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후회

by 깨알쟁이

"걔네는 말라서 임신이 잘 되었나 보네?"

"근데 걔네는 말랐는데도 몸이 따뜻한가?"



남편이랑 주유하러 가다가 한 손에는 운전대를 잡고 한 손에는 티슈로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운전했다. 임신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몸보다도 마음이 힘든 거였는데, 한동안 잘 부여잡고 있던 것이 갑자기 터져버렸다. 이유는 나 스스로 더 잘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남과의 비교, 나는 안 되겠지라는 비관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어제 오후 나는 어깨랑 팔이 아파서 한의원에 들렀다. 3주 전쯤 처음 통증을 느끼고 통증의학과 진료를 봤는데 거북목과 라운드숄더 때문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임신 준비 중이라고 하니 물리치료 외에는 별다른 처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침 몇 번 맞으면 더 개운하게 통증이 가실 것 같아 병원에 들렀고, 통증 부위와 정도에 대해 이야기한 후 얼마 전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원장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뭐 그럼 대충 소염진통제, 위장보호제 정도 처방받아 왔겠군요."

"아니요. 임신준비 중이라고 하니 약도 안 지어주셨어요. 아, 제가 지금 시험관준비 중이거든요. 이제 곧 이식이고요."

임신준비 중이라는 말에 어깨통증보다는 진맥을 한번 봐주셨고, 한참 진맥을 짚어보신 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식일자를 예약하셨나요 이미? 지금 몸이 너무 찬데.. 자궁이 너무 찬 편이에요. 몸을 충분히 따뜻하게 만들고 하면 좋겠는데.."

사실 평생 들어온 이야기기도 하고, 극세사 수면 양말이 발을 따뜻하게 해주기는 커녕 보냉백을 발에 씌우고 있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무표정으로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맞아요. 저 수족냉증도 있고 혈액순환도 잘 안 돼요."

원장님은 그때부터 본인들이 이제까지 진료 봤던 난임/불임 환자들의 사례를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본인이 장사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한번 들어보라고 하시길래 반신반의하며 귀 기울이게 됐다.

난임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임신이 잘 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잘 품고 잘 낳는 것까지 다 중요하다고 하셨다. 몸이 따뜻하지 않아 밭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시험관으로 이식을 한다 해도 중간에 계류유산처럼 유산이 될 수도 있고, 그러면 몸이 훨씬 더 상할 거라고 하셨다. 이식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으니 그러면 남은 기간 한 달 정도라도 나 믿고 한번 아침저녁으로 약 먹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다.

맞는 말씀이기도 하고 시간도 너무 얼마 안 남아서 되는 노력 안 되는 노력 다 해야 되는 거 너무 잘 아는데, 최근에 미션캠프에서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내가 너무 귀 얇아서 홀라당 넘어가는 사람 같아서 처음에는 생각해 본다고만 했다. 그러다 어깨에 침 맞으면서 세 번 정도 더 말씀하셨을 때에는 결국 넘어가주는 척, 약 지어달라고 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서 한 달 치 약값을 결제하고 진짜 좋은 약들로 엄선해서 지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왔다.

이식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나는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레드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고리즘을 통해 질문을 던졌다. 자궁을 따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다들 혹시 팁 있냐고.

좀 찾아보니 운동, 온열복대, 대추차, 반신욕, 족욕 등을 추천하는 것 같은데 본인들만의 몸 따뜻하게, 자궁 따뜻하게, 혈액순환 잘 되게 하는 팁이 있으면 공유해 달라고 간절히도 남겼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말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대추차와 같은 따뜻한 성질의 차 자주 마시기, 차가운 음료/차가운 음식 먹지 않기, 운동 꾸준히 하기 (고강도 운동은 하루에 30분 이상, 슬로우러닝은 1시간 정도), 족욕하기, 배찜질하기, 하체순환 스트레칭하기.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한 번쯤은 해봤던 것들이고 그저 나는 시험관 주사에만 의존해 내려놓고 살던 것들이었다. 열심히 반신욕 하다가 난자 채취하면서 끊었고 하체 순환 스트레칭도 요즘에는 잘 안 했다. 요가매트를 깔아도 바닥이 차가워 춥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근데 한약도 비싼 돈 주고 먹게 된 이상 저것들을 같이 해줘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그러니까 확률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은 '왜 진작 안 했을까. 왜 진작 안 먹었을까.'였다. 그리고 최근에 자연 임신에 성공한 지인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가면 안 될 생각의 끝을 가버리고 말았다.


마침 어제 친구들을 만나고 온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임신을 하면 엄마가 먹는 양과 질이 태아한테 많은 영향이 가나 봐."

"당연하지. 그래서 음식도 잘 가려서 먹고 하라고 하더라고."

"그 어제 만난 A 와이프는 원래도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임신하고도 많이 안 먹어서 발달이 좀 더디다고 했나 봐. 그래서 그걸 신경 써서인지 요즘 엄청 먹고 있대."

"아 그렇구나. 하긴 쌍둥이면 더 잘 신경 써서 잘 먹어줘야겠다." "응, 근데 B 와이프도 마찬가진가 봐. 원래 요리에도 취미가 없고 해서인지 임신하고 나서도 별로 먹지를 않나 봐. 병원에서 똑같은 소리를 들었대. 잘 먹어야 한다고."


난 그냥 그 팩트만을 듣고 대화하면 됐는데 생각이 순간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걔네는 원래도 말랐는데 시험관도 안 했으니 살도 안 쪘겠네?'

'아 걔네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잖아.'

'나는 시험관 했다는 핑계로 지금 잘 먹어야겠다고 잘 먹다 살만 뒤룩뒤룩 쪘는데'

'왜 나는 살도 걔네보다 쪄 있는데 몸은 차가운 거야?'


그러다가 내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며 남편에게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걔네는 말라서 임신이 잘 되었나 보네?"

"근데 걔네는 말랐는데도 몸이 따뜻한가 보지?"


너무 억울했다. 사람마다 몸이 다 다르고 각자의 시간도 다른 건데 한동안 안 하던 비교라는 것을 해버렸다. 그것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비교를.. 말하고 나니 너무 비참해졌다. 그리고 내가 너무 없어 보였다. 남편은 애써 나에게 말했다.


"우리도 때 되면 될 거야."


남편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말을 했을 뿐인데 더 서러워졌다. 거기서 미사여구를 붙여도 별로고 말을 안 해도 더 별로인데, 그냥 그 말 자체도 너무 무미건조하고 형식적인 대답 같아서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한동안 참았던 여러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운전대를 잡고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 한 살이라도 더 일찍 결혼했더라면, 더 일찍 운동을 했더라면, 더 일찍 한약을 먹었더라면, 잠을 더 일찍 잤더라면, 더 일찍 퇴사를 했더라면...

이미 지난 것에 대한 미련이었다. 근데 그냥 그 미련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남편은 말없이 10장 넘는 여행용 티슈로 볼에 흐르는 눈물을 막아내고 닦아내며 말없이 나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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