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을 꿈꾼 사회부, 3개월 만의 흔들림

by 무민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기자로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직 기자가 되지 못한 시절, 포부 하나만큼은 당찼다. 8년 전 면접관은 “기자는 워라밸이 나쁜데 괜찮겠냐”고 물었고 ‘기자준비생’이었던 나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했다. 기자의 하루 대부분은 일에서 일로 끝난다는 걸 이미 알았고 각오하고 있었다. 면접관은 “그 마음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구태여 말을 보태고 탈락시켰다. 워라밸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기자가 돼야 한다는 절박함만 더 커졌다.

사회부 연재 1편.png 사진=챗GPT

8년 전 그 다짐이 여전히 남아있었나 보다. 기자준비생 시절 꿈꿨던 그런 기자가 여전히 되고 싶었다.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옳은 사회를 함께 고민하겠다는, 혼자만의 롤모델을 품었다. 억울한 사람이 없고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사회를 바랐고 그런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사회부에 지원했다.


올해 7년차 기자이지만 그간 사회나 정의 같은 걸 고민해 볼 기회는 적었다. 기자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발령받은 건설부동산부에서만 3년을 꽉 채웠다. 흥미가 없어 2년만 채우고 나가려 했으나 1년만 더 하자는 팀장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부탁이자 강권이었다. 3년차를 바라보는 2년차 기자에게 10년차를 훌쩍 넘은 팀장은 너무 큰 산이었다.


부동산은 전국민적 관심사란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은 정권이 사활을 건 문제였다.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과 부동산 시장 현황 등을 주로 쓰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조금은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과 땅에 한정된 특수분야였다. 저변에는 돈이 걸린 이해관계가 가득했다. 사람 냄새보다는 돈 냄새가 짙었다. 어떤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오르고, 어떤 지역이 유망하고, 어떤 건설사가 어떻게 사업을 하는지가 기삿거리였다. 내 이상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집에 관심을 가질 나이였다면 흥미를 조금이라도 느꼈을 거다. 하지만 당시의 난 기자정신만 한창인 사회초년생이었다.


부동산 이후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산업부다. 삼성, LG, SK 같은 대기업을 담당했다. 여기서도 3년 가까이 커리어를 쌓았다. 기업 이야기가 핵심인 산업부는 부동산보다 더 돈에 가까웠다. 대기업들이 어떤 것을 미래 먹거리로 삼는지, 사업 부흥을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지, 대기업의 총수들 일정은 어떤지를 주로 다뤘다. 이 모든 것들은 대기업의 돈벌이와 직결된다.


돈 냄새는 출입처, 즉 대기업과 언론사 사이에서도 풍겼다. 언론사 기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대기업의 돈으로 먹고 산다. 기사를 작성하고 발행할 편집권은 언론사에 있지만 적어도 산업부만큼은 기업이 비선실세다.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기사도 여럿이다.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대기업 근로자가 사망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을 파악했지만 보고 단계에서부터 ‘킬’됐다. 돈 냄새 강한 산업부는 내 동경과 정반대였다.


사회부 경험이 아예 없는 게 아닌데도 사회부를 동경한 건 외려 사회부 경험 때문이다. 산업부로 옮기기 전 7개월 정도 몸담은 사회부 법조팀에선 정의가 뭔지 고민하는 순간이 이어졌다. 의료사고를 당한 아들의 어머니는 재판을 지켜보며 숨죽여 흐느꼈다. 자녀를 살해한 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어느 부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수백억 대 사기를 친 범죄자는 수십 년의 징역을 살게 됐는데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해 항소했다.


법정의 갖가지 장면을 바라보며 옳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법의 역할을 생각했다. 그런 때면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보람이 들었다. 불과 7개월뿐인 시간이지만 당시의 만족스러운 기억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사회부에 가고 싶다는 갈망이 더 커졌다. 커리어를 위해 경제 관련 부서 6년과 사회부 7개월의 불균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부차적인 이유도 있었다.


사회부 발령은 이상향에 가까워질 수 있는, 다시 찾아온 기회였다. 하지만 사회부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데는 3개월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