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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May 10. 2018

외전)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우아한 늙은 개를 꿈꾸는 하룻강아지들을 위한 안내서

                                                                                                                                


나는 지금, 이 집에 사는 인간들이 [노. 트. 북]이라고 부르는 검은 기계 앞에 앉아있다. 개가 자판을 두들기는 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나는 발톱으로 한 자 한 자 자판을 눌러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연필이 아닌,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노. 트. 북]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발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우고서 개발새발 글씨를 쓰고 있겠지. 몇 년 동안 주인이 노트북을 할 때, 뒤에서 자는 척하며 곁눈질로 배워두길 정말 잘했다.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다. 하지만 자꾸만 발톱이 자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통에 나는 지금, 정말이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니 오타가 있더라도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기를 바란다. 멍.


늙은 개인 내가 어떻게 인간의 언어를 깨우쳤는지는 묻지 말아주길 바란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 글 쓰는 인간네 집 개로 13년을 살면 글을 읽고 쓰는 것쯤이야, 누워서 개껌 뜯기다. 다만 나는 이 능력을 인간에게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매우 현명한 개이기에, 내가 가진 능력이 세상에 탄로 난다면 앞으로 내게 펼쳐질 미래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 주인과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 이를테면,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물론이고 물건너 CNN에서 인터뷰를 하러 올지도 모른다. (나는 이를 대비해 영어 또한 습득해 두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지금처럼 우아한 삶(매일 늘어지게 먹고, 자고, 눕는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제 우연히 동네 산책길에서 만났던 한 하룻강아지의 절규 때문이다.   


동네 어귀를 산책하다 보면 어린 개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그들은 구름 위를 걷듯 걸음이 사뿐사뿐하다. 이들은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쳐도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고개를 훽 돌리고서 가버린다. 나원참, 요즘 하룻강아지들이란 정말이지 버릇이 없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나는 나의 어린 주인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저만치에서 웬 강아지 한 마리가 내쪽으로 뛰어오는 게 아닌가. 그 개는 얼핏 한 두 살 되어 보였는데, 건강한 체구와는 다르게 얼굴에 걱정과 근심이 두덕두덕 붙어있었다. 꼬리도 축 늘어진 것이 산책하러 나온 개의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 어린 개는 내 앞에서 잠시 꽁무니 냄새를 맡는 척하더니 급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순간, 그 개의 어린 주인으로 보이는 꼬마가 목줄을 훽 잡아당기며 개를 질질 끌고 가는 게 아닌가. 그 가여운 강아지는 내게서 멀어지면서도 기어코 한마디 말을 남겼다.  


 어떻게 하면 개답게 살 수 있는 건가요, 멍!


나는 개가 아기와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곤욕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하룻강아지들이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다. 개가 아기와 함께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위기를 잘 넘겨왔다. 이에 먼저 늙어본 개로서, 아기와 함께 사는 하룻강아지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남기려 한다. 젊다고 자만하는 하룻강아지들은 부디 이 글을 한 귀로 넘기지 말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하룻강아지여,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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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목요일 다섯시입니다.

2018년 새해부터 지금까지,

모두 스무 번의 목요일을 함께 해주셨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만 해도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이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 쉬워보였어요.

겁이 없었지요.


하지만 몇 년을 육아와 집안일만 해왔던지라

손도 머리도 꽁꽁 굳어서,

글 쓰는 내내 무척 애를 먹었답니다.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이를

온종일 돌보다 재우고,

매일매일,

밤 9시부터 12시까지 글을 썼습니다.

어떤 날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고,

어떤 날에는 후루룩 쓰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낙서만 하기도 했어요.


그런 날들이 모이고 모여, 벌써 20화까지 왔네요.

쓰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브런치에 달아주신 독자분들의 덧글과

따로 응원해주신 친구분들의 글을 읽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큰 힘이 됐습니다.


덕분에 예정대로 <아기와 늙은 개> 1부를 마감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


그리고 저는 잠시 자체 방학을 맞이하려 합니다.

이제 당분간 9시부터 12시까지

아이스크림도 먹고, tv도 좀 볼까 해요.

그리고 <아기와 늙은 개> 못다한 이야기를

조금씩 써볼까 합니다.


언젠가 불특정 목요일에,

다시 좋은 글, 좋은 소식 들고 찾아뵐게요.

모두들, 맑은 5월 보내세요.

-목요일 다섯시 드림.



p.s 가끔씩 작은 글, 외전류의 글을 올릴게요 :)

p.s2 이 글의 제목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는 가수, 서유석씨의 노래 제목을 인용했습니다.





이어지는 글과 사진이 궁금하시다면, 

신간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을 구매하시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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