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후관리사님이 오셨다. 처음 왔던 분은 전날 하루 만에 교체한 상황이었다.
업체로부터 내 컴플레인을 들어서일까. 새로 오신 관리사님은 오시자마자 손부터 씻으셨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대뜸 말씀하셨다. "나 잠실 ㅇㅇㅇ 아파트에 살아요. 내 아들은 미국에 있고 내 주변 자식들 다 판검사요." 아 또 이상한 분이 오셨나. 기선제압을 하려는 멘트이려나. 불필요한 말들에 나는 곧바로 싸늘해졌다. 관리사님을 두 번 교체하는 비극을 잠깐 상상하다 정신을 붙들고 집안 살림, 육아용품 위치 등을 안내하고 아기들을 보여드렸다. 깐깐해 보이던 관리사님은 함박웃음을 띄며 아가들을 안아보셨다. 그리곤 곧 업무에 돌입하셨다. 오전 두 시간 동안 요리 3~4개를 뚝딱하시면서 동시에 우는 아기도 달래고 맘마도 주신다. 능숙하게 두 명의 아기들을 목욕시켰고 퇴근 15분 전 청소기에 물걸레까지 밀고 정시 퇴근하셨다. 와 이런 게 프로페셔널리즘이구나! 살림과 아기 돌봄에 만랩인 능력자를 눈앞에서 처음 보고는 마음이 웅장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른 새벽부터 산후관리사님이 출근하는 시간만 기다렸다.
종종 첫 만남에서처럼 생뚱맞은 말씀도 하셨다. 예전에 다른 산모에게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흉보기도 하고, 본인의 재력을 술술 자랑도 하셨다. (엄청난 재력가셨다.) 관리사님 아버지가 연세가 많은데 성당에 10억 원을 기부를 하겠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보태드리러 본인이 가진 건물 하나를 팔아야 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신다. 이야기 듣는 내가 괜히 멋쩍어서 “왜 그렇게 많이 하신대요, 1억만 하시지.” 하니 “1억씩은 진작에 많이 했지~” 하며 골치 아프다는 양 혀를 차신다.
요리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셨다. 해주시는 음식이 실제로 다 맛있었는데 맛있다고 말씀드리면 ‘나니까 이 정도로 요리한다’고 하신다. 엄청난 실력 자면서 본인 능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당당한 PR까지. MZ 세대가 걸 크러쉬 당할만하지 않나? 평소 같았음 굳은 표정으로 대꾸도 안 할 정치나 종교에 관한 언급도 한 번씩 하셨다. 지방선거 다음날에는 여기저기 전화하시면서 당선 축하한다고 하신다. 재력도 있고 카리스마도 보통이 아니시니 아무래도 지역구 의원들이 많이 찾을 법하다. 여럿 당선시켜주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냥 다 웃으며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그냥 웃어 넘기 다니? 나도 놀랐다.
재력도 있는 분이 왜 굳이 일을 하시나 의아했는데 아가들을 보며 만면에 웃음을 띄우는 모습에 이해가 되었다. 몇 년 전엔 암으로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서 항암치료는 안 받으셨지만, 일을 안 하면 병세가 안 좋아질 것 같아 일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자랑 같은 말씀만 한참 하시다 조금 친해지니 알려주셨다. 아가들 보면 정말 행복해진다고.
6주를 함께하고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에 며칠 전부터 초조했건만 겉으로는 그냥 웃어 보였다. 엄연한 계약 관계인데 속상한 마음을 내비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관리사 선생님이 아가들을 정말 이뻐해 주셨는데, 선생님도 아가들과 이별하기 너무 어려울 것 같아 더 속상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티 내지 않으셨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면 익숙해지는 걸까. 관리사 선생님 핸드폰에 저장된 아가들 사진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 우리 둘 다 밋밋하게 하루를 보냈다. 퇴근시간이 되어 준비했던 과일 선물을 드리곤 평소와 같이 문 앞에서 인사를 했다. 포옹이라도 한번 하고 싶은 맘이었는데 하지 못 했다. 어색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관리사 선생님이 쓰고 남은 식재료만 한동안 냉장고에 가득 있었다. 나는 그만큼 요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놓고 가신 반찬을 다 먹어갈 때쯤엔 냉장고를 이제 어떻게 채워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남은 식재료는 다행히 소진되었다. 한창 바빠 못 오시던 엄마가 출동해주셨다. 아이를 낳고 나니 혼자는 불가능하지만 연대로 가능한 것들을 많이 목격한다. 요즘도 다행히 냉장고는 계속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