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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Nov 15. 2023

공주임의 사정

서울살이 참 힘들다.

어디선가 평화로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무슨 음악이길래 이렇게 좋지. 머릿속으로 음을 생각하며 손가락을 움직이다. 알아챈다. 이것은 바로 나의 알람소리라는 것을. 늦었다! 주말에 해둔 알람을 그대로 적용해 둔 탓에 20분이나 늦잠을 잤다. 


"대박! 미쳤네. 공미소."


제대로 지각을 해버린 미소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계단을 헐레벌떡 내려가는데 가방에서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다.


'엄마는 바빠 죽겠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걱정이 한가득 묻은 목소리로 이것저것 캐묻는다.


"응, 알았다. 내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괘안타, 엄마나 니나 걱정해라. 나 지각이다. 늦었으니 그만 끊는다 알아제?"


서울살이 7년 차. 지방에 계신 엄마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많다. 대학 4년과 취준생 1년, 직장 생활 2년까지 합이 7년 차 프로 자취러인데 말이다. 미소는 전화를 끊고 카카오택시를 잡는다. 지각은 할 수 없으니 택시를 타는 수밖에. 무지출 챌린지는 잊은 지 오래다. 


'으이그, 공미소. 잘하는 짓이다.'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총알처럼 달려준 택시덕에 5분 전에 도착한 회사 로비. 서둘러 사원증을 매달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린다. 간신히 올라탄 엘리베이터에 미소를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내 사수 한 과장이다. 


"지각은 면했네."


걸려도 하필 한 과장님한테.


"아침에 버스가 좀 밀려서요. 과장님은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응. 잠깐 커피 사러 나갔다가 오는 길."


너무 여유로워서 얄밉다. 입사초기부터 한 과장은 미소를 쥐 잡듯 잡았다. 어색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입사초기니까 못할 수도 있지. 그때마다 호되게 야단을 쳤다.


'지각 아니라 다행이다. 조용히 올라가자.'


다행히 눈치껏 서준 엘리베이터 덕분에 미소는 어색함을 지울 수 있었다. 조용한 사무실 안. 지각은 아니지만 분위기상 고개를 최대한 낮춘 채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한 과장이 지나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 


"공주임. 오늘 늦게 일어났나 봐. 눈이 부었네."

"네? 설마요. 제 눈이."


눈치 없이 큰 소리로 부르는 탓에 온 사무실의 이목이 집중됐다. 미소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참자 참아! 내가 경제적 자유를 꼭 이뤄서 당당하게 네 앞에 사표 던지고 나간다!' 


미소는 앉자마자 업무의 시작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전화를 많이 받게 될 것 같다. 


하루 종일 통화가 많은 날은 업무 볼 시간이 없어 꼼짝없이 야근을 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야근이라니 빨리 해치우고 집에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서둘러본다. 


"다했다! 남은 건 내일 처리해도 되겠어." 


다이어리에 내일 할 일을 꼼꼼히 적은 후 일어나려는데 희미한 불빛이 저 멀리서 보인다. 기획팀 김대리다.

'요즘 바쁜지 야근하는 날이 많던데 간 상할실라......'


"대리님!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놀란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나까지 안 챙겨줘도 되는데." 

"그러게요. 야근 적당히 하세요.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잠시만요. 나도 거의 다 끝내서 5분만 기다려 줄래요?"

이거 뭐야? 그린라이트야? 

"혼자 있으면 좀 무섭더라고요. 얼마 전에 혼자서 야근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가방 들고 바로 집에 갔잖아요." 

"말도 안 돼. 요즘 세상에 귀신이라도 있을까 봐요?"

"모르죠. 있을지도"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김대리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무조건 나와 함께 가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대리님 자리 컴퓨터가 꺼졌다. 

"갈까요?"

두 사람은 텅 빈 사무실을 점검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밤이 되니 사무실은 정말 조용했다. 낮과 밤의 온도차가 이렇게 크다니.....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점검 중이라는 붉은 글씨가 뜬다. 

"엘리베이터 고장인가 봐요! 어떻게 해"

"요즘 자주 고장 나더라고요. 비상계단으로 가죠."

둘은 꼼짝없이 11층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요즘 운동을 못했으니 건강해진다 생각하고 한 계단씩 내려가는데, 정체 모를 발소리가 들린다. 

- 저벅, 저벅, 끼익 

"이거 무슨 소리예요?"

"대리님도 들으셨어요?"

"거 봐요. 진짜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아요."

"뭐가요?"

"귀신이요!" 

김대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곤 누군가의 형체가 보였다. 미소와 김대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서로를 감싸 안았다. 

"꺄! 누구야 당장 꺼져! 내가 누군지 알아 가톨릭 신자야! 묵주반지도 있고!" 

김대리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야근들 하신교?"

아니 이 익숙한 목소리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보고 오는 길인데, 왜 이리 놀라는교?"

두 사람은 어이가 없어 한참을 바라보더니 후다닥 잡은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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