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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라이 Dec 30. 2023

아이와 나의 차이점

소소한 일상, 작은 행복의 기록 8 - 인내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냥, 기분이 안 좋아."

셋째의 단단하고 단순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에 감돌았다. 종이 접기가 뜻대로 되지 않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냐고 묻자 셋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의 분명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는 순간 '아이는 내가 아님'을 선명하게 받아들였고,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주입식 교육은 여러 방면으로 참을성 없는 나를 생산해 냈다. 뭔가를 투입하면 그에 맞는 결과가 즉시 나와야 한다는 무의식적 사고의 버릇을 들인 것. 한 권의 책을 읽으면 한 권어치만큼의 지식 축적이나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기를 알게 모르게 바랐다. 물론 효율을 강조하는 교육이 매번 부정적으로 작동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웃풋도 인풋이 있어야 하기에 초반에는 꾸역꾸역 혹은 허겁지겁 읽는 방식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20개월이 지난 지금 한계를 절감한다.




읽고 쓰는 것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리트머스 종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는 일이 아니다,라고 되뇌면서도 어제처럼 혹은 어제의 어제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이것이 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한계라면 더 이상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 하는 일이 '쓸데없는 짓'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결과를 내야 하는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온 나에게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사고의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뇌의 어딘가에 부유하다 '사고의 고속도로'를 타는, 이 흐름을 끊기 위해서는 왜 글을 쓰는지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나는 왜 글을 읽고 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명징했다. '그. 냥.' 여기에 세음절을 덧붙이면 '좋. 아. 서.'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는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콘스탄틴 레빈에게 시골은 생활의 무대, 즉 기쁨과 슬픔과 노고의 무대였다. 그러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에게 시골은 한편으론 노고 뒤의 휴식이었고, 다른 한편으론 그 효과를 믿고 기꺼이 복용하고 있는, 쇠약해진 몸에 효험이 있는 해독제였다. 콘스탄틴 레빈에게 시골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유익한 노동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그러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에게 시골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특히 좋은 곳이었다.



내가 셋째가 아니고, 셋째가 내가 아닌 것은 무언가를 좋아하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셋째는 종이접기를 좋아하고, 나는 읽고 쓰는 걸 좋아하니까. 그것은 기쁨과 슬픔과 노고 그 자체를 기꺼이 환대할 마음이 있는가,였다. 좋아할 수 있을 때만, 좋아할 수 있는 것만, 좋아하는 선별적 사랑이 아니라 슬픔과 노고까지 사랑하는 인내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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