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굽는 계란빵 Dec 13. 2023

한과장의 사정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지하주차장에 들어섰다. 밤이 되니 날씨가 싸늘했다. 외투를 걸쳐 입고 뒷좌석에 있는 가방을 꺼내려는데 준혁의 눈에 무언가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뭐지?'


물건을 흘릴리 없는 준혁은 고개를 숙여 조수석 아래 떨어져 있는 USB를 발견했다. 공주임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USB를 한참 바라보다 자신의 가방 안에 넣고 차 문을 열었다. 


'아까 급 정거 할 때 떨어졌나'


준혁은 몸을 움츠린 채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아무도 없는 공간.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워라밸은 입사초기부터 버린 지 오래. 임원이 되기 위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이해 위만 바라보며 살았다. 이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주임이 마음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그의 마음은 달라졌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이 싫어 한 동안 야근을 자처했다. 야근할 동안 공주임과 함께 있을 수 있었기에 일을 핑계로 붙잡아 두기도 했다. 공주임이 알았다면 난리를 칠 일이지만 그녀에게 사실을 털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간 구박한 게 얼만데'


회사에선 아닌 척하느라 일부러 혼내고 못되게 굴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쿡 하고 찔려왔다. 마음은 그녀에게 향하는데 몸은 반대로 행동하는 철없는 초등학교 남학생 같았다. 내일은 구박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공주임 저녁 뭐 살 겁니까?"


퇴근시간을 30분 남겨둔 시각 한과장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글쎄요. 과장님이 고르시죠."

"사주는 사람 마음입니다."

"정말 제 마음대로 합니다."

"얼마든지."


얄밉게 말을 끝내는 한과장 덕분에 미소의 머리에서 김이 올라왔다. 사실 오전에 그렇게 말한 이유로 폭풍 검색을 해봤지만 마땅한 메뉴가 떠오르지 않았다. 연인도 아닌데 파스타를 먹을 거야. 친구처럼 떡볶이를 먹을 거야. 차라리 알려주면 좋으련만 알아서 하라니 대체 뭘 고르라는 거야? 공주임은 그 뒤로 30분간 메뉴 고르기에 열중했지만 정하지 못했다. 속상한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 일어서려는데 한과장의 메시지가 다시 울렸다. 


"공주임. 지하주차장에서 보죠."


'나보고 정하라며,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투덜거리며 가방을 챙겼다. 








이전 05화 언제부터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