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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가 좋은 건

장필순 - 그림자춤

by 베리티

돌담이 보이는 동네가 좋아서 원서동에 갔다.

궁궐의 담벼락.


창경궁의 돌담엔 무늬들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다.

하늘로 이어진 솟을대문,

삐죽이 솟아오른 오래된 나무들.


귓가에 들려오는 각기 다른 외국어들.

발로 구르는 전차를 탄 관광객 무리들.


이 동네가 좋은 건,

아직 철물점이 있고 세탁소가 있기 때문.


노인을 위한 의자가 있는 버스정류장,

2층의 창을 활짝 젖힌 책방을 지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뜻밖의 물소리.

물결이 살살 일면서 투명하게 흐른다.


한옥으로 이어진 골목 끝에

조선시대 작은 빨래터가 남아있었다.


궁궐 후원에서 흘러나오는 샘물로

동네 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했다.


지금은 안 보여도 작은 물고기도 산다고 했다.

방망이를 두들기고 옷감을 주무르던

고단한 손길들이 머물던 곳.


그러다 문득, 질문 하나.

힘든 일이지만 꼭 힘들기만 했을까.


언젠가 인터뷰했던 해녀의 말이 떠올랐다.

집안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바다에 나가면 활력이 생겨요.

잡은 전복, 미역들을 이웃 나눠주면 다 잊혀요.


힘듦과 기쁨의 선이 명확한 것이 아니다.

물질이 힘들다고들 생각하지만,

해녀들만 아는 기쁨이 있다.


풀을 먹이고 잿물을 빼는 고단한 일이어도,

그 사이 번진 수다와 큰 웃음이 있었겠지.


어쩌면, 구름 너머로 웃음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음악처럼 들리던 물 흐르는 소리도.



장필순 - 그림자 춤

https://www.youtube.com/watch?v=fMrlNZX8vq4

제주도의 바람과 물, 돌담을 떠올리며 장필순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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