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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an 04. 2024

프롤로그 : 그런 날에도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비디오가게를 기억하며

1. VCR과 비디오테이프 

비디오가게에 가서 비디오테이프를 고르고, VCR*에 플레이를 해서 영화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2006년 버라이어티 지는 VHS(Video Home System) 부고 기사를 냈다. 1975년 탄생한 VHS는 이렇게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The XX -VCR

https://www.youtube.com/watch?v=gI2eO_mNM88


2.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디오가게


돌아보면, 쿠엔틴 타란티노 때문이다. 그가 한 때 비디오가게 점원이었다는 일화는 영화 '저수지의 개들(1996)'의 성공과 함께 로망이 되었다. 영화감독 지망생들이나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디오가게 주인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루 종일 비디오테이프에 둘러싸여 보고 싶은 영화를 실컷 보는 것이 일이 된다(물론 현실은 다르더라도). 그 동네 나름의 영화창고 내지는 필름 아카이브를 꾸릴 수 있다. 이미 머릿속엔 뉴욕의 '킴스 비디오(2023)'가 하나씩 세워져 있을지 모른다. 골목 길 시네필들의 성지말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될 가능성과는 별개로 비디오가게 주인들은 좀 유별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던 그 비디오가게는 집에서 10분 남짓 걸어야 하는 길에 있었다. 동네 상가마다 비디오가게 한 두 개쯤이 흔하던 시절이었지만, 깔끔하지도 크지도 않던 그 가게는 뭔가 달랐다.

낡고 오래된 간판 아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작은 종이 딸랑거렸다. 겹겹이 밀어서 움직이도록 바퀴가 달려있던 진열장 앞엔 마실 나온 츄리닝 차림의 손님들이 서성대고 있다. 대충 걸친 점퍼에 안경을 쓴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은 뒤통수가 볼록한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다. 

신작 위주의 비디오가게와 다른 분위기의 실체를 알아내기로 하고 가게를 둘러본다. 눈에 띄는 곳에 신작 베스트가 진열된 일반 가게와 다르게 손님들이 구석구석에 포진되어있다. 스르륵 바퀴 달린 비디오테이프 진열장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진열장이 하나씩 밀릴 때마다 다른 세계의 동굴이 열리듯 모퉁이 구석으로 갈수록 낯선 표지들이 숨겨져 있었다. 히치콕이니 우디앨런의 고전들도 놀라웠지만, 먼지 덮인 B급 영화들이야말로 이 가게의 진수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대하지 않았던 테이프를 발견했다. 단번에 집어든 건 코엔형제의 '밀러스 크로싱(1990)'이었다. 게임 끝. 그것으로 다른 비디오가게는 모두 지워졌다.

사실 이런 발견까지는 거의 30분이 넘는 진열장 탐색이 필요했다. 하긴 요즘 넷플릭스를 클릭해도 고르는 시간이 한참 걸리는 것과 비슷하다. 한 번은 원하는 비디오테이프가 있는지 주인아저씨에게 물은 적이 있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주인아저씨의 컴퓨터에 분명 소장 리스트들이 있었지만 그 테이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는 안경을 코에 걸친 채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어 쪽 구석 한번 찾아보세요." 


그 이후로 나만의 비디오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케빈 스미스의 '점원들(1994)'이나, 알렉스 콕스의 '리포맨(1984)', 피터 잭슨의 '고무인간의 최후(1987)', 팀 버튼의 에드우드(1994)' 같은 작품을 발견할 때면 묘한 희열이 따라왔다. 

그러다 보니 고르는 시간은 꽤 걸렸는데, 숨겨진 작품을 찾는 재미를 알고 난 이후에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손님이 그렇게 오래 목록을 뒤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니 싫어할 법도 한데, 주인은 아무 상관도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그런 귀찮을 수도 있는 손님들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투는 다정하지 않았을지언정 불친절한 것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과도한 친절보다는 이 편이 오히려 편했다. 디지털 알고리즘은 아니지만, 조금은 괴짜인 사람들의 취향이 있던 공간. 물어보면 척척 내어주던 편리함이나 효율은 없었지만 그 가게에 서려있던 일종의 부조리함이 세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 가게에서는 담배도 팔고 있어서,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종종 들르곤 했다. 이따금씩 문이 열리면서 들려오던 찻길의 소음과 경적 소리, 그리고 담배를 내어주고 거스름돈을 돌려주던 모습들이 비디오테이프의 표지 이미지들과 섞여서 스냅처럼 기억된다. 게다가, 그 먼지 쌓인 비디오테이프들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대여비가 저렴했다.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던 학생 시절의 우리에겐 동전 몇 개로도 누릴 수 있는 꽤 괜찮은 호사였다.


3.이와이 슌지 그리고 기다림


2023년 이와이 슌지의 신작이 도착했다. 그가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겨울바람처럼 쨍하게 다가온다. 그의 영화가 <러브레터(1999)>로 화석처럼 남지 않고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러브레터>야말로 비디오 시대의 상징이기도 했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 이미 해적판으로 그 영화는 집집마다 VCR을 통해 플레이되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읽었던 이와이 슌지의 책에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영화는 탁월한 걸작이나 존경스런 거장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 버려져있어도 '아, 이 영화!' 하면서 웃음을 띨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비디오가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도 그 가치는 퇴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비디오가게에서 반가운 작품들을 건질 때면 이와이슌지를 떠올린다.


기다림. 나는 이와이 슌지에게서 그 단어를 오랫동안 기억했다.


우리는 보고 있었다.

우리는 듣고 있었다.

우리는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큭큭 웃었다.

우리는 끙끙 앓았다.


우리는 자유였다.

하지만 자유를 진정으로 느낀 적이 있던가?


사람들 험담도 했다.

모두가 친구를 비웃기도 했다.

싸움 역시 자주 했다.


때로는 맘에 담아두고 싶은 듯한

둘도 없는 날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날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날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날에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와이 슌지, <쓰레기통 극장>중에서



 *VCR (VideoCassetteRecorder) : '비디오 레코더' 혹은 '비디오 녹화기'라고 일컬어지며 테이프에 기록된 영상과 소리를 이용자에게 편한 시간대에 되돌려 재생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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