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요일 다섯시 Apr 12. 2018

나는 개에게 많은 말을 알려주었다.

눈을 지그시 맞추는 날들


개가 알았던 말.


앉아, 가자, 이리와, 기다려

산책, 안돼, 옳지

우유, 냉장고, 간식, 목욕, 발톱, 뽀뽀
그리고 가족의 이름들.



개가 잊어버린 말.

그 모든 말들.




나는 개에게 많은 말을 알려주었다. 어린 개는 기억력이 좋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개는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간에 내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 고갯짓이 꼭 아기 참새 같아서 나는 모이 주듯 개에게 더 많은 말을 뿌려주었다. 개는 [우-유]라는 말을 좋아했다. [산-책]이라고 말을 하면, 개는 겅중겅중 뛰며 목줄을 물어왔다. [목-욕]이나 [발-톱]이라는 말을 하면, 개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옷장 후미진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개는 열 손가락이 조금 넘는 말들에 기뻐하고 슬퍼했다. 우리가 각자의 섬이라면, 개와 나 사이에 있는 몇 개의 단어가 돌다리가 되어 우리를 이어주었다. 그 말들은 쉽고도 간단했다. 가족의 이름, 잘 있었니, 잘 했다, 이리 와, 기다려, 나가자, 먹자, 사랑한다. 우리는 이 단어를 밟고 서로의 마음을 오고 갔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꽤 죽이 잘 맞았다. 적은 말로도 서로를 충분히 이해했다. 개는 설령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귀를 기울여 주었다. 집 밖에서 사람들과 넘치는 대화를 하고 돌아온 날,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써버려야 했던 날, 가슴에 그 어떤 말들도 남아있지 않은 휑한 날 조차도 집에 돌아와 개와 마주 앉으면 가슴 어딘가에 가라앉았던 말들이 둥둥 떠올랐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거침없는 날것의 속마음이었다. 나는 개에게만큼은 말에 색을 덧대거나, 있는 척 포장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개는 말없이 나를 지그시 바라봐주었다.  

 


개는 알고있던 말들을 조금씩 잊었다. 아니, 잊었다기보다 들리지가 않았다. 나이든 개는 귀가 먼저 고장이 났다. 내가 이쪽 섬에서 큰 소리로 개를 불러도 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우리 사이에 놓여있던 돌다리가 세월에 잠겼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제 우리는 손짓과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개는 <물>이라는 말을 듣지는 못해도 물그릇을 가리키는 손을 보면, 먹고 싶다고 왕왕 짖는다. <산책 가자>라는 말에 개는 귀 하나 까딱하지 않지만, 목줄을 코앞에 들이밀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눈을 지그시 맞추는 날들이 늘어간다. 이토록 개를 오랜 시간 바라본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에겐 더이상 말이 필요없으니 대신에 손을 바삐 움직인다. 틈만 나면 개를 쓰다듬고, 개도 틈이 보이면 다가와 내곁에 눕는다. 개를 쓰다듬고 안아주다보면 손끝으로 내 마음이 전해질 것만 같다. 다행히도 내게는 개를 만져줄 한 손이 있고, 안아줄 다른 한 손도 남아있다.  




이어지는 글과 사진이 궁금하시다면, 

신간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을 구매하시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