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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모르는 사람들일까

Doves - Pounding

by 베리티

동네에 작은 예술극장이 있었다.

극장 뒤편에 야외 원형 무대가 있어서 저녁이면 주민들이 산책하곤 했다.


중앙은 까끌까끌한 모래가 깔려있었고

주변에는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여 있어서

밤에 걸으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그날도 산책에 나섰는데 뭔가 이상했다.

가로등이 모두 꺼져있어서 온통 깜깜했다.

직원이 깜빡한 것일까, 그냥 퇴근했나.


하루 종일 일에 매이다 모처럼 산책 나왔는데,

블랙홀처럼 거대한 어둠이라니.

무섭기도 해서 발길을 돌릴까 하다가, 아쉽다.

그냥 가던 대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가만.

깜깜한 중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

바짝 귀를 세운다.

사람들 발소리다.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원형무대를 돌고 있는 몇몇 사람들.

풀벌레, 나뭇잎 소리에 발소리가 더해진다.

주저없이 나도 하나의 발소리를 더 보탰다.


나무들은 어스름하게 형체를 드러내고,

잔디들은 바람 사이로 살랑이며 리듬을 탄다.

머리 위 하늘은 높고 구름은 몽글하다.

불빛은 달빛에게 마당을 내어주었다.


누군가 말했던 야간산행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친구의 손을 잡고 흙을 밟고 나무를 지나 산을 오르던 이야기엔

땀과 더불어 어떤 믿음이 한 줌 섞여있었다.

요즘 세상에 야간산행은 그리 쉬이 나설 일은 아니지만.


샌들 사이로 모래 알갱이가 툭 튕겨 들어온다.

환영인사처럼 다정하다.


이상하게도 뭉클해졌다.

가로등이 꺼져도 늘 걷던 그 길을 가고 있다는

별 것 아닌 사실이.


어둠 속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고 그저 산책만 했지만,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 장소가 좋아서 쉽게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이 곳이 주던 작은 위안에 등돌리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 모르는 사람들일까.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어둠 속에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 하나,

보이지 않아도 훌륭한 동행자가 있을 것이다.



Doves - Pounding

https://www.youtube.com/watch?v=LYB2yqDMSdU

무대 연출로도 놀라운 쇼를 보여주는 공연도 많지만, 어떤 무대는 음악만으로 꽉 채워진다. Doves는 유명한 밴드는 아닐지 몰라도, 이 정도 감동적 라이브를 선사하는 밴드는 정말 드물다. 언젠가 공연을 직관할 기회가 꼭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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