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티 Oct 31. 2024

우리는 찾고 있었다

볼프 본드라체크의 <자동차 안에서>

"뭘 그렇게 참고 있니?"


옆 자리에 앉은 선배가 딴청 하는 척하며 툭 던진 말이다. 네? 어리둥절하다. 고개를 숙이며 바짝 다가온다.

"한 병 더?"

아하. 알겠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냥 한 병 더 주문한다. 선배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병을 같이 짠 맞부딪힐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테이블 맞은편은 이미 거나하다. 하긴 언제나 여긴 늘 2차로 오니까.

자정이 가까울 무렵 잔뜩 취해서 들어온 LP 바. 누가 먼저 시작하지 않아도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는다. 쿵쿵 거리는 음악들 사이 알듯 말듯 웃음이 뒤섞인다. 친구 하나가 눈빛을 번뜩이며 선배에게 묻는다.

"형, 이거 무슨 곡이에요?"

그 애는 지금 선배를 인간 음악검색앱으로 써먹는 중이다. 모른다는 답이 나올 때까지 괴롭힌다.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오자, 사악한 웃음을 숨기지 않는다.

"에이, 모른다니 형. 평론가잖아요! "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이렇게 음악평론가를 놀릴 수 있다.

   

이미 우리 모임을 잘 아는 주인아저씨는 신청곡들을 척척 틀어준다. 척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의 전주가  흘러나온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누구야. 이거 신청한 거?"

"난데? 왜?"

야유가 쏟아진다. 막말이 비집고 나온다. 욕이 안 나오면 다행이다. 과연 안 나왔을까.

얼마나 훌륭한 곡인가. 하지만, 장장 13분. 이 곡 듣다가 내 신청곡이 못 나올 수도 있다. 다들 맹렬히 그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이 자식아, 그건 신청 매너가 아니지!"

그렇게까지 진지할 일이었을까. 하긴 세어보니 우린 열 명이 좀 넘는다. 정작 그는 동요하지 않고 아주 뻔뻔하게 13분을 꾹꾹 듣고 있다. 우린 또 할 얘기가 많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시간이 간다.


참 별것도 아닌 일에 웃고 떠들던 나날들이었다. 요즘 친구들도 '음감회'를 할까?

홍대 주변, 한낮의 클럽은 텅 빈다. 대학 시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모였다. 그 컴컴하고 어둑한 지하에서 우리는 혼자 듣기 어려운 음악들을 커다란 스피커로 들었다. 각자 읽을거리를 들고 온다. 조명이 어두우니 만화책이 좋다. 하지만 그 와중에 철학책 들고 온 애들이 분명히 있었다. 아도르노, 들뢰즈... 아, 촘스키도 유행이었지! 스피커는 쾅쾅 울리는데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을까? 중요하지 않다. 지적 허영심 없는 애들이었다면 여기에 앉아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낮맥을 한 모금씩 하고, 별다른 얘기는 없이 그렇게 모여 앉았다. 모임에 규칙은 있었다. 돌아가면서 하루 한 명씩 들려주고 싶은 CD들을 들고 오고, 듣고 나면 각자 한 마디씩 한다.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테이블 위에서는 각자의 시간이 동시에 흐른다. 언젠가 펜이 떨어져서 허리를 굽혔는데, 테이블 위가 잠잠한 수면이었다면 그 아래는 폭풍우였다. 바닥을 울리는 리듬을 타며 까딱까딱거리던 운동화들. 그곳에 숨길 수 없는 그루브가 꿈틀대고 있었다. 차마 다 내보일 수 없는 심연을 그렇게 날려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가다 보니 이제 사람이 음악으로 기억된다. 누구 하면 어떤 장르. 그 친구 집의 CD리스트가 보인다. 밥숟가락 개수는 모르지만 어떤 음반이 있는지는 안다.

우리가 자주 가던 신촌의 우드스탁 주인아저씨는 단골이 오면 신청하지 않아도 그가 좋아한 음악을 틀어준다. 주인아저씨와 친분이 돈독했던 언니가 등장하면 시그널송 REM이 흘러나왔다. 그 언니는 눈빛을 반짝이며 내한하지 않는 그들을 보러 홍콩까지 공연을 보고 왔다고 자랑했다. 한 손을 번쩍 올려 흔들며 말하곤 했다.

"이거 마이클 스타이프랑 악수한 손이야!"

흑심을 품은 어떤 선배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어디 한번 나도.

  

그리고 그 모임은 '회지'라는 걸 발간했다. 학생들의 진지한 평론글이었다. 시네필도 시네마테크도 있던 때라 영화 글, 또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는데 외국 밴드의 라이브에 대한 리뷰들을 기록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음악잡지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이 나왔다.

우드스탁에서 잘 논다고 소문이 무성한 - 그가 한번 일어나서 놀면 모르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줄 정도라고 했다. 이런 사람은 더 놀아야 한다고! - 어떤 선배가 쓴 오아시스 영국 공연 리뷰를 읽었다. 그는 후에 페스티벌 기획자가 되었다. 실은 홍대 그 클럽 주인 언니도 런던에서 본 라이브클럽을 모델로 한국에 차린 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역시 영국 출신이어서 나는 오직 그 이유만으로 런던으로 날아갔다. 그들이 공연한 곳, 즐겨 찾는 장소를 연결한 나만의 투어였다. 발걸음마다 현지의 음악이 닿을 때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았다.


어느 금수저 언니가 음악 하는 누군가에게 꽂혀서 집을 나왔고 부모님과 절연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 커플이 소꿉장난처럼 살면서 차린 클럽에도 가보았다. 영화와 음악 글을 기막히게 쓰던 또 어떤 언니는 영화판 연출부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들 머리 치장에 한창 일 때 머리를 완전히 밀고 와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나중엔 영화제 수상 소식도 들려왔다. 음악잡지 기자가 된 선배들은 자신들을 찾아오는 팬 자랑을 한창 늘어놓기도 했다.

또 어느 건축가 선배는 이사할 때마다 후배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언젠가  갔던 그 집 마당에는 욕조가 떡하니 자리 잡아서 다들 놀라곤 했다. 친구는 물었다.

"형, 여기서 욕조에 담그면 저 옆집에서 다 보이지 않아요?"

그는 웃으면서 한 마디 할 뿐이었다.

"그러겠지."

"......"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평소 그의 캐릭터를 볼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니긴 했다. 그저 이웃의 민원으로 쫓겨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그 집에서 밤새워 술잔을 기울이고 그대로 쓰러져 잠들기도 했다. 그 자리엔 항상 CD며 LP가 늘어져있었다. 그 역시 정착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서울 곳곳을 떠돌며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지나고 보며 생각해 본다. 그리 쾌적하지도 않은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시시콜콜하고 별것 아닌 수다를 나누며 보낸 시간들은 어떤 뜻이었을까.

우리는 많이 다투기도 했다. 거리를 쏘다녔다. 대단치도 않은 것들에 삐지고 흥분하기도 했다. 로맨스도 있었고 이별도 있었다. 서로 다른 사상의 차이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나같이 결혼한 모습 따위는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또 현재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읽은 시를 볼 때면 그때가 늘 떠오른다. 그 시는 그렇게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자동차 안에서

- 볼프 본드라체크(Wondratschek, 1976)


우리는 침묵했다.

낡은 자동차에 들어앉아

라디오채널을 바꿔가며

남쪽 나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몇몇은 고독한 발신의 엽서를 띄웠고,

우리더러 이제는 마음의 결단을 내리라고 했다.


몇몇은 밤에도 해를 보겠다며

산 위로 올라가 앉았고,


삶은 분명

사적인 게 아닌 걸로 되어있는데

사랑에 빠지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은 어떤 혁명보다 급진적이라는

"깨어남"을 꿈꾸었다.


왕년의 영화스타들처럼

되살아날 순간만 기다리던 이들,


어떤 이들은 목숨 한번

걸어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우리는 침묵했다.

낡은 자동차에 들어앉아

남쪽 나라고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때때로 그 시절 나누던 수다들이 한 조각씩 떠오르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이 연재 시리즈에 남긴 책과 공간들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고, 한 번쯤 정리해보고 싶었다.

다시 묻는다. 그렇게 낭비한 것처럼 흘러간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맨 첫 연재 시작에 썼던 그 작가,  <런던 스타일 책 읽기>의 닉 혼비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록음악 마니아인 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리 공연을 많이 다니고 음악을 많이 듣는지를.

그의 답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경험으로 나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그게 전부다.'



*<아스팔트킨트의 책과 카페들> 연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써보고 싶은 책들도 아직 한가득이지만, 다른 연재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은 저의 영원한 최애뮤지션 데이먼 알반의 '블러'로 마무리하겠습니다.)


Blur - The Universal

https://www.youtube.com/watch?v=GRw90MwubqU












 








 



이전 29화 떠나는 기차를 쫓지 않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