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창업을 하신 선배님을 찾아뵈려고 대학교 동기와 일정을 잡아봤습니다. 동기가 '00일 어때?'라고 물어봤고 저는 '괜찮을 거 같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일정을 말하려고 했는데, 뭔가 익숙한 날이다 싶어 다시 보니 '아뿔싸' 딸아이 생일이더군요.
아내와의 기념일은 'Too much'하게 챙기면서 딸아이 생일은 까맣게 잊었던 겁니다. 변명을 하자면 7월부터 딸아이는 마트에 갈 때마다 생일 선물을 계속 골랐고(물론 갈 때마다 바뀜), 사정이 있어서 10월 말에 생일 선물도 미리 줬고, 이사를 가게 되어 어린이집에서 10월에 생일 파티도 미리 해주셨으니.. 피로감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저희 집에서 딸아이 생일은 '딸아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만 '저희 부부가 부모가 된 날'로 지켜집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만 딸아이가 저희에게도 축하를 하고, 저희 부부도 서로를 축하하는 날입니다. 이런 전통(?)은 딸아이가 100일 되던 날부터 꾸준히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내의 생일에 장인 장모님께 선물을 드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지요.
아빠의 Too much 한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생일'을 통해서 아이가 '축하'를 받는 것과 주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기보다는 집에서 보고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딸아이가 결혼을 한다면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자기 나름대로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지요. 하지만 정말 주어야 하는 것은 '물질'보다는 '마음'이고, '선물'보다는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떠올렸을 때 (본인 뒷바라지하느라) 현실에 찌들고 지쳐있는 모습보다는 부모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오래 그리고 자주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