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전편> 리뷰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전편> 리뷰로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QWER을 통해 <봇치 더 록!>을 알게 된 사람으로서, 8월 3일(토)에 있었던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전편> 무대인사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나 여러 차례의 무대 인사 중 한 번은 멤버들과 영화를 함께 보는 '함께 상영회'도 있었다. 최애들과 최애 중 하나가 된 애니메이션을 함께 본다니, 언제 또 있을지 모르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수차례 전진 티켓팅을 통해 제법 앞열을 예매하는 데 성공했고, 영화를 재밌게 보면서 다시금 QWER과 봇치 더 록의 상관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QWER의 팬인 바위게가 되고 나서 새롭게 시작한 취미가 몇 가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가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최애들에게 영향을 받아 시작한 것들이 있다.
먼저, 방 한편에서 공간만 차지하던 기타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집어 들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튜닝을 한 후, 이틀에 한 번씩은 크로매틱 연습이라도 하고 있다. 그리고 주말이나 일과 후 여유가 있을 때는 노래 연주도 연습하고 있다. QWER 때문에 악기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나다.
새롭게 시작한 또 하나의 취미는 위스키다. 양주를 먹고는 기억을 온전히 지켜내 본 경험이 없어 나랑은 안 맞는다 생각해 기피해 왔는데, 쵸단의 위스키 컬렉션을 보니 왠지 따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2020년 이후로 급성장을 하다가 올해 급격히 사그라들고 있는, 위스키라는 취미를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유행장례사가 된 것 같아 언짢지만, 그래도 즐겁다.
마지막 취미는 애니메이션이다. 나는 원래도 만화와 애니를 즐겨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전의 나를 지금의 내가 보면, 그저 패션 씹덕일 뿐이었다. 나의 관심은 <원피스>, <드래곤볼>, <귀멸의 칼날> 같은 메이저 소년만화에 국한됐었다. 애니는 이런 초능력물이나 히어로물처럼 실사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재에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요소가 없는 일상물은 실사로 보는 게 낫다는 편견이 있었다.
<최애의 아이>가 딱 그런 애니였다. 한창 붐이었을 때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확한 내용은 모른 체 일본 연예계, 즉 현실의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끝내 나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한 번 잡솨봐' 하듯 알고리즘이 추천한 <최애의 아이> 1화 요약 영상을 보고는 완전히 빠져버렸다. 초능력이 안 나오고 괴인이 없어도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을 넘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텔링, 연출의 매력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새로 빠져서 본 애니는 없었다. 딱히 끌리는 게 없었다. QWER에 입덕하기 전까지는.
QWER은 자신들이 씹덕임을 당당히 밝히는 특이한 아이돌이다. 쵸단은 유튜브 채널 인트로에 '10덕력이 폭주할 때가 있으니 항마력에 유의하여 시청'하라는 유의문구가 쓰여있고, 마젠타는 <에반게리온>을 보고 성경을 정주행 할 정도로 애니를 보는 데 진심이다. 둘 다 라이브 방송 중 애니 이야기가 나오면 안광이 싹 돌며 신나서 썰을 풀어간다. 시연은 비교적 메이저 한 <주술회전>은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애니를 물으면 마이너 한 소녀 감성의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히나는 <최애의 아이들 시즌 1>(QWER의 결성 과정을 그리는 시리즈물)에서 진행한 33문 33답 컨텐츠에서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이라는 질문에 당당히 "씹덕"이라고 대답해 김계란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나는 QWER을 좋아하고, QWER은 애니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나도 애니를 좋아해야겠다는 헐렁한 삼단논법이 성립했다. 그래서 바위게가 되고 나서 다시 애니를 보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언제 어떤 애니를 언급할지 모를 일이기에 더 열심히 봐야겠다는 다짐까지 하면서.
이 다짐을 하고 나서 보게 된 첫 번째 애니가 바로 <봇치 더 록!>이었다. QWER의 프로듀서 김계란은 <최애의 아이들 시즌 1> 초반부터 여러 차례 QWER 기획에 영감을 준 애니메이션으로 <최애의 아이>와 <봇치 더 록!>을 언급했다. 오죽하면 QWER의 이름이 원래 기분 좋은 음악을 하자는 의미에서 '봇치 더 록'을 패러디한 '기모찌 더 락'이 될 뻔했다고 한다. 입덕 당일 <최애의 아이들> 시리즈를 모두 소화하느라 휙 넘겼지만, 일본에 가서 '봇치 더 록' 성지순례를 하며 장면 장면을 따라 하는 에피소드가 있을 만큼 진심이었다.
<최애의 아이>와 더불어 QWER에 영감을 준 작품이라고 하니, 바위게로서는 탄생설화를 보는 듯한 신성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 1기를 정주행 하면서 어떤 부분에서 QWER 기획에 영향을 받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캐릭터성과 성장, 두 가지 키워드에서 QWER과 봇치 더 록은 상당히 닮아있었다.
지난주 토요일,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전편>을 보고 왔다. QWER 멤버들과 '봇치 더 록' 극장판을 함께 보는 상영회가 있어, 둘 모두 좋아하는 나한테는 놓칠 수 없는 행사였다. 그래서 수차례 전진 티켓팅을 시도한 끝에 403석짜리 대형 영화관의 비교적 앞쪽 열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 전날 펜타포트 무대 위에서 깊은 감동을 준 멤버들의 인터뷰를 흐뭇하게 보고 기분 좋게 영화를 보게 됐다.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전편>은 <봇치 더 록!> 1기 8화까지의 내용을 90분 정도 분량으로 만든 극장판 영화였다. 극장판으로 편집되며 내용상 순서 변경도 삭제된 부분도 있고, 신곡들도 새롭게 추가되었다고 한다. <봇치 더 록!>을 한 번밖에 정주행 하지 않고 봤기 때문에 디테일한 변화를 모두 감지할 수는 없어 찐 팬들이 느낀 만큼의 재미는 못 느꼈겠지만, 대형 스크린과 좋은 사운드로 흐름상 끊김 없이 쭉 이어서 보니 애니로 봤을 때보다 더 깊은 감동을 느꼈다.
<봇치 더 록!>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것은 기존에 봐왔던 애니보다 캐릭터 설정이 과하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애니는 실사가 아닌 2D이기 때문에 과장이 더 자연스럽게 허용되기는 한다. '에~?!'와 같은 과장된 리액션이나 갑자기 나타나는 작붕(작화 붕괴), 그리고 캐릭터 성격도 말투도 대체로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특징 덕분에 스토리 전달이 쉬워지기도 한다. '봇치 더 록'은 이 점을 정말 영리하게 잘 사용한다.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고토 히토리'는 이름 자체에 '외톨이'를 뜻하는 '히토리'가 들어가 있다. 그녀의 캐릭터는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비자발적 아싸'다. 그래서 같은 뜻의 '봇치'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심각한 대인기피증으로 처음 보는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자주 망상하며 자기 세계에 빠져버린다. 마음으로는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어떻게 다가갈지도, 다가왔을 때 어떻게 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성향 덕분에 인정 욕구가 강하고, 그래서 수년간 홀로 틀어박혀 기타 연습을 해서 인터넷상에서는 '기타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프로급의 실력을 가진 연주자로 유명해진다. 그야말로 만화다운 캐릭터 설정이다. 상당히 과장 됐지만, 그래서 더 직관적이다.
주인공 히토리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설정이 과장되어 있다. 다들 딱 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키타는 히토리와는 정반대의 '핵인싸', 리더인 드러머 니지카는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진중한 '애어른', 니지카가 유일한 친구인 자발적 아싸 료는 반대로 의외의 개그캐인 '어른아이'다. 현실의 사람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애니 속의 이런 단순화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OP와 EP를 제외하면 20분이 안 되는 하나의 에피소드 안에서 효율적으로 빌드업을 하고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거라는 것을 <봇치 더 록!>을 보고 느꼈다.
영화 속에서는 일부 대사가 생략됐지만, 히토리와 료의 가사 피드백 장면이 등장하는 4화에서 이를 느꼈다.
'결속밴드'의 일원이 된 히토리에게 작사를 하라는 지령이 떨어진다. 결속밴드의 보컬은 자신과는 정반대로 핵인싸에 한없이 밝은 키타이기 때문에, 히토리는 키타에게 어울릴 가사를 고민한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어두운 히토리는 무리해서 청춘스러운 가사를 쓰려다 포기하고, 무작정 응원하는 느낌의 밝은 가사를 쓴다. 그리고 결과물에 대해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아, 무뚝뚝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료에게 가사를 보여주게 된다. 료는 히토리가 쓴 가사를 살피더니, 먼저 히토리가 스스로 만족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솔직한 가사를 쓰다가 인기를 얻으려고 세련된 가사를 쓰는 게 싫어 나오게 된 자신의 이전 밴드 이야기를 하며, 히토리에게 쓰고 싶은 가사를 쓰라고 조언한다. 히토리는 이런 진심 어린 조언에 감동하게 된다.
히토리는 아싸 답게 료와의 만남에 앞서서도, 같이 있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대할지 어려워한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가족들에게도 숨기던 자신의 가사를 료에게 보여주며 솔직한 조언을 구한다. 료는 히토리가 가사를 보여줄 때도 가사보다 싸인을 보며 놀라워하는 평소의 어른아이 같은 사차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히토리의 가사는 진지하게 읽어보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면서 진심으로 조언을 해준다.
대부분의 씬에서 히토리를 '아싸', 료를 '어른아이'로 설정했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 씬에서 '갭모에'가 느껴지고 캐릭터들의 매력이 더욱 부각된다. 더군다나 서로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씬이기 때문에, 그 관계성에도 더 몰입하게 된다. 이 씬이 끝나자마자 료가 후배에게 밥을 사달라고 하는 '어른아이'로 돌아가고,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아싸' 히토리로 돌아가는 모습도 잊지 않는다.
에피소드 끝에 히토리와 료가 서로를 보고 음흉하게 웃고 키타가 이를 질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캐릭터에 몰입하고 이들의 관계 성장을 지켜본 관객들은 이 개그씬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이렇듯 캐릭터에 몰입을 하게 되면 작은 성장에도 더 큰 감동을 느끼고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위의 씬에서 료가 히토리에게 하는 조언의 마지막 대사는 다음과 같다.
따로따로 노는 개성이 한 데 모여서 하나의 음악이 되고 그게 결속 밴드의 특색이 되는 거잖아.
관객은 매력 있는 네 명의 캐릭터 각각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이들의 결속과 성장을 응원하게 된다. 이 대사를 보면서 한 명의 바위게인 나는 자동으로 QWER을 떠올렸다.
연주 실력은 뛰어나지만 리더가 되기에는 너무 착하고 무대공포증이 있는 쵸단, 섭외 당시부터 '성장형에 가장 적합한 인재'라고 소개될 만큼 실력이 부족했던 마젠타, 1 티어 틱톡커이지만 '전설의 포켓몬'이라 불릴 만큼 외부 노출을 하지 않아 봇치 그 자체였던 히나, 그리고 세상의 온갖 억까에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향해 가다 결국 일본에서 길을 잃은 시연까지. 이게 <최애의 아이들> 시즌 1에서 그려진 멤버들의 첫 모습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이지만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배경을 가진 네 명의 캐릭터가 모여 QWER을 완성했다.
이 이후로 지난주 금요일, 이들의 주적인 '편견'에 맞서 멋지게 정면돌파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까지, 이 네 명의 만화 같은 성장 스토리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봇치 더 록!>의 결속 밴드의 노력과 성장을 보고 느끼는 감동처럼. 관객이 열광하는 건 결국 매력 있는 캐릭터의 성장 스토리다.
[쵸단과 마젠타 이야기]
[히나와 시연 이야기]
쵸단은 펜타포트 비하인드 영상에서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도 심할 정도로 쵸긴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무대 위에 올라서는 무대공포증은 찾아볼 수도 없이, 악기즈의 인털루드를 멋지게 끌어가며 진정한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마젠타는 노력의 악마라는 별명을 얻어 모두가 걱정할 정도의 연습량을 소화하면서도 거의 매일 같이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며, '노력도 재능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해 보였다. 그 결과 이번 무대를 통해 프로 연주자한테도 극찬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히나는 빼어난 아이돌 미모임에도 세상 밖(?)으로 나와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펜타포트의 찐주인공으로, 암전 속 모든 시선이 쏠린 가운데에서도 누구보다 멋지게 <지구정복> 기타 솔로를 성공시키며 영화 엔딩 <그 밴드>에서의 각성한 봇치 그 자체가 되었다.
시연은 여러 차례 아이돌의 꿈을 포기할 뻔했지만, QWER에 합류해 진정한 궁극기로서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왔다. 그리고 이번 무대에서 공연장 너머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하며 그 자리의 모두를 목이 메일만큼 벅차오르게 만든 진정한 프런트맨이었다.
정말 매력적인 네 명의 캐릭터가, 하루가 다르게 서로 결속되며 성장한다. QWER과 <봇치 더 록!>은 그렇게 서로 닮아 있다.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전편>은 QWER의 팬으로서 정말 좋은 영화였다. 스토리 자체도 좋고, QWER을 떠올리며 보게 되어 감동이 두 배다. 그래서 봇치 더 록을 알게 해 준 QWER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봇치 더 록이 없었으면 QWER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한 사람의 바위게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