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요일 다섯시 Apr 26. 2018

화요일을 호로록 먹어버린 아기

가장 좋아하는 일이 가장 두려운 일이 된다면,


우리는 한때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걸었다. 비좁은 뜬장에서 한 달 넘게 갇혀있었던 개는 마침내 참았던 산책욕을 터뜨렸다. 우리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산책을 했다. 비가 오면, 나는 이마트에서 받아온 노란 비닐봉지로 개에게 비옷을 만들어 주었다. 눈이 오는 날에는 일찌감치 일어나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서 내달리기를 좋아했다. 너는 하마터면 다시는 못 보았을 눈과 비를 맞으며 겅중겅중 자유를 노닐었다.


개는 먼저 아파트 화단을 꼼꼼하게 훑었다. 개들이 코를 킁킁거리는 건 마치 우리가 새로운 사람과 만났을 때 인사를 나누는 것과 같다. 개는 산책을 하며 온 세상과 인사를 나눴다. 꽃에게, 지렁이에게, 지나간 개의 흔적에게 거리낌 없이 손을(아니, 코를) 내밀었다. 개는 화단 점검을 마치고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가는 개 꽁무니 냄새를 맡기도 했고, 저보다 큰 검둥개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얌전한 작은 개들 앞에서는 부끄러운 듯 조용히 꼬리를 흔들었다.


우리는 공원을 한 바퀴 돌고서 운동장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운동장은 개에게 퍽 괜찮은 놀이터였다. 목줄을 잠시 풀어주면, 개는 순식간에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운동장을 내질렀다. 흙바닥에 온통 제 발자국을 새겼다. 개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개를 멀리서 보고 있는 게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개도, 그리고 나도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계를 보지 않고 넘쳐나는 시간을 산책으로 채웠다.  

 




이어지는 글과 사진이 궁금하시다면, 

신간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을 구매하시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전 17화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