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할 때는 모든 악세사리를 빼놓고 매트에 들어간다. 목걸이나 반지, 귀걸이 등이 나를 다치게 하거나, 남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도 하지 않는데, 파트너와 붙어서 하는 운동인 만큼 내 메이크업이 상대방 도복에 묻을 수 있고 그렇게 메이크업으로 더러워진 도복은 깨끗하게 빨기가 어려워 서로 간에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주짓수는 맨발로 하는 운동. 뭔가 정말 나를 꾸미는 것 하나 없이 자연인으로 운동을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체육관에서는 도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도복은 다들 똑같은 걸 입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색깔부터 분홍색, 보라색, 민트색 등 형형색색에, 도복에 새겨져 있는 자수나 붙어 있는 패치도 갖가지였다. 도복은 예쁘기도 하면서 입고 있는 사람의 개성을 드러냈다.
그렇게 체육관에서 다양한 도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도복을 사고 싶어지곤 했다. 지금 입고 있는 것보다 더 가벼운 걸 사고 싶고, 다른 색깔도 입어 보고 싶고, 저 도복 브랜드의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등 한도 끝도 없이 쇼핑욕이 솟았다. 그런데 이렇게 뭔가 나를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든 게 참 오랜만이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 생각보다 금방 입던 옷이 안 맞게 되었다. 그때부터 입문한 임부복의 세계는 내가 패션에 있어서 예쁨보다 편함을 추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수유복, 키워 놓고 나니 엄마 등원룩, 가방은 에코백으로 통일됐다. 내 옷을 살 때는 싸고 실용적인 옷이 구매의 기준이 되었고, 옷을 잘 사지도 않았으며, 그냥 있던 옷을 돌려 입는 게 편했다. 그랬던 내가 예쁘다는 이유로 도복을 사고 싶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복이 너무 비쌌다. 도복 값은 기본 10만원부터 시작됐는데 막상 사려고 하니 결제 버튼이 안 눌러졌다.
'이 돈이면 애들 데리고 키즈카페를 몇 번을 가는 거야? 도복 하나 값이면 애들 옷을 속옷부터 외투까지 사네. 도복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그렇게 돈이 아까워서 결국 도복을 사지 못하고, 처음 주짓수 시작할 때 산 기본 도복 하나로 6개월을 운동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고,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명목 아래 나는 결국 신상 도복을 지르고 말았다.
새로 산 도복은 가볍고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포인트 되는 자수가 얼마나 예쁘던지, 그걸 입고 운동하면서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올 줄을 몰랐다. 왜 사람들이 명품 가방을 들고 내 새끼 예쁘다고 하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렇게 새 도복에 한껏 들뜬 나를 보면서 그동안 외모를 전혀 가꾸지 않고 살았던 나를 발견했다.
육아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피곤해서 나를 꾸밀 에너지가 없었다. 게다가 살림은 늘 빠듯해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산다는 건 사치인 것만 같았다. 외면보다 내면을 가꾸는 게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는데, 외모를 가꾸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내 욕구를 인정하고 따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아닌 엄마로 살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나도 예쁘고 싶고 멋져 보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돌보고 가꾸는 것도 중요했다. '귀찮아.', '괜찮아.' 를 입에 달고 살며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엄마도 꾸며도 괜찮은 거였다. 엄마가 예쁘면 더 좋다. 이제 나는 예전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20만원 짜리 지갑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생일 선물로 나에게 선물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