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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일단 가자.

by 제니앤

비가 온다.


둘째 콧물이 계속 되는데 약이 똑 떨어졌다. 오늘 아침엔 소아과에 가야한다. 하필이면 월요일 아침. 소아과엔 꼬마 친구들이 바글바글하다. 기다리다 진료를 받고, 약을 타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다.


휴우. 드디어 다시 집. 소파가 편안해 보인다. 비스듬히 앉아 핸드폰을 들고 유튜브로 박막례 할머니 찐감자 만들기 영상을 보는데 재미나다. 자, 이제 5분 뒤엔 주짓수 가야하는데, 어제 잠도 잘 못 잔 것 같고, 비오는 날엔 괜히 더 피곤하다. 어떡하지. 잠시 고민.


"관장님, 오늘은 둘째 병원에 다녀왔더니 넘나리 피곤해서 하루 쉬겠습니다아� 담주 월요일에 봬요�‍♀️"


카톡 전송 완료. 침대로 직행. 잠이 들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다. 오늘이 과제 제출일! 그런데 과제를 안 가져왔다. 게다가 내일이 시험이라고? 시험 범위가 어딘지도 모르겠네. 꿈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2시간 가까이 잤는데 잔 것 같지가 않다.


이쯤이면 주짓수 안 간 게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 어찌됐든 아프지만 않으면 갔어야 했어. 안 가고 이렇게 보낸 시간 보다, 가서 보낸 시간이 더 좋았을거야. 담번엔 게으름 피우지 말고 귀차니즘을 물리치고 관장님께 카톡할 생각은 하질 말고 일단 집을 나서자.




운동 가기 싫은 날이 있다.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아주아주 많다. 게다가 오늘 운동을 못 가는 이유는 백 가지도 댈 수 있다. 그래도 일단 가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풀고 기술 설명을 집중해서 듣고, 원투쓰리포 단계에 맞게 기술 연습을 하다보면, 운동 가기 싫었던 백 가지 이유는 어느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곤했던 몸도, 땅 속 깊이 다운 됐던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만가지 걱정도, 송글송글 맺혀 떨어지는 땀방울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오늘도 운동을 안 가면 그 시간에 하나라도 일을 더 하고,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야. 도리질 한번 치고 일어난다.


일단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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