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뚜레
나는 아마 약하게 태어났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특별히 큰 병을 앓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강하지 않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이런 기질로 인해서 예민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특성을 내가 좀 더 일찍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더 수월했을 것 같다. 이제는 이것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들어가는 에너지가 너무 많고 얻는 만족은 항상 기대에 못 미친다. 아무리 쌓아 올려도 어느 순간 내 안에 허무의 호르몬 폭탄 한방이 터지면 바로 EMP 폭탄이 터지듯 전 체계가 무너져 내릴 것도 알기에 내 자신을 이제 되지도 않는 기능형 인간으로 바꾸는 것도 관두려 한다.
난 약하기 때문에 외로움에 좀 더 일찍 친숙해질 필요는 있었다. 그 과정이 아주 늦지는 않았음에도 애착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여러 흉터를 남기고 그게 아직도 아린 듯한 느낌이 있다. 내 안에 제일 먼저 무엇인가 형성되었다면 어쩌면 그것은 외로움 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댁과 외할머니 댁은 집이 서로 다른 동네에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양쪽에 번갈아 맡겨졌는데 양쪽에서 받은 느낌이 전혀 다른 것 같다. 할아버지 댁에서 나는 그냥 많이 외로웠던 느낌이다. 놀이 친구도 없고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기억도 있으며 그나마 그 집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은 소, 송아지 그리고 막내 고모 정도였던 것 같다. 시간 순서가 어떻게 배열이 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일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 물난리가 나고 집이 모두 엉망이 된 이후 부모님은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나를 할아버지 댁에 맡겼다. 형은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나만 홀로 맡겨졌던 것 같다. 항상 어머니가 언제 오는지 궁금했고 집에 가고 싶어 동동거렸지만 물난리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을 수리하고 정리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날은 점점 더워지고 깨끗한 물이 나오지 않아 모든 일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외로움에 풀이 죽어 있을 때 막내 고모가 당시 할아버지 댁에 와 있었던 것 같다. 그 손을 잡고 고모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던 기억은 있는데 고모의 얼굴과 형체는 전혀 기억에 없다. 고모 손을 잡고 집과 할아버지 댁 중간쯤 되는 곳을 몇 번 나가서 큰 물이 휩쓸고 간 흔적들을 보고 많이 놀라 했었다. 큰 다리도 끊어지고 바위부터 물을 막은 보까지 모든 것이 틀어지고 변해있었던 것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고모를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고모가 시집간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인지 왠지 난 정말 고모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어릴 때 그만큼 따라다니고 이렇게 기억이 없는 분은 고모가 유일하다.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관심을 두려 하지 않은 것인지 정말 그런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리고 소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 댁에는 소를 먹이고 있었고 그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어린 송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미 소는 너무 컸고 내가 내민 풀을 큰 혀로 말아들일 때면 그게 너무 무서워 먹이를 주다 말고 도망치곤 했던 내가 송아지 만은 그냥 너무 좋았다. 그 눈망울, 소리, 움찔움찔하는 모습 모든 게 그냥 친근했다. 나는 그 녀석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긴 것이 분명하다. 그런 송아지가 어느 날 코뚜레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집에 못 보던 아저씨들이 우르르 오고 송아지는 마당으로 끌려 나왔다. 한 아저씨가 겨드랑이 사이로 코뚜레 나무를 슥슥하고 문지르며 송아지에 다가가던 장면, 송아지가 아파서 소리를 지르던 장면, 그걸 잡고 못 움직이게 하던 것, 어미 소가 외양간에서 음무음무하고 울던 소리까지 떠오른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이불속으로 머리를 묻고 그냥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 한동안 송아지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나중에 어미 소는 남았지만 그 송아지는 팔려갔다. 모르겠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왠지 할아버지 댁은 나의 기억에서 너무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만이 든다.
고모가 떠난 후일까? 나는 또 외할머니 댁으로 옮겨졌던 것 같다. 떠내려간 다리 대신에 간이로 급하게 다리가 만들어졌고 그 위를 지나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가로수가 죽 늘어 선 길을 그렇게 걸어간 게 생각이 난다. 어릴 때 기억을 돌아보면 난 누가 손을 잡아주는 것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연신 두리번거리면서 그 길을 지날 때 하늘이 파랗고 그 하늘에 닿을 듯 자란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는 것이 그냥 재미있었다. 나중에 도로공사를 하면서 모든 나무들이 잘려나갔지만 그때까지 비 포장이었던 그 길을 그렇게 걸으면서 왜 난 행복해했던 것 같을까? 모르겠다.
내가 가끔씩 외롭게 느껴질 때 그리고 뭔가 구속되는 느낌을 받을 때 나는 그때의 코뚜레 장면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정말 견딜 수 없이 답답해져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로 있으면 질식할 것 같은 그런 답답함에 몸이 꽉 조여 오는 그 느낌.
그 뒤에는 항상 송아지가 겁에 질려 울던 그날의 풍경이 나의 무의속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느낌이 든다.
!! 기억이란 기록이 아닌 해석이다. - 메멘토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