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더 과거의 일로 돌아가 보려 합니다. 제가 스무 살에 독립한 이유는 앞서 말했다시피,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소한 충동이었고, 저의 부모님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제가 살아갈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미대 입시에 실패한 후 부모님과 반목하고 있었습니다. 지원했던 모든 대학에 떨어지고 난 뒤 저는 미술을 그만두겠노라 선언했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지 못해 그 말을 번복했지요. 아버지는 강하게 반대하셨고 저는 그것에 또 반목하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한참 전에 접수했던 수능도 치르지 않겠노라 선포했고요. 겁은 없고 치기만 있었던 저는 아버지와 끊임없이 충돌했습니다.
집을 나오기 몇 주 전부터 저는 늦은 밤 집을 나와 알지 못하는 거리로, 골목으로, 건물들의 틈으로 걸어 다니곤 했습니다. 그 밤의 온도를 아직 기억해요. 낡은 운동화를 신고, 추위에 떨면서, 가끔은 펑펑 울면서, 저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기 위해 그리도 헤매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목적지 없이 걷다 가끔은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에 총총했던 별들은 제게 답을 줄 수는 없었지만 큰 위로가 되었던 줄 압니다.
어느 날 저는 부모님과 오빠를 불러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집을 나갈게요. 아버지가 제가 하려던 것을 못 미더워하시니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저는 제가 선택하지 않은 걸 할 수는 없어요. 그렇게 살아갈 순 없으니, 나 스스로 집을 나갈게요. 일을 구해서 다른 도시로 갈 거예요. 그렇게 아세요. 그 순간 아버지는 차가 담겨있던 컵을 TV를 향해 던지셨습니다. 큰 파열음과 놀란 가족들. 아버지가 테이블을 내리치자 다시 유리 깨지는 소리가 크게 났고 (그때 아버지가 무어라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는 그렇게 아세요, 라는 말을 다시 한번 뱉고 방으로 들어가서 펑펑 울었습니다. 문 너머로 깨진 것들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계속 울었습니다.
2015년 11월 2일
엄마는 울었다. 너는 세상이 무섭지 않냐고 했다. 무서울게 뭐가 있어. 난 괜찮아. 엄마가 안 괜찮은 거지. 그렇게 말하며 더 내려갈 곳이 없는 그곳으로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런 삶으로 가는 것이라고, 내 발로 걸어 들어가는 그런 삶이라고. 밥 한 끼를 허덕이며 조금이라도 살아보려 아가미를 뻐끔이는 삶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느냐고. 내가 살 곳은 그런 사람들만이 있는 그런 곳이라고. 우는 엄마 앞에서 나는 죄인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 나는 노력했어요. 아빠는 나를 한심하게 여겼고 아마 지금도 그렇겠죠. 하지만 나는 노력했어요, 노력했지만 변할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그건 아빠가 나를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이고,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사람 앞에서 더 이상은 울지 않기로 한 것뿐이에요.
2015년 11월 4일
집을 나왔다. 여기는 부산의 어느 작은 고시원 방 한 칸.
어른 손바닥 두 개 만한 창 하나가 복도를 향해 나 있다. 숨을 멎기엔 아직 이르다는 듯. 버스 안에서 울었다. 내 삶의 도로는 언제나 갓길이다. 벽 한 구석에 누군가가 써 놓은 19800이라는 숫자를 보았다. 세 번이나 연거푸 쓰인 다섯 자리 숫자였다.