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Win or Learn, 이기거나 또는 배우거나

by 제니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화이트벨트 초보자이기에 스파링할 때 이기려는 욕심 없이 상대의 공격을 계속 피하고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스파링 때 너무 피하고 도망치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계속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는데, 관장님도 이런 나의 생각을 알아채신 것 같았다.


"관장님, 대회에서 이렇게 계속 피해서 점수가 안 나면 심판은 어떻게 판정하나요?"


"그런 경우에 공격을 더 많이 시도한 사람이 이깁니다. 시도해야 배울 수 있어요. 막힐 게 뻔해도 시도해보면 아, 이렇게 하면 막히는구나 경험적으로 배웁니다. 머리로만 돌려보던 것은 실제가 아니기에 금방 잊어버리고 배워지지가 않아요. 실패가 눈에 보여도 시도했을 때, 그 실패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안될 게 뻔하다고 아예 시작도 안 해 버리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요. "


나는 완벽주의가 있다.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대충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패 확률이 높은 일에는 잘 도전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어 보이는 일만 하는 경향이 있다.


공부를 잘하는 건 나의 재능이었다. 이해력이 좋았고 배우는 걸 즐겼다. 성실하기도 했다. 권력이 있는 자를 본능적으로 알아서 학창 시절엔 선생님들과 잘 지냈다. 선생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이번 시험에 어떤 문제를 낼지 예상이 됐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성적이 좋았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다.


은행 지점장이시던 아버지가 명문대 나온 직원들이 오히려 일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을 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도 그 부류에 속하게 되었다.


사회는 학교와 달랐다.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실패들의 홍수에 내 멘탈이 견디질 못했다. 일주일만에 그만둔 회사도 있었고, 한 달만에 그만두기도 했다. 1년을 버티면 오래 다닌 거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열등감에 시달렸다.


이런 나의 완벽주의가 주짓수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제대로 못할 바에야 아예 하지 말아버리는 게 낫다면서.


그러다보니 실력이 늘지 않고 주변만 빙빙 돌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실패의 두려움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나는 계속 여기 머물러 있을 거였다. 선택의 순간이다. 안전지대에 남아 있을 것인가? 두려움에 맞서 실패를 감당해 볼 것인가? 이것은 내게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 먹는 순간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실패의 쓴 맛을 보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이전엔 알지 못했던 세계로 나아간다.





나는 빨간 약을 먹었다. 두려운 상대에게 더욱 다가갔고, 실패할 게 뻔해도 손을 뻗었으며,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기술을 걸었다. 당연히 패스 당하고 스윕 당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궁금한 게 생겼다.


"방금 그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실패하기 전엔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상대는 나를 제압한 기술을 자세히 가르쳐줬고, 나는 나를 넘어뜨린 그 기술을 배웠다. 실제 상황 속에서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맞닥뜨려 배운 것은 더욱 생생히 남았다. 패배를 통해 배우는 걸 알게 되니, 지는 게 힘들지 않았다.


넌 평가전에 나온 선수 중에 가장 많이 져 본 선수야. 진 경험으로 넌 지금까지 계단을 쌓아 올린 거야. 생각해 봐. 이제 네 계단이 제일 높다.

-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에서


 쌓이고 쌓인 실패의 경험들은 우리에게 단단한 내공을 선물해 준다. 지는 게 두려워 피하기만 한다면 부실한 계단 위에서 몸도 마음도 계속 휘청거릴 뿐이다. 지면서 배울 때 우리의 성공을 향한 계단은 단단해지고, 그 계단 위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성공을 얻을 것이다. 완벽주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 보자. 이기게 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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