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매년 그랬던 것처럼 지인들과 일정을 잡아 번화가 맛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들이다 보니 화장도 하지 않고 편한 차림으로 만나도 누구 하나 타박하는 이가 없고, 얼굴마다 익숙한 반가움이 넘칩니다.
맛있는 밥과 디저트를 먹는 것도 잊은 채 대화를 나누는 얼굴들은 모두 밝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마음은 마냥 황홀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각자 가져온 이야기 안에 차갑게 식어 굳어버린 인생의 고통 조각들이 날카롭게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 A는 요즘 AI와 싸우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녀는 포트폴리오를 위해 작업물을 올려두는 SNS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미지를 훔쳐서 AI에게 학습시켜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전에도 이미지 도용은 꾸준히 존재했던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림을 훔쳐가서 은밀하게 사용했습니다.
친구는 자신의 그림이 대만 소설 표지로 사용 중이라는 제보를 받은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훔쳐가서 AI에게 학습시킨 후 그와 유사한 그림을 그리게 해서 사용합니다.
더 뻔뻔하고, 더 지능적으로 타인의 결과물을 훔쳐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AI 플랫폼은 저작권을 보호한다고 앞에서는 열심히 떠들지만, 도둑을 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데이터 하나라도 더 쌓이는 게 그들에게는 이익이니까요.
때로는 인터넷의 공유 정신을 운운하며 도둑질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훔쳤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표절이 의심될 경우 작가들끼리 작품 진행 과정이나, 창작 의도를 적극적으로 밝히며 오해를 풀거나 사과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AI에게는 이것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AI가 그려준 대로 이용만 했을 뿐이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친구 B는 부모님 간병으로 몸무게가 40kg 이하가 되었다가 회복 중입니다.
B는 집안의 늦둥이 막내입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부모님이 10~20살은 연세가 더 많습니다.
지병이 있던 어머니가 심한 노인성 변비로 입원했던 모양입니다.
부모님들이 연세가 있다 보니 평상시에는 씩씩하게 일상을 보내다가도 사소한 몸의 변화로 크게 아픈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친구는 작년에는 아버지 탈장 수술 병간호로 올해는 어머니 변비로 1개월 정도는 병원에서, 나머지는 집에서 부모님 간병과 함께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미련하게 혼자 감당하지 말고 간병인을 구하면 되지 않냐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에 10만 원 정도 하는 간병비는 서비스하는 입장에서는 부족하고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건강 보험이 잘 되어 있어서 의료비가 크게 들지 않기 때문에 짧은 기간이라면 간병비를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병이란 치료기간을 명확하게 확정하기 어렵고, 병이 진행하는 상황에서 돌발 변수들도 많기에 간병 기간이 늘어나는 게 다반사입니다.
그리고 간병비라는 산을 넘어도 간병인 구인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다시 앞을 가로막습니다.
간병인 인력 자체가 많지 않기에 환자의 성별부터 거동은 가능한지, 대소변은 가리는지, 성격은 온순한지 등등 환자가 면접을 보고 선택받길 기다려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간병인을 구하더라도 간병 기간 동안 간병인과 간병비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밀당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친구 C는 남편이 구조 조정될까 봐 두려워하며 재취업을 고민 중입니다.
코로나 시기 대호황이라며 연봉 잔치를 벌인 IT 기업들은 엔데믹이 되자마다 대불황이라며 대규모 구조조정 중입니다.
업계 안에서 이런 구조조정은 지겨울 만큼 반복된 일입니다.
연봉 잔치의 목적이 노동에 대한 이익 분배가 아닌지는 오래됐습니다.
주주들에게 기업이 큰 이익을 내고 있음을 홍보하고,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젊은 인재들에게 미끼를 던지는 게 목적이죠.
업계 내부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연봉 잔치 시기에 연봉이 크게 오른 사람은 대표와 일부 임원들, 그리고 소수의 공채 신입사원입니다.
나머지는 명절 보너스 정도를 챙겨주면 행운입니다.
내부에서는 연봉 잔치는 곧 있을 구조조정의 예고편같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두려움의 무게가 다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습니다.
이전에는 구조조정 당해도 이직할 회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연봉이나 대우는 점점 떨어졌지만, 일을 할 수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시다발적으로 업계 전체가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대신 일할 AI의 발전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빠릅니다.
위기감을 느낀 IT 업계 노조는 회사와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업계 밖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지는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IT 업계 사람들이 고연봉에도 불구하고 배부른 소리 하는 귀족 노조로 보이니까요.
심지어 내부에서조차 노조를 혁신을 막아서는 무능력자 취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며 말이죠.
친구들에게 털어놓은 제 고민은 대중이 좋아하지 않을 글로 먹고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면 보상이 뒤따른다는 신념이 강한 사람입니다.
친구들 중에 가장 호전적이고 급한 성격이며 모험을 좋아합니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그리고 사회에서 정한 길에서 벗어나 제 고집대로 했을 때 결과가 좋았습니다.
스스로 세상을 보는 눈이 있는 건 아닐까 자부심에 군살이 잡혀 자만할 때도 있었죠.
돌이켜보면 그냥 세상이 모두에게 좋았던 경제 성장기였던 것뿐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느낌입니다.
저는 지난 3년간 제가 글쓰기 한 내용을 분석해 봤습니다.
노동도 열정으로 소비도 열정으로 하라는 사회, 일 취급도 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 AI의 브레이크 없는 성장에 대한 두려움.
제 글에서도 친구들과 같은 고민들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이걸 깨닫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 글로 먹고살기는 글렀구나."였습니다.
주목을 끌도록 자극적인 재미를 주거나, 지적 대화에 오르내릴 만한 건설적이게 돈 냄새나는 글이 인기 있는 세상에서 가장 인기 없다 못해 욕먹기 좋은 주제만 골라서 선택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주제를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솔직히 바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제가 관찰한, 그리고 제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그러니까요.
저도 친구들도 갓 40대에 진입했으니 이제 막 중년의 고달픔을 깨달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40대에 읽는 철학서에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꼭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자기 존재에 대해, 일에 대해, 가족에 대해 저와 친구들은 많은 포지션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겠죠.
연말 모임은 마음에 켜켜이 쌓였던 서로의 고통을 온기로 녹이는 시간이었습니다.
23년의 고민을 정리하고 24년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을 보충한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부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활력을 충전하며 24년을 맞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