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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그랄의 기쁨

by 제니앤

화이트벨트에서 블루벨트로 띠 색깔이 바뀌는데는 수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적 있다. 계속 흰 띠만 차고 있으면 너무 지루할까봐서인지 주짓수엔 그랄이라는 승급 제도가 있다.


그랄은 그라우라고도 불리는데 포르투갈어 'grau' 에서 나온 말이다. 'grau' 는 영어로 하면 'grade' 이고 우리말로 바꾸면 '등급', 즉 나의 급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랄은 띠의 까만 끝부분(쁘레따)에 하얀 테이프를 붙여서 표시하는데, 이 쁘레따에는 1개부터 4개까지의 그랄이 감긴다.


하얀 테이프 하나 붙이는 건데 이게 참 마음을 요상하게 만들었다. 남들이 그랄 승급을 할 때마다, 혹시 오늘은 나도 승급을 하는 날이 아닐까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내 이름이 호명되지 않으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띠 끝에 붙어 있는 그랄들이 눈이 부시게 멋졌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다들 승급을 할 때마다 뿌듯해하며 SNS에 인증을 하곤 했다.


드디어 내 띠에도 그랄이 감기는 날이 왔다. 따로 승급 심사는 하지 않고 출석 일수와 실력 향상을 기반으로 관장님이 승급을 결정하시는데, 신기한 건 그랄을 감을 때쯤에는 나도 어느 정도 주짓수 실력이 늘었다고 느끼는 때였다는 것이다. 주짓수를 시작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에 첫 그랄을 받았는데, 체육관 관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앞에 나와, 내 띠에 그랄이 감기는 것을 보았을 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실력은 비탈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는다는데, 실력이 껑충 뛰는 바로 그 지점을 그랄로 표시해 주는 기분이었다. 성취감이 눈에 보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운동이 조금 지루하고 늘지 않는 실력에 답답하더라도, 그랄을 보면서 조금만 더 노력하고 기다리면 내 성장을 입증해 주는 하얀 줄무늬가 하나 더 생길 거라며 버티고 기대하는 효과가 있어 좋았다. 그랄 승급은 운동을 더욱 즐겁게 하게 해 주는 하나의 장치였다. 내 땀과 노력의 보상인 이 작고 하얀 그랄을 나는 계속 사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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