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트램펄린
전학 이후 처음 치른 중간고사 이후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불량배 사건으로 등하교 시 아이들과 섞여 다니기는 하였어도 학기 초의 어색함 속에서 나는 새롭게 친구들을 만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시험 성적이 나오고 내가 공부 좀 하는 녀석으로 통하자 그때부터 내게 적극적으로 아는 척을 하고 더 친해지려고 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그중에 한 명은 안 그래도 오락실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얼굴을 마주치면 인사는 했지만 서로 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눈치만 보던 그런 아이였다. 그 아이가 갑자기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왔고 자기 집에 놀러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기에 나는 얼른 좋다고 답을 했다.
그때까지도 불량배에게 당한 경험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하교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너무 기쁜 일이었다. 새롭게 사귄 친구의 집은 연립 주택의 2층이었고 부모님은 엄청 젊은 분들이었다. 우리 부모님과 거의 10년 정도 차이가 날 것 같은 그런 분들이었다. 분위기가 좀 낯설었고 무엇보다 들어가는 문쪽으로는 부엌이 쭉 이어지고 대문 바로 옆에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그 안방을 거쳐서 친구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라서 집이 전체적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시골에서는 못 보던 집 구조에 신기해하며 따라 들어갔던 친구 방은 보는 즉시 눈이 확 커질 만큼 화려했다.
나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여러 프라모델과 종이로 만들어진 각종 군함을 비롯한 공작품들이었다. 시골에서도 아이들이 집에 장난감 한두 개쯤은 다들 가지고 있었지만 진열장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수의 프라모델을 가진 아이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작품처럼 집 안에 전시가 되어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 집에서도 모형을 만들고 조립도 하긴 했지만 우리가 다루던 것은 모터가 들어가서 외부에서 조종을 할 수 있던 탱크 같은 밀리터리 분야였는데 진열장 안에는 시골에선 볼 수 없었던 최신 건담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그리고 알록달록하게 채색까지 되어있는 기체들은 그 자체로 너무 신기한 것들이었다.
그냥 부러웠다. 우리 형제는 모형을 모으기는 했지만 언제나 그것은 부모님 몰래 숨어서 하는 놀이였다. 아버지는 그런 것을 만드는 것 자체를 딴짓으로 간주하셨기에 우리는 당당하게 꺼내 놓고 그런 것을 조립하고 가지고 놀 수는 없었다. 항상 책상의 서랍 뒤쪽에 비밀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 여러 기체를 모아두곤 했는데 그것이 들키는 날에는 어김없이 아버지의 손에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매질이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형제들에게 엄하게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관을 고집하셨다. 때릴 때도 아주 혼이 빠지도록 때려야 한다는 소리를 자주 하셨고 우리 형제가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할 때면 밖에서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서 방안에 부어버리겠다고 달려오신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중간에서 말리고 못하게 하셨지만 그렇게 말렸기 때문에 아버지는 우리들의 기선제압이 되지 않아 딴짓을 하게 되었다고 아직도 믿고 계신다.
내가 생각하기엔 좀 어이가 없는 믿음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신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과 관련된 경험이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아버지가 어릴 적에 고집을 부리다가 매질에 완전히 기가 꺾여 보았거나 군대에서 기합 등을 통해 의지가 완전히 상실되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그런 내적 경험이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소중히 모은 책 등을 찢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무엇이든 부수고 하는 것을 정말 질색하셨고 그래서 두 분은 언제나 그 지점에서 충돌하셨다. 형과 나는 하지 말라는 것을 자꾸 하게 되는 것 때문에 언제나 위축되고 죄송했지만 그 나이에 또래들이 하는 것들을 같이 하지 않고 공부만 하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아이들의 심리를 모르기에 바랄 수 있는 어른들만의 욕심이었다. 자신에게 배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기에 자식들은 기회만 주면 감사하게 그 길을 가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럴듯해 보여도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동물이 아닌 걸 어떡하겠는가?
들어간 순간부터 놀라고 신기했던 친구 집은 이후에도 놀람의 연속이었다. 친구 부모님들은 서로 존대를 하시고 친구도 보모님께 꼬박꼬박 존대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다. 하지만 서서히 그 분위기에 적응이 되어가자 그 부드러운 가풍과 개방적인 환경 자체가 너무 부럽게 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형제들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들이 여기에서는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아이들의 욕구를 긍정하고 인정하면서 즐길 수 있게 허락해준다는 것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시점부터 내 안에서 또 새로운 분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골에서 살 때는 아이들의 혼나는 소리가 항상 담장을 넘어 다닌다. 어떤 때는 아이가 맨발로 길가로 튀어나와 도망치고 부모 중, 대게는 엄마가 그런 역할을 많이 했지만, 한 분이 아이를 쫓아가면서 두들겼다. 심할 경우에는 연탄집게를 들고 튀어나오는 부모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용접봉이나 회초리를 사용해서 우리들을 혼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 우리 자신이 부모 몰래 못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그런 죄의식을 깊게 내면화하여 살아갔을 뿐 부모님이 너무 엄격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과 비교해 보면 우리 집의 가풍은 시골에서는 꽤나 너그러운 편이었다. 그 주된 요인이 어머니가 계속 아버지를 말렸기 때문이고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언제나 불만이 많았지만 시골이라는 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나름 화목한 집안에서 우리는 자라나고 있었다.
부천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트램펄린을 보았다. 학교 앞에서 아저씨가 매일 끌고 나와서 서있으면 아이들이 얼마간의 돈을 내고 트램펄린 위로 올라가 그 위에서 서너 명이 함께 뛰어놀곤 하였는데 공중으로 붕붕 떠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신기해하며 쳐다보기는 했지만 여러 명이 함께 어울리고 있는 그 속으로 함부로 들어설 엄두는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다 빠지고 나와 새로 사귄 친구 둘이서 그것을 시도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트램펄린 위는 출렁출렁하여 균형을 잡기도 뛰어오르기도 엄청 힘이 들었다. 하지만 서서히 적응이 되어가고 그 속에서 친구와 박자를 맞추어 같이 공중으로 도약하는 기분은 어느 순간 나를 짜릿하게 만들었고 세상의 모습은 또 다르게 변화하며 모든 것이 새롭게 감각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가 이제 시간이 되어 다시 바닥에 내려섰을 때 갑자기 몸이 무거웠다. 내가 ‘어! 뭐지..?’ 하며 당황해하자 친구가 웃었다. ‘그거 원래 그래, 이거 하고 나면 몸이 무거워 그냥 겅중겅중 뛰어봐.’
그랬다. 몸이 무거웠다. 가볍게 세상을 부유하다 다시 땅에 내려서자 몸이 무거웠다. 그런데 그런 변화가 내 몸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마음에 기존과 다른 무엇이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이 그때부터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