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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늙은 개
by 목요일 다섯시 Apr 12. 2018

나는 개에게 많은 말을 알려주었다.

눈을 지그시 맞추는 날들


개가 알았던 말.


앉아, 가자, 이리와, 기다려

산책, 안돼, 옳지

우유, 냉장고, 간식, 목욕, 발톱, 뽀뽀
그리고 가족의 이름들.



개가 잊어버린 말.

그 모든 말들.




나는 개에게 많은 말을 알려주었다. 어린 개는 기억력이 좋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개는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간에 내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 고갯짓이 꼭 아기 참새 같아서 나는 모이 주듯 개에게 더 많은 말을 뿌려주었다. 개는 [우-유]라는 말을 좋아했다. [산-책]이라고 말을 하면, 개는 겅중겅중 뛰며 목줄을 물어왔다. [목-욕]이나 [발-톱]이라는 말을 하면, 개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옷장 후미진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개는 열 손가락이 조금 넘는 말들에 기뻐하고 슬퍼했다. 우리가 각자의 섬이라면, 개와 나 사이에 있는 몇 개의 단어가 돌다리가 되어 우리를 이어주었다. 그 말들은 쉽고도 간단했다. 가족의 이름, 잘 있었니, 잘 했다, 이리 와, 기다려, 나가자, 먹자, 사랑한다. 우리는 이 단어를 밟고 서로의 마음을 오고 갔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꽤 죽이 잘 맞았다. 적은 말로도 서로를 충분히 이해했다. 개는 설령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귀를 기울여 주었다. 집 밖에서 사람들과 넘치는 대화를 하고 돌아온 날,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써버려야 했던 날, 가슴에 그 어떤 말들도 남아있지 않은 휑한 날 조차도 집에 돌아와 개와 마주 앉으면 가슴 어딘가에 가라앉았던 말들이 둥둥 떠올랐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거침없는 날것의 속마음이었다. 나는 개에게만큼은 말에 색을 덧대거나, 있는 척 포장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개는 말없이 나를 지그시 바라봐주었다.  

 


개는 알고있던 말들을 조금씩 잊었다. 아니, 잊었다기보다 들리지가 않았다. 나이든 개는 귀가 먼저 고장이 났다. 내가 이쪽 섬에서 큰 소리로 개를 불러도 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우리 사이에 놓여있던 돌다리가 세월에 잠겼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제 우리는 손짓과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개는 <물>이라는 말을 듣지는 못해도 물그릇을 가리키는 손을 보면, 먹고 싶다고 왕왕 짖는다. <산책 가자>라는 말에 개는 귀 하나 까딱하지 않지만, 목줄을 코앞에 들이밀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눈을 지그시 맞추는 날들이 늘어간다. 이토록 개를 오랜 시간 바라본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에겐 더이상 말이 필요없으니 대신에 손을 바삐 움직인다. 틈만 나면 개를 쓰다듬고, 개도 틈이 보이면 다가와 내곁에 눕는다. 개를 쓰다듬고 안아주다보면 손끝으로 내 마음이 전해질 것만 같다. 다행히도 내게는 개를 만져줄 한 손이 있고, 안아줄 다른 한 손도 남아있다.  





아기는 불행히도 밥을 잘 먹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한 입이라도 더 먹여볼 심산으로 식사시간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있는 말 없는 말을 쥐어 짜내며 아기의 혼을 빼놓았다. 아기는 현란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입술을 보며 제 입에 무엇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꿀떡꿀떡 밥을 넘겼다. 이것이 문제의 시초였다.  


아기는 하루 종일 이야기를 졸랐다. 내 입에서 옛날이야기와 내 멋대로 지어낸 창작동화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내가 이토록 달변가였던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입은 물꼬가 트였다. 아기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하는 말은 "엄마, 왜 말 안 해?"였다. 나는 눈곱을 떼기도 전에 말문을 떼야했고, 잠들기 전까지 입을 나불거려야 했다. 밤이 되면, 그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짜깁기해서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읊고 나서야 아기를 재울 수 있었다. 아기를 겨우 재우고 나면 혀가 바싹 마르고 입 주위가 얼얼했다.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늘었다. 나는 점차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역할을 바꿨다. 아기는 매일같이 이야기를 지어냈는데 이야기의 주인공은 늘 우리 집 개였다. 아기는 늙어서 뛰지 못하는 개를 용감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개로 변신시켜 주었다. 어느 날엔 아기가 연필을 내 손에 쥐어주더니 개의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나는 개 이름을 크게 써 주었다. 아기는 온종일 그 글자를 들여다보더니 저녁무렵 결국 개 이름을 썼다. (그렸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글자는 엄마의 이름도 아빠의 이름도 아닌, 우리 집 개 이름이었다.



나는 아기에게 많은 말들을 알려주었고, 여전히 많은 말들을 알려주고 있다. 아기는 집에 정적이 흐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노래 가사라도 흘러나와야 한다. 얼마 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룹, TOY의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음악을 틀어놓고 잠시 입을 쉬고 있었는데, 노래를 가만히 듣던 아기가 울먹이며 내게 말했다.


엄마, 남겨진 사람은 누구고
떠나간 사람은 누구야?
왜 사람은 떠나가고 왜 남겨지는 거야?
나중에 우리 개가 떠나가는 것처럼?

          



아무래도 아기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말들의 주인공은 우리 집 개임이 틀림없다.





늙은 개는 많은 말들을 잊었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천천히 잊어가는 중이다. 볼일만큼은 깔끔히 처리하던 개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여기저기에 실례를 해댄다. 똥 묻은 발로 이불에 올라와 똥 범벅을 해놓고는 모른 척 딴청을 피운다. 그토록 말이 없던 개가 이제는 자주 화를 낸다. 밥그릇에 사료가 없으면 짖고, 물그릇에 물이 마르면 나를 쫓아다니면서 꾸짖듯 짖는다. 우리가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서면 개는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린다. 늙은 개는 많은 것들을 잊어간다.


언젠가 개는 제 잠자리가 어디였는지 잊고, 밥그릇 자리를 잊고, 마침내 우리를 잊을지도 모른다. 아기의 팔과 다리엔 투실투실 살이 오르고 마음결에도 숱이 짙어져 가는데, 나의 개는 점점 낡고 해져만 간다. 아기의 세계는 점점 깊고 넓어지는데, 나의 개가 사는 세계는 비좁기 이를 데가 없다. 말없이 개를 바라본다. 개가 이 고요함을 눈치채지 못하게 털을 쓰다듬어 준다. 우리 사이에는 매일 보이지 않는 배가 쉼없이 오고 간다. 그것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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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늙은 개 [키우고, 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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