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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Nov 29. 2023

별빛이 아닌 달빛

그저 시트가 따뜻해서

미소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입김을 후 하고 불었다. 제법 쌀쌀하진 날씨는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발을 동동 거리고 있던 미소 앞에 중형 세단이 미끄러지듯 섰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 한과장이 소리쳤다. 


"공주임 어서 타요."


미소는 차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깔끔한 실내는 평소 한과장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리둥절하게 앉아 전방을 바라보다가 옆으로 다가오는 손길에 깜짝 놀랐다. 


"벨트"

"아! 네네."


역시 말이 짧다. 누가 한과장 아니랄까 봐. 싸늘한 말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미소가 벨트를 채우자 한과장이 조용히 차를 출발시켰다. 차 안은 조용한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음악이더라. 클래식 문외한인 미소는 한참 동안이나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제목이 기억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듣고 있는 미소를 향해 한과장이 입을 열었다. 


"드비쉬 달빛이요."

"이 곡 별빛이 아니라 달빛이었어요?"

"별빛이라니요. 드뷔시가 관에서 일어날 소리를 하네."

"모, 모를 수도 있죠!"


억울한 듯 목소리를 높이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놀라 미소의 상체는 앞으로 고꾸라질뻔했다. 한데, 미소 앞에 이미 한과장의 팔이 뻗혀 있었다. 


"괜찮습니까? 다친 데는 없어요? 많이 놀랐습니까?"


'한 가지씩 물어보세요. 과장님' 미소는 당황한 그의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를 가진 사람이었다니.


"네, 괜찮아요. 좀 놀라서 후...... 그나저나 과장님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요."


한과장은 좌석 아래서 물을 꺼내 미소에게 건넸다. 


"놀랐을 텐데 마셔요."

"진짜 괜찮은데."

"그래도. 천천히 갈 테니까."


그 뒤로 차 안은 조용한 달빛 선율만이 흐르고 있었다. 늦은 시간의 도로는 꽉 막힌 아침과는 다르게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내비게이션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미소는 피곤했는지 곤히 잠이 들어버렸다. 가방을 빼앗길까 무서운 아이처럼 꼭 붙들고 잠든 미소를 한과장은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히터를 틀어놓은 따뜻한 실내, 시트의 열선이 그의 몸도 노곤하게 했다. 이내 머리받침 위에 머리를 기댔다. 


'공주임. 통계가 엉망이네요. 오늘 중으로 다시 해서 보고하세요.'

'2022년도 자료가 빠졌군요. 그러니 수치가 안 맞는 거 아닙니까.'

'엑셀시트에 이런 간단한 수식도 적용 못합니까?'


여긴 어디지 꿈인가. 꿈에서조차 상사에게 혼나고 있는 나란 여자. 참 처량하다. 그나저나 아까 한과장님 차에 타고 있었는데.....


"공주임. 일어나요. 집 앞입니다. 공주임!"

"과장님 죄송합니다. 보고서 다시 올릴게요."


꿈에서 깬 미소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방금 전 꿈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한과장이 어깨를 흔들며 자신을 깨우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식은땀이."

"네, 죄송합니다. 과장님."


고개를 푹 숙이는데 기분이 묘하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를 하고 있지? 민망한 미소는 차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열어둔 차 문 안으로 고개를 숙였다. 


"과장님.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었다.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과장은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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