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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Oct 28. 2024

떠나는 기차를 쫓지 않는 것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

"처음으로 참석하는 대학 졸업식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연설문이 있다. 이어지는 문장은 더욱 걸작이다. '나는 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만치 않은 사람이니 알고 들으라는 암시를 넌지시 던지며 그 안에 스며있는 위트에 웃게 된다. 그리고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그다음은?

2008년 금융위기를 미리 내다봤다며 예언서 취급까지 당하는 책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가 2016년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 졸업식 축사를 위해 쓴 연설문이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어떤 사람을 부러워할까요?


언젠가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토론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여러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결국 자퇴생들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사회에 진출하면 물론 모두가 부러워하는 리더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자리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졸업장은 안 중에 없이 모험에 뛰어든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자신의 개성으로 승부하고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당장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가 떠오른다.(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자퇴하면 맥도널드에서 알바할 각오를 해야하니 섣불리 따라 하지 말자는 쓴 농담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어라 공부해서 하버드에 들어가서 결국 자퇴생을 부러워한다는 것이 허무하게 들릴까. 다시 생각해보자. 한 분야에 정통한 이후에는 산산히 부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창의성의 법칙이다. 온고이지신. 법고창신. 선인들은 예부터 늘 강조해왔다. 


나심 탈레브는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의 저서 <블랙 스완>은 결코 세상에 널리고 널린 그저 그런 책이 아니다. 어쩌다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금융위기를 예측했다는 호기심에서였을 것이다. 주식 투자를 하는 이들이 경전처럼 읽는다고도 하는데, 투자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재미있다. 경제학에 녹아든 인문학적인 성찰들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무한 도서 자유이용권이 그의 보이지 않는 자산이었다. 끌리는 대로 책을 마음껏 읽다 보니 남들이 정해주는 것에는 흥미를 잃었다고 밝힌 그의 고백에는 또 하나의 끌림이 있다.

소설을 써보겠다고 했으나 진도가 나가지 않아 전전하던 어느 날, 와튼경영대학원에서 배우던 '확률론'에 빠져들게 되고 트레이더로 진로를 틀게 된다. 월가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잃은 것도 얻은 것도 많지만 결국엔 '불확실성'을 다루는 연구로 향한다.


'블랙 스완'은 백조는 희다고 믿는 세상에서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변수지만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실질적으로 없는 취급을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상치 않은 작은 사건이 전체를 뒤바꿔버리는 현상이다. 이를 테면 누구도 예측 못했던 2008년 금융위기나 코로나 팬더믹이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인간의 태도이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보여준 통계나 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미래를 예측하려 하기보다는 미지의 가능성에 대해 열어두자는 말이다.


'사회 과학'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대부분의 발견이나 발명은 의식적으로 계획하거나 설계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검은 백조다. 따라서 탐사나 경영을 하향식 계획에 의존하는 대신 기회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일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마르크스나 애덤 스미스의 후예들과 견해가 다르다. 자유시장이 작동하는 것은 기술이 뛰어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혹은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 공격적인 시행착오 끝에 행운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의 전략은 간단하다. 최대한 집적거려라. 그리하여 검은 백조가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려라.


그에 따르면 시장을 인정하든 부정하든 스미스나 마르크스의 사상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성공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검은 백조는 존재하니, 대비를 하고 있으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회가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이다.


트레이더 일로 20대에 경제적 독립을 이루게 되면서 그는 여러 부호들과 셀럽들, 경제학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찾게 되었다. '여러 경제학자나 사회학들이 거의 항상 자신의 잘못된 수학을 자신들의 문제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적 도구를 그저 잘못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책임지지도 못할 정도로 남발하면서 '끔찍하게' 잘못 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끔찍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것이 끼칠 해악에 대해 그들은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권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손해를 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또 하나,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한 가치가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표된 정보는 특히 사업가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가격은 그러한 모든 정보를 이미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백만 명이 공유하는 뉴스는 당신에게 아무런 이점도 주지 않는다. 정보를 입수한 수천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미 해당 유가증권을 매입했을 것이며, 따라서 가격을 올려놓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신문과 텔레비전은 완전히 끊어버렸고, 그 덕택에 막대한 시간을 얻었다.


남들 다 아는 정보는 득이 될 것이 없으므로 뉴스와 TV를 끊고 그 시간을 벌었다. 나 역시도 뉴스를 많이 보는 것이 무슨 지성의 척도인 양 강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정보의 양이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보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저자는 그렇게 번 시간에 무엇을 할까.


대신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강도가 높은 (그리고 흥미진진한)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가장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중했고 소위 말하는 비즈니스 '미팅'에는 절대 참석하지 않았으며 명품 의상은 걸쳐도 책 한 권 읽지 않는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피했다.... 나는 천천히 오직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정제하면서 베짱이, 혹은 직업적 명상가가 되어 책상이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아, 누구에게 구태여 설명할 필요 없이 원하는 만큼 자고, 닥치는 대로 읽고 싶었다. 나는 한발 한발 검은 백조에 대한 내 아이디어에 입각한 종합적인 사고체계를 세우기 위해 혼자 있고 싶었다.


나심 탈레브는 <블랙 스완>이라는 책을 내기까지 20년 가까이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내면에서 그 책이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루키가 말했던 '먼 북소리'처럼 그 울림은 생생한 것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돈에 대해 야유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기이한 느낌을 경험하고 있었다. '내가 옳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귀에 먹먹한 트럼펫 소리.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나는 온몸의 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 누구든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으며,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결코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몸의 감각이었다, 기쁨과 자부심의 공포가 뒤죽박죽 된 그런 감각.


그렇게 '블랙 스완'에 대한 아이디어가 발전되어 책으로 나왔다.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특히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위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스토아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여러 차례 강조한다. 마지막, 어느 작가 지망생을 만나서 깨닫게 된 하나의 작은 행동이 준 파장을 소개한다.


그는 파리에서 나와 같이 공부한 소설가 지망생 장 올리비에 테헤스코로, 내가 지하철을 뛰어서 타려고 하자 이렇게 만류했다. "나는 기차를 타겠다고 뛰지는 않아."

운명을 무시하라. 그 이후 나는 시간표에 맞춰 살겠다고 달음박질하지 않으려 애썼다. 테헤스코의 충고는 사소한 것이었지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떠나는 기차를 쫓아가지 않게 되면서 나는 우아하고 미학적인 행동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고, 자기의 시간표와 시간, 자기 인생의 주인 됨을 느낄 수 있었다. 놓친 기차가 아쉬운 것은 애써 쫓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남들의 생각을 추종했개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경쟁의 질서 바깥이 아니라 그 위에 서도록 하라.


하나의 아이디어가 한 사람 안에 머물다가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생각해 본다.

그 안에서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도 새로운 발견이 된다.


Travis - Raze the Bar

https://www.youtube.com/watch?v=WInJEKjTz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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