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한번 해보는 거죠
어젯밤 갑자기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그렇게나 조심했는데도 걸리고야 말았다. 머리를 제대로 안 말리고 출근한 날이 잘못이었을까. 사무실에 난방기가 잘 안 되던 날 외투를 입지 않고 일한 게 화근이었을까. 오늘을 좌표로 찍고 전날들을 거슬러 내가 잘못한 일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원인이 뭔지는 과학적으로 밝힐 수도 없을 터인데.
집에 내 손수건 하나 제대로 없는지라 아이 가재 수건을 목에 감고 잠을 잤다. 어릴 적에 엄마가 그렇게 목에 수건을 감고 있으라고 할 때는 그 말이 죽기보다 싫더니, 지금은 내 몸 아낀다고 조금이라도 목이 아프다 싶음 수건을 찾는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보다 더 목이 따끔거린다. 시계는 이미 평소 기상 시간인 4시 30분을 넘어 5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며 일어날까 말까 갈등하는 사이 블로그 댓글 하나가 달린 게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걸 확인하기가 겁이 났다.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진 게 혹시 이것 때문이었을까.
어제 오후에 블로그에 공지글을 하나 올렸다. 일 년 가까이 해오던 프로젝트인데 조금 방식을 바꿔보기로 하고 말이다. 기존에 하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플랫폼에서, 비용도 조금 바꿔서 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전과 살짝 바꿨을 뿐인데 반응이 너무 달랐다는 거다. 지난번만 해도 신청자가 많아서 마감을 공지해야 할 정도였건만 이번에는 신청이 거의 없었다. 한 명이라도 오면 하겠다던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허무함이 좌르르 밀려왔다. (이럴 때 우리 아빠는 담배는 피우시는구나 싶은 생각이......)
'과정이 번거로웠을까, 비용이 문제였을까, 이제 할 만한 사람이 없나?'
이번 공지글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이불속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생각각 해본들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한 명 한 명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기에 이런 고민에 내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감기 기운을 더 부추기기만 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머리가 개운하지도 않고 목 따가움이 가시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이 깰 시간이 가까워오기에 이불 밖으로 서둘러 나왔다.
몸이 아프면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내가 나 스스로 자기 관리를 못한 것 같아 그것도 자책스럽다. 새벽만이 유일한 내 시간인데 그 귀중한 황금시간을 몸이 아파서 이불속에서 보낸 것도 안타깝고 분하기만 하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이 나약한 생각에 빠지고 만다.
'진짜 성공하는 사람은 어떤 문제 속에서도 최고로 해내는 사람이라 했거늘 그깟 감기 때문에 이불속에서 나오지를 못하다니. 어제 프로젝트만 해도 그래. 얼마나 신뢰를 주지 못했으면 작은 변화에도 이렇게 신청이 적을 수가 있는 건지. 그거 생각하느라 정작 오늘 새벽에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하지도 못하고 말이야. 나는 왜 이렇게 매사에 제대로 하질 못하는 거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괴감이었다. 일단 목부터 좀 어떻게 해봐야겠다 싶어 뜨거운 물을 팔팔 끓여 유자차를 타 마시며 책을 읽었다. 잔이 다 비워 갈 때쯤이 되니 따끔거렸던 목이 한결 편안했다. 역시 유자차를 사두길 잘했다. 거칠어진 마음도 부드러운 유자향 덕분에 한 꺼풀 벗겨졌다.
한번 해 보는 게 아니라 하는 거야.
시도만 하는 사람은 일을 그르쳐 결국 실패를 맛보게 돼.
한번 해 보겠다고 말하는 것은 안 될 일에 대해 미리 변명하는 것에 불과해.
한번 해 보는 것은 없어. 하느냐 안 하느냐 두 가지가 있을 뿐이지.
-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중에서
동화책 속 문장이 내 아픈 곳을 콕콕 쑤시는 것만 같다.
'그냥 한번 해봤어.'
'일단 한번 해보기나 하지 뭐.'
'그냥 경험 삼아 한번 해보려고.'
평소에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 모른다.
언어가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인생이 된다는 말을 유명한 누군가가 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내가 했던 그런 말 때문에 나는 제대로 행동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기적같이 서류-면접이 통과되어 승무원 실무 면접을 보러 갔던 날도, 예비 1번 또는 2번으로 꿈에 그리던 대학교 교직원 최종 면접을 보러 갔던 날에도 나는 늘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냥 한번 해보는 거야."
어쩌면 누군가는 정말 원하는 자리였을, 나에게도 훗날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일지도 모를 그런 순간마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혹시나 잘 안될까 봐, 열심히 노력했는데 잘 안됐다고 하면 창피할 것 같아 미리 밑밥을 깔아 두곤 했었다. 그리고 그날들의 결과는 내가 했던 말처럼 정말 그냥 한번 해본일이 되어 버렸다.
감기 걸리는 게 정말 싫었으면 어젯밤에라도 감기약을 먹고 잤어야 했다. 새벽 시간 하루 날리더라도 푹 자고 일어나서 몸을 회복했어야 했다. 진짜 프로젝트에 사람이 많이 오길 바랬다면 여기저기 널리 알리는 노력을 좀 더 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서,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밖에서 원인을 찾고 문제점을 찾는 건 오답이다. 정답은 나에게 있었다. 내가 행동한 딱 그만큼의 노력이, 내가 마음먹은 딱 그만큼의 간절함이 그 답이다. 답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책 <잘 쉬는 기술>에서 클라우디아 해먼드는 게을러지고 싶다면 그것이 바로 '생존신고'라고 했다. 내가 오늘 이불속에서 나오지 못했던 건 어쩌면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생생한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글에 신청이 저조한 것 역시 오만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아프다고 하는 건 미성숙한 자의 엄살이고, 겁쟁이의 핑계일 뿐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정말로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면 그건 여전히 길모퉁이 어디쯤인 것이다. 종착지가 맞나 아닌가 확인하더라도 제대로 해본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다.
전 세계 휴식 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글쎄 독서란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책 보는 시간을 휴식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새벽에 깨서 엄한 생각들 하느라 푹 쉬지도 못하고 출근했다고 자책하려다가 이 결과를 보고 정정한다. 오늘 새벽 나는 아주 제대로 휴식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