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
바오밥나무의 그늘 아래 서보고 싶었다.
뚱뚱한 몸통,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우람한 가지들, 바싹 마른 사막을 뚫고 나온 수천년의 저력. 어떤 나무는 만년까지도 산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슬픔과 질곡을 간직한 씩씩한 생명력의 주인공, 바오밥나무.
척박한 땅에도 나무가 되어주겠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TV에 보일 때마다 시선이 멈춘다.
그러다 발길이 멈춘다.
어린 바오밥나무 묘목들이 작은 화분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동네에 아프리카 식물 전문가게가 생겼다. 체구는 작아도 태양의 땅에서 이사 온 그 바오밥나무들이 분명했다. 통통한 줄기에서 비집고 나온 단단한 근육 같은 가지들. 타고난 에너지를 작은 팔에 머금고, 뻗어나갈 기세가 등등하다.
'사막을 견딘 우리는 여기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나의 동네에서 바오밥은 조금 다르게 속삭인다.
바오밥나무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소설 <어린 왕자>가 있다.
망토를 두른 어린 왕자 반대편에 삐죽삐죽 악당 같은 포즈의 바오밥이 있다. 바오밥나무의 팬들은 이 소설이 좀 아쉽다. 바오밥을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를 위협하는 존재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등장하게 된 내막은 생떽쥐베리만이 알겠지만 아마도 지나치게 씩씩한 외모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생떽쥐베리의 또 다른 소설을 펼치면 그런 아쉬움조차 사소해져 버린다. 그곳에 메마른 사막에 펼쳐지는 -그러니까 '바람, 모래 그리고 별 아래에서 보물을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특별하지 않지만, 쉽게 드러나는 사람들도 아니다.
<어린 왕자>에서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던 사막처럼, <인간의 대지>에는 사람과 일, 동료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언어들이 반짝거리며 빛난다. 독자로서 우리는 그 무한한 사막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조금 천천히 산책해도 좋다. 그 사막에서 내 주변을 비춰볼 수도 있다. 온전히 머문다면 나만의 비밀정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별빛 아래 모래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비행.
그것이 생떽쥐베리의 일이었다. 12살에 처음 비행기를 타보고 조종사의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직업이 되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심심치 않게 그 아득한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가보지는 못했으나, 꿈결처럼 아득하게 다가오는 사막의 밤비행의 장면들을 우리는 작가의 시선으로 따라가본다.
하지만 나는 비행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어둠 속에 잠겨있다. 별과 같은 광물성의 빛, 별과 같이 닳지도 않는 그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별과 같은 언어로 말하는 내 성좌 속에 잠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삶을 향해 걷고 있을지도 모르는 때에,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저 신기루 넘어 지평선은 어쩌면 진짜 도시와 단물이 흐르는 수로와 초원으로 가득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돌아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나는 이 끔찍한 방향을 전환하는 순간, 수렁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어둠 속에서도 '내 성좌 속에 잠겨있는' 시간들. 그것은 멈추지 않고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그 너머에 더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그 시간의 중력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는 고백에 마음이 간다. 옳은 선택인즐도 안다. 하지만 왜 그리 힘들었을까.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트는 순간에는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어떤 '고통'까지 있었다.
내일도 동료를,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세계.
그것은 하나의 폭풍우였지만, 그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에 삶의 이유가 있었다. 기쁨과 고통이 늘 있었다. 다시 홈으로 무사히 돌아온다고 해도. 그 안락함이 폭풍우를 통과하는 환희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폭풍우를 불평하지 않는다. 이 마법 같은 직업이 내게 하나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니까. 그 세계에서 2시간 후면 나는 검은 용과 맞설 것이고 푸른 번개 갈기를 왕관처럼 쓴 산봉우리와 대결할 것이다. 밤이 오면 나는 폭풍우에서 해방되어 별들 속에서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비행사 동료들은 매일 같이 폭풍우에 몸을 던지고 돌아왔지만, 그들이 빛나는 순간은 무용담처럼 그 일들을 떠들고 다닐 때가 아니었다. 어떤 경이로움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드러낼 수 있는 비밀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
선배들 중 한 사람이 일리칸테나 카사블랑카에서 돌아와 비에 젖은 가죽옷차림으로 뒤늦게 우리 일행에 합류할 때, 그리하여 우리 새내기들 중 하나가 쭈뼛쭈뼛 그의 비행에 대해 물을 때면, 그는 몇 마디 간결한 대답만으로 덫과 함정, 갑자기 솟아오르는 절별, 삼나무라도 뿌리째 뽑아버릴 듯한 회오리바람으로 가득 찬 우화 같은 세계의 폭풍우 치는 날을 우리 마음속에 그려주는 것이었다.
새내기와 베테랑 사이의 대화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내 경험에도 훌륭한 선배는 환상 가득한 앞날을 부풀리게 해주는 이도 아니었고, 혹독하게 경계심을 부추겨서 긴장감을 심어주는 이들도 아니었다. 진짜들은 그렇다. 거창한 과장 없이 일하는 날들을 마음속에 그려줄 뿐이다. 그다음은 듣는 이들의 몫인 것이다.
물론, 유창한 언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가슴에 깊이 머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비행이 어땠냐는 물음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던 동료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보여준 반응은 그런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마침내 뷔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제서야 내 말을 알아들은 모양인지 기억을 더듬는 것 같더니 느닷없이 터널웃음을 터뜨렸다. 뷔리는 좀처럼 웃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그의 웃음이 놀라웠다. 그 짧은 웃음 덕에 그의 피로가 밝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승리에 대한 설명이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묵묵히 음식을 씹었다. 하지만 그 어둠침침한 식당에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보잘것없는 그렇고 그런 사원들 가운데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 동료가 이상하게도 고귀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의 거친 겉모습 뒤로 용을 정복한 천사와도 같은 모습이 슬쩍 엿보였던 것이다.
그 폭풍우에 항상 승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이 소설의 가장 잊지 못하는 숨 막히는 순간이 눈앞에 다가온다. 그가 소설을 쓴 것은 아마 이 순간을 복구하기 위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사막에 불시착하여 동료와 둘이서 2천 킬로미터를 헤매고 다니다가 죽음을 눈앞에 마주쳤을 때. 작렬하는 태양 아래 환각과 환청 속에서 휘청이고 있을 때 사람의 실루엣을 본다. 하지만,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자신들은 필사적으로 외치는데, 그 소리가 상대에게 닿을 수가 없다. '성대가 말라버린 것이다.' 그조차 멀어져 가고 절망의 그림자가 성큼 다가올 때 또 다른 베두인이 지나간다. 울부짖지만 들리는 소리는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해 팔을 휘저어 보지만 상대는 다른 쪽만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움직임으로 세계가 나아간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그 사람(베두인)은 4분의 1쯤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가 정면으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서 갈증, 죽음, 신기루를 지워줄 것이다. 그가 4분의 1쯤 돌면서 벌써 세상을 바꾼다. 신체의 움직임으로 시선 하나만으로 그는 생명을 창조하는 셈이고, 그래서 내게는 그가 신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마에 모래를 박고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송아지들처럼 대야에 고개를 박고 엎드려 물을 마신다. 베두인은 그 모습이 덜컥 겁이 났는지 매번 우리가 그만 마시도록 말린다. 하지만 그가 우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기가 무섭게, 우리는 다시 물속에 우리의 얼굴을 들이박는다.
4분의 1의 고갯짓으로 시작된 구원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의 손끝에서 비롯되었다. 그대로 물을 마시게 두는 것이 겁날 정도의 처절한 갈증으로 두 비행사는 물속에 얼굴을 들이박는다. 동물처럼 물을 마시는 그 순간에 생떽쥐베리는 대지의 비밀을 감각한다. 진리는 그렇게 다가온다. 진리는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 베두인을 만난 기적은 어쩌면 망각되어 있는 인류의 오래된 습관이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에겐 다시 만날 날을 오래도록 기다리는 습관이 있었다. 왜냐하면 항공로의 동료들은 파리에서 칠레의 산티에고까지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어 별로 말을 나눌 일 없는 보초들처럼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숨겨져 있기에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언젠간 직업상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비밀의 정원들과 그것들로 가득하기에 풍요로운 대지. 생활이 우리를 동료들과 떼어놓기에 그것들을 자주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어딘가에 있다.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정원.
하지만 인류에겐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는 습관이 유전되어 왔으므로 그 세계에 결국엔 도달할 것이다. 일을 하면서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장소.
때때로, 생활에 가리워져 자주 생각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비밀의 정원은 존재한다.
우리의 가슴속에 한 가지 질문의 자리만 잃지 않는다면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다른 법률 안에 살게 되었을 때, 유년의 그림자로 가득한 그 정원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Fishmans - Night cruising
https://www.youtube.com/watch?v=FL7xO92hR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