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

브레이크

by 피터피터

글쓰기.


오랜만에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해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물론 부정적 감정이 후폭풍처럼 몰려오긴 하였지만 이건 그나마 생산적인 일이 아닌가. 나는 중독에 아주 취약한 부분이 있다. 내면에 불안이 크게 존재하기 때문인지 항상 자극에 더 쉽게 반응하고 그것에 끌린다. 그리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에 정신을 쏟고 모든 에너지를 다 쓴 이후에는 그냥 쓰러지듯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불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밤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제부터인지 쫓기듯 생활하다 쓰러지듯 잠드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무언가를 하면 열심히 하려 하는데 마음은 공허하고 육체는 그냥 패턴화 되어 반자동 모드로 세상을 인식하는 듯한 감각이 항상 거슬렸다. 그런데 글쓰기는 감정의 기복이 크게 일어나긴 해도 일반적인 중독이나 일상에서 느끼는 좀비 같은 느낌의 감각이 없다는 것이 좋았다.


약간 몽환적인 기분에서 참 기분 좋고 매끄럽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난 중독에 취약한 것이 이렇게 무언가에 집중하고 빠지게 되면 다른 일상의 생활이 되지 않는다. 정신이 온통 한 가지에만 쏠려 다른 일들을 신경 쓰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마음이 가지 않아 자꾸 미루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그러게 되면 다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밸런스가 필요한데 이럴 때 외부적인 도움이 있으면 좋겠지만 결국엔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한다. 잘 듣는 브레이크가 필요한 것이다.


나의 이 기질은 분명히 장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적응해나가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일단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것에 의미를 두려 한다. 그동안은 너무 제자리걸음만 하면서 삽질만 많이 한 느낌이다. 일단 무언가를 해보면 적어도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 수 있게 된다. 글을 이만큼 써본 적이 없어서 글쓰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글을 쓰고자 할 때 내 안에서 잠들어 있던 여러 기억들이 이야기가 되어 흘러나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글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알 것 같다. 그것들은 그냥 생각의 파편들이며 아직 어떤 논리적 완결성도 갖지 못한 미완의 것들이다. 이것들은 말 그대로 초고인 것이다. 여러 생각의 단상들을 꺼내 놓고 그 조각들을 이어 맞추어 하나의 방향성을 찾아내고 구조를 만들고 속을 채우면서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어서 글이 되도록 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일단 나만의 확실한 문체가 있어야 한다. 계속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 장면에 걸맞은 어휘를 찾지 못해 헤매다 보니 글이 어그러지고 튀는 것이 느껴진다.


일단 하나의 강박을 이겨냈으니 모든 글을 쓰는 족족 발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글은 더 많이 써도 상관없지만 발행은 굳이 모두 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업이 된 상태에서 머릿속을 부유하는 이야기를 잡아서 글로 만들기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기분으로 전체적인 틀을 생각하고 하나, 하나 맞추어나가는 작업도 배워나가야 한다. 나의 모든 글들은 하나의 주제를 생각하면서 태어난 글이긴 하지만 너무 통일성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고 다른 사람들의 글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브런치 자체의 분위기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그냥 내 안에 있는 것을 쏟아내겠다고 시작한 글이지만 이제 꾸준히 글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곳의 시스템과 스타일에 대한 조언들을 찾아가서 들을 필요도 있다. 나는 글 외에 다른 모든 것들에 너무 문외한이다. 브런치 자체 기능과 글에 넣을 이미지를 어떻게 찾고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도 이제 배워나가야 한다. 앞으로도 나의 대부분의 글은 그냥 초고의 형태로 발행할 생각이고 그래서 지금 형식의 글이 많겠지만 서너 개의 글을 시리즈로 묶는 작업에서는 형태를 좀 다르게 가져가고 싶다.


아직 내 안에는 뭔가가 많이 떠다니고 있다. 그것들을 다 글의 형태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 하나 잡아서 그 찌그러진 모양들을 다 확인하고 나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글이 맘에 안 드는 것은 그냥 내 안의 내용물이 낯설고 어색한 것이 크다. 글의 형태와 문체의 성장은 어차피 시간이 걸린다. 이건 아무리 재촉해도 그냥 될 일은 아니고 망가진 글을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글들을 더 많이 쓰고 망가진 내 글을 보는 것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이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내가 나의 글을 가진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될 테니까. 초심자는 항상 겸손이 중요하다.


글이 부끄러운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크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욕심 많고 오만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언제나 배운다는 자세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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