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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Nov 22. 2023

엘리베이터 안에서

빌딩 숲엔 별이 보이지 않네

서로가 어이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민망해서 얼굴을 돌리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 말했다. 


"이짝 엘리베이터는 당분간 못쓰니께 반대쪽 화물용 타쇼"

"네, 알겠습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생각 못 하고 있었다. 그걸 타면 됐던 것을 엄한 김대리님 손만 잡았네. 어휴, 그래도 그렇지 아직 누구한테도 안 잡혀본 손인데, 칫! 그래도 부드럽긴 했어.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다가 김대리가 부르는 소리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휴대폰으로 얼굴을 비추고 있어 또 한 번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꺄! 뭐예요. 대리님!"

"아니, 카카오 택시 잡으려고요."

"깜짝 놀랐잖아요."

"귀신 안 믿는다면서요. 왜 이렇게 놀라요. 어서 가요. 5분 후에 도착한데요."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 사무실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왔다.


"대리님. 아까 나올 때 사무실에 아무도 없지 않았어요?"

"아무도 없었죠."

"그런데, 한 과장님 자리에 스탠드가 켜져 있는데요."

"어? 과장님 오늘 외근 가신다고 들었는데. 다시 오셨나."


두 사람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과장 자리의 스탠드가 꺼졌다. 


'뚜벅, 뚜벅' 발자국 소리


"퇴근들 안 했습니까?"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 한 과장이었다. 


"과장님 퇴근이 늦으셨네요."


김대리가 물었다. 


"그렇게 됐네요. 그런데 왜 이러고들 있습니까?"

"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화물용 이용하려고요."

"그래요? 늦었는데 어서 가죠."


미소는 생각했다. 이 이상한 조합은 뭐지? 외근 갔던 한 과장이 돌아왔고 엘리베이터는 분명 고장이 난 거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이러고 있냐고 묻는다. 뭐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정신없더니 하루종일 이러네. 


'27살 공미소 인생 꼬이기만 하는구나'


화물용 엘리베이터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 묘한 조합은 회사 다니면서 겪은 적이 없었다. 고요한 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한 과장이었다. 


"공주임"

"네?"

"김대리랑 사귑니까?"


갑자기? 김대리님이랑 내가?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다면 모른 척해주고. 대신 틀키진 말죠."

"네? 들켜요? 뭘요?"


잠자코 듣고 있던 김대리는 입을 꾹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미소는 김대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니라면 다행이고. 이만 내리죠."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는 미소의 입을 막아버렸다. 오해를 한다는 거야? 다행인 건 또 뭐야. 진짜 오늘 왜 이러냐고!


5분 후에 도착한다던 택시는 회사 정문 앞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장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공주임도 타요."

"네?"

"시간도 늦었는데 같이 타고 가요."


아까 그렇게 오해를 했는데, 나보고 지금 이걸 같이 타자고? 아닐 말이지. 내가 이걸 타면 바로 인정해 버리는 거잖아. 


"아니요. 먼저 가세요. 저는 요 앞에서 버스 타면 돼요."

"그래요. 그럼 나 먼저 갈게요."


김대리가 사라진 뒤 한 과장은 미소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차 타고 가죠."

"네? 차요?"

"차요. 내 차."

"알죠. 근데 왜 지하주차장으로 안 가시고."

"그거야. 1층에 세워뒀거든. 여기서 기다려요. 가지고 올 테니까."


뭐야. 택시 탈 것처럼 기다렸잖아. 그럴 거면 아까 타고 갔어야지. 나 기다린 건가? 미소는 아무래도 오늘은 일진이 안 좋구나 생각하며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 한 과장 차를 타고 집에 갈 줄이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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