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엔 별이 보이지 않네
서로가 어이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민망해서 얼굴을 돌리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 말했다.
"이짝 엘리베이터는 당분간 못쓰니께 반대쪽 화물용 타쇼"
"네, 알겠습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생각 못 하고 있었다. 그걸 타면 됐던 것을 엄한 김대리님 손만 잡았네. 어휴, 그래도 그렇지 아직 누구한테도 안 잡혀본 손인데, 칫! 그래도 부드럽긴 했어.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다가 김대리가 부르는 소리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휴대폰으로 얼굴을 비추고 있어 또 한 번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꺄! 뭐예요. 대리님!"
"아니, 카카오 택시 잡으려고요."
"깜짝 놀랐잖아요."
"귀신 안 믿는다면서요. 왜 이렇게 놀라요. 어서 가요. 5분 후에 도착한데요."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 사무실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왔다.
"대리님. 아까 나올 때 사무실에 아무도 없지 않았어요?"
"아무도 없었죠."
"그런데, 한 과장님 자리에 스탠드가 켜져 있는데요."
"어? 과장님 오늘 외근 가신다고 들었는데. 다시 오셨나."
두 사람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과장 자리의 스탠드가 꺼졌다.
'뚜벅, 뚜벅' 발자국 소리
"퇴근들 안 했습니까?"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 한 과장이었다.
"과장님 퇴근이 늦으셨네요."
김대리가 물었다.
"그렇게 됐네요. 그런데 왜 이러고들 있습니까?"
"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화물용 이용하려고요."
"그래요? 늦었는데 어서 가죠."
미소는 생각했다. 이 이상한 조합은 뭐지? 외근 갔던 한 과장이 돌아왔고 엘리베이터는 분명 고장이 난 거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이러고 있냐고 묻는다. 뭐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정신없더니 하루종일 이러네.
'27살 공미소 인생 꼬이기만 하는구나'
화물용 엘리베이터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 묘한 조합은 회사 다니면서 겪은 적이 없었다. 고요한 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한 과장이었다.
"공주임"
"네?"
"김대리랑 사귑니까?"
갑자기? 김대리님이랑 내가?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다면 모른 척해주고. 대신 틀키진 말죠."
"네? 들켜요? 뭘요?"
잠자코 듣고 있던 김대리는 입을 꾹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미소는 김대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니라면 다행이고. 이만 내리죠."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는 미소의 입을 막아버렸다. 오해를 한다는 거야? 다행인 건 또 뭐야. 진짜 오늘 왜 이러냐고!
5분 후에 도착한다던 택시는 회사 정문 앞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장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공주임도 타요."
"네?"
"시간도 늦었는데 같이 타고 가요."
아까 그렇게 오해를 했는데, 나보고 지금 이걸 같이 타자고? 아닐 말이지. 내가 이걸 타면 바로 인정해 버리는 거잖아.
"아니요. 먼저 가세요. 저는 요 앞에서 버스 타면 돼요."
"그래요. 그럼 나 먼저 갈게요."
김대리가 사라진 뒤 한 과장은 미소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차 타고 가죠."
"네? 차요?"
"차요. 내 차."
"알죠. 근데 왜 지하주차장으로 안 가시고."
"그거야. 1층에 세워뒀거든. 여기서 기다려요. 가지고 올 테니까."
뭐야. 택시 탈 것처럼 기다렸잖아. 그럴 거면 아까 타고 갔어야지. 나 기다린 건가? 미소는 아무래도 오늘은 일진이 안 좋구나 생각하며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 한 과장 차를 타고 집에 갈 줄이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