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남편연구소 Apr 04. 2020

딸아, 네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매일 저녁 아이가 잠들기 전에 책을 3권 정도 읽어줍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제법 책을 읽지만, 아직은 아빠가 읽어주는 걸 좋아합니다. 한두해 지나고 나면 본인이 알아서 읽는 날이 오겠지요. 그전까지는 두 사람의 시간인 만큼 즐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게는 '계획'(?)이 있습니다.


나 : 아빠가 은서한테 부탁이 있어.

딸 : 뭔데요? 아.. 영상통화?

나 : 응, 그런데..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딸 : 이 책 다 읽고 할게요.

나 : 그래. 고마워.


저녁시간 딸에게 책을 읽어 주다가, 함께 놀이를 하다가..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멀리 계신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자는 거죠. 어제는 아이가 영상통화는 하겠다고 해놓고, 태도(제가 볼 때)가 아쉬웠습니다. 표정도 이상하게 만들고,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결국 제가 "하기 싫으면 그만 인사드리자."하고 끊었습니다. 아이는 제 표정을 보고 서운해서 방으로 들어가 울기 시작했죠. '아.. 이제 겨우 일곱 살짜리인데..'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나 : 오늘은 할머니랑 영상 통화하기 싫었어?

딸 : (훌쩍이며) 응

나 : 그런데 아까는 해도 된다고 했잖아. 아빠 때문에 한다고 한 거야?

딸 : (계속 훌쩍이며) 안 한다고 하면 아빠가 슬퍼할까 봐..

나 : 영상 통화하기 싫으면 '아빠, 오늘은 안 할래요'라고 해도 괜찮아.

딸 : 네..

나 : 연습해볼까? 은서가 아빠한테 '싫다'라고 이야기해봐.

딸 : 아빠, 오늘은 영상통화 안 하고 싶어요..  

나 : 잘했어. 은서가 영상통화 안 해도 괜찮아. 아빠는 그래도 은서 사랑해.


아이가 타인의 감정을 잘 읽는 건 감사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감능력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능력이니까요. 그런데 타인의 감정을 살피느라 자신을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혹여나 버릇이 될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 : 은서야,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게 필요해. 아빠랑 연습 한번 해볼까?

딸 : 응?

나 : (책을 들고서) 은서가 좋아하는 책을 가은이(제일 친한 친구)가 달라고 했어. 은서는 책 줄 거야?

딸 : (고민하더니) 아니.. 그런데 가은이가 슬퍼할 거 같아..

나 : 은서가 책을 주기 싫으면 '미안한데, 이건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서 줄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거야.

      그래도 가은이는 은서한테 친구야. 그러니 걱정 말고.

딸 : 응..

나 : 한번 연습해볼까? 아빠가 가은이야. 알았지? '은서야.. 나 이 책 너무 마음에 드는데, 나 주라.'

딸 : 가은아, 미안한데... 이건 아빠가 선물로 준거야. 그리고 새책이라 줄 수 없어. 미안해.

나 : (가르쳐 준 대사보다 더 멋있어서.. 놀라며..)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딸 : 알았어요.


생각보다 아이가 빨리 따라와서 (역시.. 모든 아빠는 자신의 자녀를 천재라 생각..) 조금 더 진도를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딸아이와 여러 번 이야기할 주제이기도 해서 말이지요.


나 : 은서야, 마음에서 하는 소리를 듣는 게 중요해. 알았지?  

딸 : 마음에서 말을 해? 안 들리잖아.

나 : 아까 은서 마음속에서 '할머니랑 영상 통화하기 싫다..', '이 책 주기 싫다..' 하는 소리를 들었지?

딸 : 응, 들었어요.

나 : 그게 바로 마음에서 하는 소리야. 그 소리는 은서만 들을 수 있어. 그래서 은서가 잘 들어야 해.

딸 : 네, 그럴게요..  

나 : 오늘 은서가 아빠한테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다음에도 그렇게 이야기해줘. 알았지?

딸 : 응... (포옹을 하며) 아빠, 사랑해요.  


딸아이가 타인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랬습니다. 때로는 그 목소리가 부모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고, 세상의 관점과 다를 수 있기에..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라는 것을 알고, 그 목소리를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Small things often.


   * 요즘 제 마음의 목소리는.. '어서 나가서 꽃놀이하고 싶다!!!'입니다.

이전 16화 명절에 대처하는 남편들의 자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