어둑해지니 살짝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저녁에 만나 같이 구경하고 맥주 한 잔 하기로 동행을 구했어서, 기다리며 혼자 구경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몇 시간째 언제 오겠다는 얘기 없이 이제 막 숙소 도착했다, 너무 피곤하다, 자기 밥도 못 먹었다 투덜거리기만 해서 어이없었다.


이대로 첫날 구경을 끝내고 숙소에 들어가기는 너무 아쉬운데. 어둠이 내리고 coffeeshop에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저 옆 골목 홍등가에도 불이 켜진 걸 보니 도저히 용기가 안 났다. 피곤하실 텐데 쉬시라고 답장을 보내고 발걸음을 돌렸다. 역시 쫄보는 어쩔 수 없다. 모험해보려 했지만 결국 또 너무나도 안전하게 여행해버렸다.

IMG_9469.jpg 그래도 이 정도면 야경은 봤다 치자




지나가다 보고 굉장하다고 생각했던 곳 Leidseplein. 나름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과 펍이 밀집되어 있는 작은 광장이었다. 일행만 있었어도 여기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 한 잔 하는 건데. 소심해질 대로 소심해진 마음이라 당연히 용기를 못 냈다. 그냥 Albert Heijn에서 라들러 한 캔과 안주로 먹을 청포도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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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이 되도록 아직 우리 방에 체크인한 사람이 없었다. 4인실을 혼자 쓰게 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신나서 노래 틀어놓고, 밀린 손빨래도 하고, 취하지도 않는 라들러를 비우며 여유로운 밤을 보냈다.


모처럼 조용한 방에서 꿀잠을 청했는데 누군가가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몰래 쳐다보는 악몽을 꿨다. 벗어나려 몸부림치다 두 눈을 떴는데, 뙇! 키가 엄청 큰 서양인 여자 두 명이 핸드폰 라이트를 들고 자고 있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거다. 너무 놀라 거의 경기를 일으키면서 소리 질렀다. 그들은 늦은 비행기를 타고 이제 막 도착했다며, 깨워서 미안하다고 했다. 새벽 3시 체크인해서 자는 사람 관찰하는 건 대체 어느 나라 매너인가 조금 화가 나려고 했지만 호스텔이니 참을 수밖에. 이번 여행 최악의 잠자리였다.


바람 맞고, 악몽 꾸고, 잠 설치고. 2주 전 이번 여행 첫날이 생각났다. 다시 찾은 베를린이 예전 같지 않아 괜히 또 와서 실망하고 돌아가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두 번째 방문하는 도시의 첫날은 별로인 징크스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둘째 날은 설마, 오늘보다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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