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다

취함

by 피터피터

지금까지 글을 쓰다 어느 정도가 되면 글 전체가 맘에 들지 않아 항상 폴더채 지워버렸다.


그게 너무 자주 되다 보니 아무 글도 쓰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서 공개적인 장소에 올리고 계속 되풀이되는 이 바보짓을 그만 하자고 결심했다.


글 몇 개를 이틀 만에 다 쓰고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신청했다. 금요일에 신청해서 다음 월요일에 허가를 받은 것 같다. 그냥 그렇게 통과가 돼서 다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이후에 몇 가지 글을 더 쓰다가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가족과 화해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큰 방향성이 잡힌 것이었다.


그 후에는 자주 글을 지우는 내 습성이 싫어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을 완성이 되면 더 이상 검토하지 않고 바로 등록해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갑자기 글이 쉬워졌다. 글이 막힘이 없어지는 느낌이라서 뭔가 신이 났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글이 날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자유로운 느낌이 싫지 않았다. 글을 계속 썼다. 물론 글을 쓰고 나면 반작용이 대단했다. 기분이 갈수록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는 신이 나서 쉽게 쓰는데 쓰고 난 이후에는 기분이 계속 바닥까지 내려갔다.


글을 쓰면서 나의 문체에 중심이 없다는 걸 알았다.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게 글을 길게 써본 적이 없어서 글감 하나 하나와 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글이 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휘도 부족한 것이 그대로 실감되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온통 돌아다니는 이 이야기들을 다 잡아서 고정시키면 저절로 무엇인가 완성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줄곧 들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 썼다. 어딘가에 공개적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내 방향성이 맞는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냥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이어진다고 생각했던 큰 줄기들이 새로운 생각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 이것을 지금 다 쓰지 않으면 다음에는 같은 주제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더 초조해졌다.


그래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들의 충돌을 무시했다. 또 내 글을 지우려고 하는 나의 완벽주의가 발동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글이 쉽게 써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업과 다운. 흥분된 상태도 아니고 침울한 상태도 아닌 그냥 너무나 차분한 마음으로 하나의 통일된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 스스로 내 글을 평가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괜찮아 보이고 어느 순간에는 세상에 다시없는 쓰레기 같이 느껴져서 중간이 없는 나의 판단을 신뢰할 수가 없어졌다. 그냥 처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써도 단 한 명의 구독자도 생기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글이 정상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닐까?


난 한 번도 큰 덩어리의 글을 써본 적이 없다. 그 말은 사실 이 글들은 글이 아니라 그냥 초안들인 것이다. 수 없이 써지고 버려져야 할 초안 수준의 글들을 나는 모두 발행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글을 지우는 게 싫어서 그렇게 했다지만 2주 동안 45개가 넘는 글을 쓰고 그중에 35개를 올렸다는 것은 내가 뭔가에 심하게 취해있다는 소리다.


머릿속의 글감이 없어지는 것이 싫어서 계속 취한 상태로 글을 쓰고 숙취에서 깨어나서는 다시 무언가를 쓰는 이런 미친 짓을 그만둬야 한다. 글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어렵게 그리고 무겁게 써여져야 한다. 이렇게 날리는 글은 글이 아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글에 취해봤다. 술에 취해 온갖 행복을 누리다가 다음날 술이 깨면 어제저녁에 내가 한 일에 이불 킥을 하게 되는 것처럼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반성의 글을 쓴다. 취한 상태에서는 누구도 자기가 취한 것을 모른다. 이제는 머리를 차갑게 할 필요가 있다. 멈추어야 한다. 그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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