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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Apr 19. 2018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믿는 만큼 자라는 어른


엄마, 나는 우리 개 주인이야.


너, 주인이 뭔지 알아?


응, 안아주는 사람이지.




엄마, 엄마는 내 주인이야.


왜?


나를 매일 안아주잖아.




개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개를 집에 데리고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깊은 밤이 되자 개는 마른 기침을 시작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유기견 센터 직원은 개에게 이런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센터에는 온통 여기저기 아픈 개들이 천지다. 개는 그 틈에서 기가 잔뜩 죽어서 아픈 기색없이 지내다가, 우리 집에 와서야 겨우 발을 뻗고 아픈 티를 낸 건지도 모른다. 아프다고 우는 것도 뉘일 자리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적어도 유기견에게는.


개는 주로 새벽녘에 쇳소리를 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어린 개는 괴로워했다. 나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얼른 지갑을 열어 명함을 찾았다. 얼마 전 예방접종을 하러 들렀던 동물병원 전화번호가 거기에 적혀있었다. 밤늦게 걸려온 전화에도 수의사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 조언을 해 주었다.


개를 거꾸로 들고 흔드세요.
개가 뭔가를 삼킨 모양입니다.


나는 작은 털북숭이를 거꾸로 들고서 흔들었다. 개가 무언가를 먹은 기색은 없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어린 개는 한참 동안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개는 아무것도 뱉어내지 않았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싶으면 또다시 숨을 가쁘게 쉬었다. 나는 개를 내려놓았다가 거꾸로 들기를 반복했다. 숨 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주인이라는 작자는 몸을 뒤집어 흔들고 있으니, 개로서는 내가 원망스러울 일이었다. 하지만 개는 도망치지도 으르렁거리지도 않았다. 급기야 개는 그 자세로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었다. 도무지 긴장이라곤 없는 개였다. 아니, 개들은 원래 그런 걸까. 나는 개를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개의 호흡이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알아챘다. 살포시 감긴 눈 위에 가지런히 내려앉은 개의 속눈썹처럼 고른 숨소리였다.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우리는 동물병원을 찾았다.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개의 심장 모양새가 다른 개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기형적으로 짧아 음식을 원활히 소화시키기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들었다. 과연 개는 물을 마시거나 밥을 먹고 나서 곧잘 구토를 했다. 숨을 가쁘게 쉬는 날들이 이어졌다. 약도 처방도 없었다. 내가 달리 해 줄 수 있는 일 또한 없었다. 나는 조용한 새벽, 몸을 들썩이며 괴로워하는 개를 그저 아기 안듯 받치고서 심장을 마사지하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나는 정말이지 개를 덥석 데려왔다. 유기견 사이트에서 개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저 개를 구해야 해.'라는 헌신적인 마음이 아니라, '어쩐지 눈이 가네, 데려와야겠는걸.'이라는 마음으로 개를 데려왔다. 누군가는 그런 나에게 박수를 보냈고, 나는 들뜬 상태에서 그 마음을 운명이라는 단어로 포장했다. 나는 사연이 있는 개를 데리고 와서 한동안 그 포장을 뜯지 않았다. 그러다 개가 아프고나서야 운명이 어쩌고 사연이 저쩌고 했던 화려한 겉표지를 뜯어냈다. 거기에는 다만 작고 아픈 나의 개가 들어앉아 있었다.


개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검진표에 내 이름과 개 이름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내 이름 옆에 <보호자>라는 단어가 바짝 붙어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어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개의 기침소리에 나는 어느덧 적응을 했다. 개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도 내게 눈을 맞췄다. 나는 개를 잘 알지 못했지만, 개의 그 눈빛만은 알아챌 수 있었다. 개가 내게 몸을 맡겨왔다. 나는 하염없이 개의 가슴을 쓸어내려주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랬다. 그러다 깨어보면 아침이었다. 개는 어젯 밤 일을 잊고서 드르렁 코를 골았다. 개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금 더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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