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꿈이 있어야 한다면 지금 내가 가장 하고싶은 일
"엄마 비전이 무슨 뜻이야?"
"어... 그건... 내가 뭔가 되고 싶거나 이루고 싶어 하는 거지."
"엄마 그럼 꿈은 뭐야?"
"뭐? 아... 그건 내가 뭐가 되고 싶다거나... 음... 잠깐만 엄마도 설명하기가 어렵네. 한번 찾아보자."
아이가 7살이 되더니 책에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자꾸 물었다. 그래서 스스로 찾아보라고 국어사전을 사줬는데 아직 사전 찾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결국 엄마에게 궁금한 단어를 묻는다.
논리적으로 '음 그건 말이지~'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어영부영 대답을 못하다가 결국
"우리 같이 사전에서 찾아볼까?"
하고 은근슬쩍 아이와 사전에서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사전에 적힌 비전이나 꿈에 대한 설명은 생각보다 간결했다. 초등 국어사전에 적힌 '꿈'에 대한 설명은 이러했다. 실현시키고 싶은 바람이나 이상. 거기에는 '되고 싶은 사람'이나 '되고 싶은 직업'과 같은 말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왜일까? 아이에게 꿈을 설명하기 위해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장래희망'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아이에게 "넌 나중에 커서 뭐하고 싶어? 춤추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가수가 되려나?" 하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말을 듣던 아이도 자연스럽게 "엄마 나 가수 할 거야." "나 유치원 선생님 하고 싶어." "나 화가가 될 거야." 하면서 수시로 자기 꿈을 바꿔가며 이야기했다.
"우리 딸 꿈이 계속 바뀌네. 근데 아마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바뀔 거야. 엄마도 그랬어."
나와 이런 말을 주고 받던 아이는 분명 꿈이란 단어를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책에서 비전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헷갈렸던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분명하게 둘의 차이점을 설명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사전에 적힌 꿈의 뜻풀이는 예상 밖이었다. 바람이나 이상. 단지 그것뿐이었다. 물론 거기에 하고 싶은 일이나 직업이 포함될 수도 있겠지. 그때 사전을 보고 처음 든 생각 하나.
그리 거창한 게 아니어도 되겠네
꿈.
왠지 꿈이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뛰어야 할 것 같고, 막 뭔가 거창한 걸 이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아직 제대로 꿈을 이루지 못해서 그런 건지, 진짜 꿈을 꿔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꿈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허공에 떠있는 풍선처럼 느껴지곤 했다.
책을 읽다가 아이는 또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 꿈? 엄마는 어렸을 때 뉴스에 나오는 사람 같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어."
"아니 어렸을 때 말고 지금 말이야. 지금 꿈이 뭐냐고~"
망설였다. 훅 치고 들어온 아이의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한 건 아이에게는 정말 솔직하게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순간 내 안에서 약간의 떨림이 느꼈으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야."
"아~엄마 그래서 책 쓰는 거야?"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던 나를 종종 보던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엄마 책 쓸 거야? 나돈데. 나도 저번에 개미왕국 1 썼잖아. 2도 쓸 거야. 근데 스케치북도 다 쓰고 노트도 다 썼어."
"아 그래? 알았어. 엄마가 사줄게. 두꺼운 걸로."
아이는 공책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한 번은 노트 전체를 개미 그림으로 도배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자기가 책을 쓴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이의 질문에서 시작된 '꿈'에 대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문학을 좋아해서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고3이 되면 으레 그러하듯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결정했고, 내가 가려는 대학에 문예창작학과가 없다는 이유로 그 꿈은 기약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지했지만 그 당시 난 문창과에 진학하지 않고서는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늘 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작가와의 만남'같은 행사를 도맡아 진행한 적이 많았다. 그 당시 만나본 작가들은 모두 대단한 분들이었다. 이미 작가로서 유명세를 떨친 분들을 모시다 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최근에는 도서관에도 소그룹별로 작가 북토크가 자주 열리기도 하고, 도서관 밖에서도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때 만나게 되는 작가들은 누구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사람이 아닌 다소 평범하지만 책을 낸 사람인 경우도 많이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다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것 같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 큰 무대에서 강의를 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 꼭 이런 결과물들만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이 칠순에도 소녀처럼 천진난만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꾸준히 운동 해서 굽은 등도 펴고 싶다. 숏커트를 해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고, 하루에 한 개씩 버리며 홀가분한 미니멀 라이프를 경험해보고도 싶다. 아이들과 세계여행을 해보고도 싶고, 20대에 혼자 갔던 영국에 다시 혼자 가보고도 싶다. 어떤가. 이런 내 바람도 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되면서 내게 꿈은 늘 과거형이었다. 내 어릴 적 꿈은.... 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국어사전에서 찾은 꿈의 해석을 통해 어른이 된 지금의 나 역시 매일매일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다음 주에 내가 하고 싶은 일, 올해 내가 이루고 싶은 작은 목표. 그것들이 모두 나의 꿈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존재다. 때문에 우리에게 꿈은 꼭 필요하다. 누군가는 꿈꿀 여유조차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7살 아이에게 설명하기 좋은 그런 거창한 꿈을 꼭 꿔야할 필요는 없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일, 내일도 또 하고 싶은 일,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나의 꿈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