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팩사건
발걸음이 가볍다. 공미소를 놀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준혁은 자신의 차로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좀 천천히 가시지. 빨리 걷기 대회하는 것도 아닌데.'
"삑"
어디선가 준혁의 차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소는 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가 추워진 탓에 얼어 있는 차 안을 조금이라도 따듯하게 해 두려는 준혁의 발걸음은 미소가 따라오기 역부족이었다.
"이런. 전화가 어딨더라. 흠. 필요 없겠네."
저 멀리서 식식대며 걸어오는 미소의 얼굴이 보였다. 준혁은 고개를 숙여 피식 웃곤 차에 올랐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핫팩이 제대로 물이 올랐다. 손을 데면 뜨거웠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 핫팩에 손을 넣고 온도를 보고 있는 사이 미소가 조수석에 올랐다.
"과장님. 왜 이렇게 걸음이 빠르세요?"
"공주임이 느린 겁니다. 자. 출발할 거니 벨트"
"네. 맵니다 매요."
빈둥거리는 말투는 이미 화가 나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서둘러 차를 움직여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 주머니 속의 핫팩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과장님. 저녁메뉴 못 골랐는데요."
"그럴 줄 알고 미리 예약해 뒀어요."
'거봐 이럴 줄 알았지'
"앗. 감사합니다. 근데 메뉴가 뭔데요?"
"가보면 알아요. 그리고 내 코트 옆 주머니에 손 좀 넣어볼래요?"
"네? 주머니에 손을요?"
"응."
미소는 조심스레 준혁의 코트 옆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핫 뜨거! 이게 뭐예요?"
"보면 몰라요? 핫팩이잖아요."
"누가 몰라서. 아니 이걸 왜 저한테 주시냐고요."
"그...... 그야. 공주임 추워서 감기라도 걸려봐요. 내가 그 일 다 해야 되니까. 그러니까. 주는 거죠."
그래 역시 냉혈안이 갑자기 따뜻해 질리가. 몇 년간 나를 갈군일만 적어도 A4 스무 권은 넘을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이런 선량한 마음을 가질 리가 없지.
"됐어요. 과장님 실컷 하세요."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핫팩이 한 과장의 허벅지 위로 착륙했다.
"핫 뜨거!"
살짝 던진다는 것이 그만 다리 위로 올라가 버렸다. 그 순간 미소는 머리가 하얘졌다.
'미쳤네. 공미소. 저 갈굼 대마왕이 나를 또 어떻게 구워삶을지 몰라. 으악! 어떻게 진짜!'
"과장님 괜찮으세요?"
운전을 하느라 손을 쓰지 못하는 준혁을 대신해 미소의 손이 한 과장의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곤 허벅지를 툭툭 털어주었다.
"어떻게 진짜 아프세요? 화상 입은 거 아니죠?"
"이..... 손부터 치우죠."
"아! 네네 죄송합니다. 과장님."
준혁은 머리가 쭈뼛서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제대로 잠을 설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