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카포티의 <크리스마스의 추억>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친구와 다투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심각한 논쟁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12월이면 엄마는 받고 싶은 선물을 물었다.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쓴다고 하셨다. 거리를 밝히는 불빛을 따라 방에도 문구점에서 산 트리 장식들을 붙였다.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버튼을 누르면 캐럴은 집안 가득 퍼졌다. 평소에 치고받고 다투던 남동생과도 흔하지 않은 평화 모드가 찾아왔다.
크리스마스 아침 잠에서 깨면 늘 머리맡에 선물이 있었다. 남동생은 프라모델 키트나 자동차 장난감, 나는 당시 한창 유행이던 마른 인형 살림살이 장난감 - 인형의 집을 채울 가구나, 디즈니 그림책 시리즈 같은 것들을 받았다. 리본으로 정성껏 포장된 선물 박스 옆에는 손편지도 있었다. 대개는 올해 이런이런 것들을 잘했으니,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지? 이런 내용이었다. 캐럴 노랫말대로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줄 알았다. 우리 집엔 굴뚝이 없는데 어떻게 오시지, 라거나 양말이 선물을 담기에 너무 작지 않나 하는 고민도 했었나.
"산타는 세상에 없다니까!"
친구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 말에 왜 화부터 났던 것일까. 같은 또래인 주제에 어른스러운 척하는 친구가 미웠을까. 나만 아이였다는 걸 들킨 기분이었을까. 그럼, 내가 그동안 받았던 것은 다 뭐였지.
어린이가 '추리'라는 것을 해본다. 손편지의 글씨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산타와 엄마, 아빠의 글씨가 똑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왜 값비싼 고가의 선물은 아무리 말해도 오지 않는 것이었나. 그게 이제야 보이는 것인가.
나는 우리 집의 맏이였고, 그 친구는 네 자매의 막내였다. 아마도 그 차이였을 것이다. 언니나 오빠가 있는 애들은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나 보다. 그때 어렴풋한 어른의 기분을 맛보았던 것 같다. 산타클로스가 스토리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렴풋한 어른의 세계로 입장한다. 어린이라도 알 수 있다. 그리 유쾌하지만은 감각.
커가면서 아이 장난감 아닌 더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았다. 선물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처럼 크리스마스를 고대하지는 않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를 얻으면 또 한 가지는 잃게 된다. 어릴 때 그 친구에게 화를 냈던 진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된다
더 어른이 된다.
크리스마스가 실제 예수의 탄생일도 아닐 뿐더러, 태양신을 쫓던 고대의 풍습과 섞인 것이라는 유래도 알게 된다. 동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가 있는 것도 그래서였다. 이제 태양의 날들이 길어질 거야. 지나다가 단팥죽 가게에 붙은 글씨에 눈에 띈다.
'크리스마스엔 단팥죽이죠!‘
어른이 되었다고 거리의 불빛과 캐럴에 마음이 기울고, 밤새워 흥청거려 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특별판 메뉴에 얇아지는 지갑을 모른 척도 해본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였나.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하지만, 이것저것 해보아도 결국 크리스마스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단팥죽이든 케이크든 가짜 생일이든 맛있는 걸 먹으며 그 분의 오심을 한번 더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은 일 아닌가.
상업적이다 어쩐다 세상이 휘청여도 일 년에 한번 쯤은 성스러운 것들의 아름다움을 잠깐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소외된 것들, 너무 작아서 없는 듯 보이는 것들까지도.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에 마음이 간다. 우리 집에 찾아오던 산타가 사라진 그 날 분명 어떤 것을 잃어버렸다. 그걸 메우고 싶었을까.
좋아하는 단편 소설 중 하나인 트루먼 카포티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펼친다.
어느 시골 마을, 십 대 소년인 내가 백발이 성성한 60대의 사촌, 강아지 퀴니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친구들을 위해 케이크를 굽는 그 집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나이 차이조차 잊게 하는 친구처럼 다정한 사촌을 나는 이렇게 소개한다.
'친구는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을 뿐 아니라 식당에 가본 적도 없었고 집에서 8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다. 또 전보를 받거나 쳐본 적도 없었고 만화나 성경 말고는 책을 읽은 적도 없었다. 게다가 화장을 해본 적도, 욕을 해 본 적도, 다른 사람이 나쁘게 되기를 바란 적도, 고의로 거짓말을 한 적도, 굶주린 개를 못 본 척한 적도 없었다.'
60대 사촌인 그는 쉽게 말해 세련되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친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꾸밀 줄은 몰라도 굶은 개 한 마리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 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들이 굽는 케이크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우리가 잃어버린 친구가 있다.
'이 케이크를 누구에게 줄 거냐고?
친구들에게. 반드시 이웃 친구들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로, 이 케이크들 중 큰 몫은 우리가 한 번 만났거나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려고 만든 것이다.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들.
예를 들면 루스벨트 대통령. 지난겨울 우리 동네에 와서 강연을 해주었던 침례교파 보르네오 선교사인 J.C. 루시 목사 부부. 아니면 2년에 한 번씩 마을에 들르는 꼬맹이 칼갈이. 아니면 모빌에서 오는 6시 버스를 운행하는 운전기사 애브너 패커....
이런 낯선 사람들, 얼굴만 아는 사람들이 우리의 가장 진정한 친구처럼 여겨지는 것은 내 친구가 낯선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에게 수줍음을 타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또 백악관 편지지에 적혀서 온 감사 편지, 가끔씩 캘리포니아와 보르네오에서 보내온 편지, 칼갈이가 준 1센트짜리 엽서를 모아놓은 스크랩북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조각난 하늘이 보이는 우리 집 부엌 너머 신나는 일들이 가득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도 있고, 동네를 오가며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눈에 띄지는 않아도 일상에서 사라지면 단번에 티가 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나와 사촌과 강아지 퀴니는 그 친구들을 떠올릴 때 신이 난다. 퀴니 역시 이불을 차고 베개를 뒤집으며 잠못 들 정도로 들뜬 마음이다. 케이크를 굽는 부엌의 작은 창 너머로 신나는 세계가 이어져있다.
금주령이 내렸지만, 위스키 한 병쯤은 몰래 구할 수 있는 비밀 가게도 알고 있는 두 사람. 모처럼 일탈을 해본다. 한 모금에도 혀가 꼬이지만 각자의 노래도 부른다. 가사를 다 몰라도 노래는 신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 같은 크리스마스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세월은 닥친다. '세상을 자기들이 제일 잘 안다는 듯 잘난 척하던 사람들이 나를 군대와 사립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내가 제법 어른이 되었을 무렵 결국엔 사촌의 부고를 듣게 된다. 이 소설은 실제 카포티가 어린 시절 친척 집에 자라면서 보낸 시간들을 회고하며 쓴 것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크리스마스 추억은 다른 세상에 있어도 나를 단단히 붙들어준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나는 벌써 마음속으로 깨닫고 있다. 그 소식을 전해준 편지는 이미 내가 비밀스러운 방식을 통해 받았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잃은 것이 무엇인지 코트 주머니속을 주섬주섬 뒤적여본다.
이제는 아이에서 너무 멀리 왔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