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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쩌다 주짓수를?

by 제니앤


'주짓수'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내 결혼 소식을 알리는 자리에서였다.


2015년에 나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대구에 사는 사촌들을 만나 밥을 한 끼 사면서 청첩장을 돌리고,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근황을 나눴다. 결혼 이야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연애 이야기,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때 사촌의 남자친구가 주짓수 체육관의 관장님이라는 말을 들었다. 주짓수가 어떤 운동인지도 모르면서, 사촌이 파란색 도복을 입고 싱그럽게 웃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파란 도복을 입고 주짓수를 하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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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살게 되면서 운동을 시작하면 수영이나 서핑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고, 엄마로서 아이들의 건강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물에 들어가면 마스크를 쓸 수 없는 수영이나 서핑은 시작하기가 꺼려졌다.


나는 집에서 애만 보고 집안일만 하는데도 왜 이렇게 시간이 없는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기 전까지 해야 할 집안일은 늘 산더미였다. 시간이 부족하니 운동을 한다면 이동 시간은 짧았으면 했다. 그런데 집에서 10분 거리에 주짓수 체육관이 새로 생겼다. 그때 6년 전 사촌의 파란 도복이 떠올랐고, 나는 주짓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주짓수 수업에 등록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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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는 유도의 원형인 일본의 유술(柔術)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는데, 나는 브라질에서 발전된 브라질리언 주짓수(Brazilian jiu-jitsu, BJJ) 를 배우고 있다. 유술은 전쟁터에서 적과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게 되었을 때, 상대를 잡아 넘어 뜨리거나 공격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여, 조르기나 관절 꺾기 등으로 상대의 힘을 무력화하고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되었던 무술이다. 주짓수는 그래플링(Grappling)에 속하는데, 영어 단어 'grapple'은 '붙잡고 싸우다' 라는 뜻으로, 두 사람이 매트 위에서 넘어지고 잡고 뒤엉키면서 싸우는 격투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 적을 만나 주짓수 기술을 사용할 일은 사실 거의 없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큰일이 난 거다.) 내가 주짓수를 알게 돼 좋은 것들 중 하나는, 모든 구경 중에 제일로 재밌다는 싸움 구경을 더욱 재미지게 보게 됐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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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D.P.》에서 정해인이 복싱으로 다 잡아놓은 탈영병을 구교환이 붙잡아 어설픈 조르기를 하면서 "야, 내 그래플링 봤냐? 봤어? 그래플링이 짱이지, 임마." 라고 할 때, 찐으로 웃을 수 있었다. 각종 영화, 드라마에서 나오는 액션 씬에서 격투기를 보는 눈이 생겼달까. 치고 박고 싸우는 게 뭐가 재밌나 했었는데, 이젠 로맨틱 코미디 보겠다고 남편이랑 싸우지 않고 같이 액션 영화 보면서 턱이 빠지도록 감탄한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재미난 법이다. 어쩌다 시작한 주짓수가 내 삶의 영역을 손바닥만큼 넓혀 주었다. 작은 확장이지만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퍼지는 파장이 작지 않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는 기쁨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을 알게 될 거라는 설렘이 일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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